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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월과 여족과의 관계 및 역사
  
   작성자 : 배달문화원
작성일 : 2018-02-03     조회 : 616  


여족은 오나라, 월나라를 세우는데 일조를 하였는데 이러한 일조를 한 내용은 묘족의 기록과 같으므로 생략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오나라와 월나라는 오랜 기간 숙적이었다. 이들 간의 대립은 오왕 합려(闔閭)의 시기에 절정을 이루는데 우선 합려가 어떠한 인물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사기 오태백세가(史記-吳太伯世家)에 의하면, 공자 광(光)의 부친인 제번(諸樊)은 오나라 초대 국왕 수몽(寿夢)의 장자였다. 수몽에게는 이 외에 3명의 아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막내 계찰(季札)은 현인으로서 명성이 자자했다. 부친인 수몽도 거기에 기대하여 계찰을 차기 왕으로 정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계찰(季札)은 형을 두고 자신이 왕위에 즉위하는 것에 원하지 않았고 제위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우선 제번이 오나라 왕위를 이었고 그 후를 동생인 여제(余祭)가 제위에 등극하는 등 형제 계승의 순서를 정했고, 마지막에 계찰이 왕위가 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계찰은 여매(余昧)에게 왕위를 양보하지만 여매가 이를 거부하여 도주했기 때문에 왕위는 결국 여매의 아들인 요(僚)가 계승되게 되었다.

이러한 계승 문제에 대해 수몽의 장남 제번의 아들인 광은 불만을 갖게 된다. 지금까지 형제의 사이에 차례로 왕위를 돌려 왔기 때문에 계찰이 왕이 된다면 계찰이 여매에게 양위하고 여매가 도주한 다음은 차례대로 장자의 아들인 자신이 왕위를 이어야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광은 자신의 불만을 숨기면서 요를 근위 대장으로써 시중들었고 장군으로는 여족과 장족의 군사들을 활용하여 초나라를 토벌했고 제나라의 남침을 격퇴하는 등 명장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장족(壯族)의 군대는 긴 창을 착용했고 근접전에 능했으며 여족은 기마병으로 활을 다루는데 능했다 한다. 이러한 장족과 여족의 군대는 대부분 광에게 합류했고 도합 10만의 장족, 여족의 군단이 광의 심복이 되었다.

당시 초나라의 오자서가 오나라에 망명해오면서 광에 의해 기용되었고 오자서는 광의 책사가 되었다. 남방의 책사 오자서(伍子胥, ? ~ B.C 485)는 자서(子胥)는 자이며, 이름은 운(員)이다. 본래 초나라 출신으로 오자서의 부친 오사(伍使)는 초 평왕(平王) 태자의 스승이었다. 평왕과 태자의 사이가 악화되고 태자가 폐위되면서, 오사와 장남 오상(伍狀)은 평왕에 살해되었다. 오자서는 복수를 다짐하고, 태자와 함께 정(鄭)나라로 탈출한다. 정나라로 간 태자는 진(晉)나라의 정치적인 부추김과 원조로 정나라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지만, 역으로 정 정공(定公)에게 살해된다. 오자서는 태자의 아들과 함께 이번에는 오나라로 도주했다. 오나라로 간 오자서는 제번의 아들 광(光)을 만나 그를 주군으로 모시게 되었던 것이다.

오자서는 광의 야망을 알게 되면서 암살자로 전제(専諸)를 추천했다. 전제는 요에게 다가서서 물고기 요리를 올렸고 물고기 안에 감추고 있던 비수를 꺼내어 오왕 요를 살해했다. 요를 시해한 전제는 호위병에게 살해되었고 오나라 왕의 자리는 공석이 되었다.
공자 광은 이어 오나라 왕에 즉위하였고 오자서, 손무(孫武) 등과 함께 초나라와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손무는 제나라의 명문인 전씨(田氏) 집안 출신으로, 전완(田完)의 5대 손인 손무의 조부가 군공(軍功)을 얻어서 손씨(孫氏)를 하사 받아, 손씨(孫氏)의 선조가 되었다. 손무는 초년부터 병서를 즐기고, 황제(黃帝)와 사제(四帝)의 전투나 고대의 이윤(伊尹), 강상(姜尙), 관중(管仲)등의 용병술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B.C 517년경, 가문에 내분이 일어나고, 손무는 일족과 함께 강남 지방 오(吳)나라로 피신하여 오나라의 재상 오자서(伍子胥)를 알게 되었다. 손무는 그 후, 오나라의 수도 근처의 산간에서 칩거하여『孫子兵法』13편을 저술했다고 전해진다.

