한길 백공종사님의 천부경 강의(43)
이 강의는 단기4328년(서기1995년) 봄에 8주간
부산 전포동 <배달겨레학당>에서 말씀하신 것을 녹취한 것입니다.
삼신 하느님의 완벽한(六) 마음의 작용이 구체화되어 현상으로 드러난 게 우주의 실제 모습이며 우리들의 완벽한 생각을 통해서 하나하나 나투어 지는 게 다름 아닌 우리들 삶의 모습이 아니겠어요?
조금 더 깊게 생각하면서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요,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의 내용과 육생칠팔구(六生七八九)의 내용은 사실 똑같은 원리나 마찬가지 얘요.
단,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은 ‘형이상하적(形而上學的)’으로 표현한 모습 없는 우주창조과정의 순서이며 육생칠팔구(六生七八九)는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으로 표현한 실제 드러난 우주창조과정의 순서이라는 것이에요. 아마 체(体)와 용(用)의 관계로 이얘기 해도 큰 무리는 아닐 듯 합니다.
여기서 정신 바짝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육생칠팔구(六生七八九)을 완전히 소화시키고 난 다음, 다음 단계로 이어져야지 그렇지 않으면 계속 혼란이 생겨 버릴 거얘요.
육(六)은 삼신하느님의 마음작용이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는 결정체이며, 육(六)은 무형으로 드러난 하늘 빛의 밝음과 어두움의 신령스러움과, 무형으로 드러난 땅의 물과 불의 신령스러움과, 무형으로 드러난 생명의 암컷과 수컷의 신령스러움을 합쳐서 육(六)을 이얘기하는 것입니다.
생칠팔구(生七八九) 이후부터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까지는 실제 창조된 우주의 모습, 즉 우리들의 감각기관인 여섯 가지 뿌리를 통해서 느껴질 수 있는 살아있는 현상들이라고 하면 틀림없습니다.
조금 아까 이얘기 했지만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의 원리와 생칠팔구(生七八九)는 같다고 얘기 했는데 그 이유를 얘기해 볼께요.
천일일(天一一)의 뜻은 하늘은 ‘한’을 통해 첫 번째로 나투어진 모습없는 ‘하늘 신(神)’이며
지일이(地一二)의 뜻은 땅은 ‘한’을 통해 두 번째로 나투어진 모습없는 ‘땅 신(神)’이며
인일삼(人一三)의 뜻은 사람은 ‘한’을 통해 세 번째로 나투어진 모습없는 ‘생명신(神)’이라고 이얘기 했지요?
그렇다면 알아봅시다. ‘생칠팔구’하고는 어떻게 그 원리가 같아지는지, 삼신하느님의 완벽한 신령스러움인 대삼합육(大三合六)의 대삼(大三)인 천지인의 3가지 기운과, 천지인이 가지고 있는 각기 맞짝(음양)의 기운이 합해진(合六) 바탕을 통해서 우주가 창조되는데 새롭게 창조되어 탄생한다는 의미를 생(生)이라는 글자를 쓴 것입니다.
모습 있는 하늘은 삼신하느님 마음의 결정체인 육(六)을 통해 첫 번째(一)로 탄생(生)시키니 천.육.일(天六一)이 되어 칠(七)이라는 수(數)로 구성되며
모습있는 땅은 삼신하느님 마음의 결정체인 육(六)을 통해서 두 번째(二)로 탄생(生)시키니 천.육.이(天六二)가 되어 팔(八)이라는 수(數)로 구성되며
모습있는 사람은 삼신하느님 마음의 결정체인 육(六)을 통해서 세 번째(三)로 탄생(生)시키니 천.육.삼(天六三)이 되어 구(九)라는 수(數)로 구성되니,
실제로 창조되는 우주 삼라만상이 육생칠팔구(六生七八九)의 순서대로 모습을 드러나게 되는 것이얘요. 그래서, 칠(七)을 하늘 자연의 수(數), 팔(八)을 땅 물질구조의 수(數), 구(九)를 사람 생명의 수(數) 이렇게 구분지어 정리할 수도 있는 것이얘요.
좀더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본다면요, 먼저 하늘 자연의 수(數)인 칠(七)을 이얘기해 봅시다.