B.C 515년 오자서의 추천으로 오나라 왕 합려의 초빙을 받아 오나라의 군사(軍師)가 되었다. 이러한 군사로 등용된 일화로 합려가 손무의 용병술을 시험하고자 하여, “선생의 병법 13편을 모두 읽었지만, 궁녀들을 조금이라도 군의 지휘를 따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까?” 라고 하자, 손무는 이것을 승낙했다. 궁녀 180명을 내어주며 훈련시키도록 하자, 손무는 합려가 가장 아끼는 궁녀 둘을 대장으로 세워 훈련을 시켰다. 그러나 궁녀들은 훈련에 따르지 않고 장난처럼 여겼다. 그러자 손무는 군령을 세우기 위해 궁녀 둘을 처형하도록 하였고, 합려가 용서해 줄 것을 간청하였으나, 손무는 군령은 왕명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며 사형을 집행하였다. 그리고 다시 다음가는 궁녀를 뽑아 대장으로 삼고 훈련을 시키자, 모든 궁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해 합려는 기분이 상했고, 손무는 그러한 합려를 낮게 평가했으나, 이후 합려는 오자서의 설득을 받고 손무를 중용하여 상장군으로 삼았다.

손무는 오나라의 주력 군대인 여족과 장족의 군대를 훈련시켜 강력한 군대를 만들었고, 초나라와 대항할 수 있는 국력을 만들 때까지 무리한 군사 행동을 자제하였다. 그러면서 초나라의 침략을 여러 차례 격퇴하며 수성전으로 국력을 향상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B.C 506년, 합려는 손무와 오자서를 대장으로 삼고 여족과 장족의 군대 8만을 거느리게 하여 초나라 원정을 개시하였다. 손무의 전략에 의해 오나라 군은 연전연승하여 초나라의 수도 영(郢)을 함락시켰다. 초나라 평왕은 이미 죽은 뒤였기 때문에 오자서는 묘를 파헤치고 평왕의 시체를 300번이나 채찍질하여 원한을 풀었다 전해진다.『史記-伍子胥列傳』에 의하면 이를 두고 예전의 친구였던 신포서(申包胥)가 매우 가혹함을 비난했지만 오자서는 “나의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머니, 도리를 역행할 수밖에 없다.(吾日莫途遠,吾故倒行而逆施之。)”고 하였다고 한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의 사자성어 일모도원(日暮途遠)은 여기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로써 오나라는 초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였으나 이후 진(晉)나라가 개입했고 초나라와 진나라의 연합군이 반격을 개시하자 오나라는 초나라 수도 영에서 철군하였으나 그 후로도 오나라는 강력한 군대를 바탕으로 패자의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오나라의 원정 도중 월나라가 오나라를 침략했고 더불어 동생인 부개(夫改)가 왕을 참칭하여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에 더 이상 초나라를 정벌하지 못하고 본국에 돌아와 난을 평정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합려는 B.C 496년 오자서와 손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월나라를 정복하기 위해 대군을 거느리고, 침략을 강행하였다. 당시 월을 공격했던 부대는 대부분 장족(壯族)의 군대로 초나라를 멸망의 위기로 몰았던 강한 군대였다. 특히 이 부대는 B.C 506년에 당(唐)나라, 채(蔡)나라와 연합하여, 초나라의 수도 영(郢)을 함락시키는 전과를 거두어 초나라를 거의 멸망 직전으로 몰아넣었던 오나라에 있어 가장 강한 부대였다. 그러나 월나라 재상인 범려(范蠡)는 죄수들로 이루어진 특공대를 조직하여 오나라 군이 보고 있는 앞에서 목을 스스로 베게 한다. 경악하는 오나라 군대를 급습하는 전략으로 인하여 오나라 군은 대패하고, 합려는 이 때 다리에 활까지 맞아 상처가 덧나서 사망하게 된다. 대신 장자인 부차(夫差)가 오나라 국왕으로 즉위했으며 부차는 부친의 원한을 잊지 않기 위해, 장작 위에서 잠을 자고 검소하게 생활하며 철저한 복수를 계획했다.

오자서의 도움으로 국력을 충실히 키운 오나라는 세력을 북방과 서쪽으로 확대해갔다. 후환을 두려워한 월나라 구천이 침략을 단행하려 했다. 이 때 범려가 만류하였으나 구천은 이를 듣지 않고 오나라를 침략했다. 부차는 오자서와 더불어 손무의 전략으로 월나라를 패주시켰고 역으로 월나라를 공격하여 월나라의 수도인 회대(淮待)를 함락시키며 이번에는 월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위기에 몰린 구천은 범려의 진언에 따라 남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인 서시(西施)를 부차에게 바치면서 항복을 청하였다. 월왕 구천은 부차에게 머리를 조아려서 신하를 자처하고, 문종(文種)은 구천을 구명하려고 부차의 측근인 재상 백비(伯嚭)에게 많은 뇌물을 주고 구명운동을 벌였다.

이 때 오자서는 구천을 죽일 것을 강력하게 주창하지만, 부차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백비의 설득으로 인하여 월나라를 속국으로 삼는 것으로 끝을 내었다. 그 대신 월나라를 철저히 파괴하여 재기가 가능하지 못하게 했다. 이후 구천은 오나라로 가서, 부차의 하인이 되어 열심히 부차를 섬겼다. 구천은 부차의 부친인 합려의 묘지기 일을 보고 왕후와 함께 부차의 명에 의해 삭발하는 등 수모들을 겪으며 부차의 방심을 유도했고 이후 초나라를 거쳐 월나라로 돌아오게 된다. 

구천은 이 때의 억울함을 잊지 않고 방에 쓴 쓸개를 매달고 매일 그것을 맛보면서 복수를 다짐한다. 복수의 대명사로 통하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가 이 때 탄생한 것으로 보여 진다. 반면 부차는 계속 국력을 신장하여, 북쪽으로 황하 유역에 진출하여, 패자를 노릴 수 있는 위치로 상승했다. 오자서는 “제나라가 피부병이라면 월나라는 속병이니, 패권주의를 접고 내실을 다져야 한다.” 라고 진언하지만, 부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월나라에 대한 지속적인 경계를 강력하게 주창한 오자서와 중원 진출을 통해 패자가 목표인 부차와의 사이는 끝내 가까워질 수 없었다. 한편 월나라의 범려는 서시와 오나라의 신하 백비를 이용하여, 부차에게 오자서를 중상모략 할 수 있게 공작에 들어갔다. 재상 백비는 다양한 수단으로 부차와 오자서를 이간질하게 되면서 오나라 내에 자신의 정치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은 오자서는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아들을 제나라에 맡겼다. 그러나 스스로는 오나라를 버리지 않겠다고 하여 귀국했고, 이 일로 인하여 백지의 중상모략이 심해졌다. 결국 오자서는 부차로부터 자결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 때, 오자서는 자신의 목을 베어 월나라 방향의 성문에 걸어두고,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결하게 된다. 그 말에 격노한 부차는 오자서를 가죽 자루에 넣어 강물에 버렸지만, 오나라 백성들이 오자서의 시신을 거두어 근처에 사당을 짓고 그를 추모하게 되었다.*

* 삼국시대 위나라 조조는 관도 대전의 때에 자군에게 내려온 장합 등을 마중 나갈 때에 오자서의 최후를 인용하여 이르기를,「오자서는 시중드는 군주를 오인한 일을 깨닫는 것이 늦었다. 너가 나에게 항복한 것은 미자계가 은나라를 배반해 주를 시중들어 한신이 항우의 아래를 떠나 유방을 시중든 것과 같은 정당한 행동이다」라고 하여 편장군으로 임명해, 도정후에 봉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건은 중상모략에 떨어져 오사에 이르렀다. 상은 아버지의 명령대로 했으나 오원은 달아나 오에 갔다.」라고 열전의 6권에 「오자서 열전」으로서 다루어지고 있다. (伍子胥在浙江一帶地區被稱為潮神。王充《論衡》曾說:「山陰、上虞在越界中,子胥入吳之江為濤,當自上吳界中,何為入越之地?怨恚吳王,發怒越江,違失道理,無神之驗也.)

B.C 485년, 부차는 군대를 거느리고, 제나라를 공격하여 제후의 맹주인 패자로 인정을 받으려 하였다. 하지만 원래부터 화북의 맹주였던 진(晉) 나라가 이와 같은 오나라의 회맹에 격렬히 반대했다. 따라서 B.C 482년, 패자를 두고 주도권 다툼으로 인한 진(晉)나라와 오나라 사이의 전쟁이 벌어졌고 부차는 진나라의 군대와 대결하기 위해 직접 수도를 비우고 황하 지역으로 출병에 나섰다. 한편 굴욕을 당한 직후 월나라로 돌아간 구천는 서서히 국력을 끌어올리고 내치를 다져 국가를 안정시켰다. 그리고 부차가 수도를 비우고 진나라와 격전을 벌이러 출전한 틈을 이용하여 오나라에 대한 대대적인 침략을 단행한다. 구천은 비어 있는 오나라의 수도인 수춘(守春)을 점령하고 부차의 태자인 우(宇)를 처형했다. 이에 부차는 진나라와 화의를 맺고 빠르게 퇴각했지만 그 동안 세력을 축적하여 강력해진 월나라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부차는 월나라와의 계속 패하고 결국 자결하여 생을 마감함으로써 오나라는 월나라에 멸망하고 말았다.