구약성경의 창세기 편을 유심히 잘 읽어보면 우주창조원리를 첫째 날에 뭐 만들고, 둘째 날에 뭐 만들고 하면서 일곱째 날에 모든 창조가 마무리 된 뒤 삼신하느님께서는 푹 쉬셨다고 써 있습니다. 여기서 일곱 째 날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달력을 얘기하면서 첫째 날, 둘째 날은 아니겠지요. 창조의 모든 과정을 표현하는 자연의 수인 칠(七)을 쓴 것이란 말입니다. 물론 첫째 날, 둘째 날 하는 날자가 몇 천만년, 또는 몇 억년이 될지도 모르는거구요. 이왕 이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세계의 모든 성경학자들과 또 우리나라의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왈가왈부 하며 떠들고 있는 즉, 사람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서 한번 짚고 넘어가 정리정돈 좀 해보자구요.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온갖 가축과 들짐승들과 땅위에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그대로 하느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지요? 진흙으로 빚고 그리고 사람의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셨지요, 그런 다음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
“자녀를 많이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들 땅위를 다니는 모든 짐승들을 부려라”
하셨는데 ‘정복하라’, ‘부려라’ 하는 용어들이 원문에는 어떻게 쓰여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배달겨레의 옛님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함께 하며, 그리고 모든 생명체들 하고는 서로서로 사랑을 하고 지내라는 ‘홍익인간’ 사상이었지 ‘정복하라’, ‘부려라’ 하는 공격적 용어는 쓰지 않았습니다. 아마 어쩌면 이러한 용어들은 영문판을 번역하면서 나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나라 성서가 번역될 때 히브리어 원전, 영문판, 그리고 한문으로 된 중국 성경을 참고로 하여 번역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 아닌가요?
성경에서 나오는 전지전능하신 절대자의 명칭이 히브리어 원전에서는 여호와(야훼), 중국의 한문성경에는 천주(天主), 영문판에서는 神(GOD) 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수천 년 전부터 우리 겨레가 써오던 하느님(하나님)을 예수교 사상으로 고착화시켜 이상한 하늘놀음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도무지 헷갈리는거얘요
그건 그렇다 치고, 사람을 만들 때에 하느님 자신의 모습과 똑같이 만들어 놓았다 하였으니, 사람의 모습과 닮은 하느님이 하늘 위 어디 특수한 공간에 계시면서 지상의 모든 것을 손금 보듯이 빤히 내려다 보신다고 우리 어렸을 때 교회에 다니면서 수없이 들어왔던 이얘기 아닙니까?
물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구요
하느님은 우리가 지금까지 계속 천부경 공부하면서 이얘기 했지만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의 일(一)을 이얘기 하는 겁니다. 순, 우리말로는 ‘한’이라고 했지요. 여기에 ‘님’ 자를 붙여버리면 방편상 인격화가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한(하느님)은 빛깔도, 모습도, 냄새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모습은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다는 거얘요. 그렇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잖아요. 우주에 꽉 차있습니다. 우주는 끝이 없으니까요. 하느님 역시 시작도 끝도 없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 계시다 안계시다 하는 말 따위는 성립이 안된다는 거얘요. 안계신 곳도 없고 계신 곳도 없고 계시기도 하고 안계시기도 하고 좀 혼란스럽지요?
그렇다면 하느님과 모든 만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만물들은 하느님의 마음 작용에 의해서 드러난 현상들인 것이지요. 이러한 것들을 분상 또는 허상이라고들 이얘기 합니다. 우리들도 사실 똑같은 허상들에 불과한 거얘요.
단, 모든 다른 만물들과 달리 사람은 생각을 통해서 짜고 또 죄어 짜다보면 하느님의 마음과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며, 그 순간 하느님과 자기는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며, 동시에 세상의 모든 만물들도 또한 하느님처럼 보여 하느님과 똑같이 사랑할 수 있는 거얘요.
그래서 성경의 창세기에서는 은유법으로 하느님과 사람은 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창조설을 얘기한 것이지, 정말로 사람을 닮은 형상으로 하느님이 계시어 진흙으로 떡 주무르듯이 사람을 만들어 놓고 하느님께서 입김으로 코에 숨을 불어 넣어 주셨다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종교적 표현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네요.
다시 말해 ‘모세’의 그 깊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가면서 성경의 모세 5경(창세기, 출애굽기, 문수기, 신명기, 레위기)을 읽어보자 이겁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