오나라를 멸망시킨 구천은 월나라의 수도를 현 강소성 연운항(連雲港)으로 천도하고, 제후들을 모아 회맹하여 중원의 패자가 된다. 공신인 범려는 또 다른 총신인 문종에게 구천은 고생은 함께 할 수 있으나 낙은 함께할 수 없는 관상이라 은퇴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문종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범려는 사직하고 천하를 주유한다. 결국 범려의 예견대로 구천은 신하들에 대한 숙청을 자행하여 문종 역시 구천에게 참수되었고 구천이 사망한 B.C 464년을 계기로 월나라도 쇠퇴하여 결국 초나라의 공격을 받고 멸망했다. 이후 다수의 여족은 광서, 운남, 사천 일부 지역으로 이동하여 남월에 합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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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이식쿨 호수
여긴 예전부터 올때마다 궁금했다. 천산과 이식쿨 호수가 있는데 왜 황무지가 됐을까? 그 황무지엔 소규모 공장과 위락시설이 들어섰다. 황무지 사이에서 푸른 호수.. 바로 이식쿨 호수다.  이 인근에서 고대 사카인들이 주로 거주했다. 그리고 그레코-박트리아, 파르티아 등도 이 지역을 지배했고 그 이후에는 돌궐이 장악…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12-30  |  Hit: 626
159. 중앙아시아의 스위스 키르기스스탄 그리고 천산
Ak-Beshim 에 도착했다. 정면의 천산의 줄기인 Семиенова 산맥이 장관이고 그 앞에는 초원길이다. 입장료는 없고 유적터만 남아있는 서돌궐의 수도이다.  580년 사궤가한이 수도로 삼은 직후, 서돌궐이 멸망한 657년까지 77년간 짧고 굵은 명맥을 이어왔다. 통엽호가한이 전사한 이후, 서돌궐 체계가 와해되었고 안서도호부에 편입…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12-30  |  Hit: 632
158. 투르크 석인상
투르크 석인상. 이건 원래 여기 있었던 것도 있지만 각지에서 모아온 상들이 많다. 투르크 석인상 Balbal은 조상 혹은 아버지를 뜻한다고 한다. 연대와 시대는 스키타이 때부터 몽골 시대까지 이어지는데 유목민족의 상징으로 제주도 돌하르방과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다. <정길선님의 페이스북 바로가기>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12-30  |  Hit: 493
157. 킵차크-쿠만 (폴로베츠) 족의 등장과 중앙아시아의 군웅할거(群雄割…
킵차크-쿠만 (폴로베츠) 족의 등장과 중앙아시아의 군웅할거(群雄割據) 시대 GIL SUN JUNG 폴로베츠 족에 대한 최근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그들이 서쪽으로 이동하기 전에 중앙아시아에는 이틸 - 시르다리야 강 - 이르티쉬를 잇는 지역으로 오우즈 계통의 민족과 토볼(Tobol)과 이쉼(Ishim) 주변에는 킵차크 족, 이곳에서 알타이 방향에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12-29  |  Hit: 1275
156. 서돌궐과 설연타를 이해하는 핵심 돌궐사
서돌궐과 설연타를 이해하는 핵심 돌궐사 GIL SUN JUNG 수나라가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동돌궐은 당국공(唐國公) 이연(李淵), 이세민(李世民) 부자를 지원하여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당(唐)나라가 들어섰다. 그리고 627년 이세민이 즉위하여 태종(太宗)이 되자 동돌궐은 당나라를 공격해 수도인 장안까지 밀고 들어갔다. 여기에 당…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12-29  |  Hit: 1027
155. 키르기스스탄에 널려있는 암각화를 본뜬 그림..
키르기스스탄에 널려있는 암각화를 본뜬 그림.. <정길선님의 페이스북 바로가기>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12-29  |  Hit: 931
154. 키르기스 인들의 기원과 민족 정체성
키르기스 인들의 기원과 민족 정체성 GIL SUN JUNG 키르기스 인들은 중앙아시아의 투르크족 유목민 계통의 종족으로 현재 키르기스스탄의 주민 중 60.8%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중국 북서부 신강성 위구르 지역의 산악 지방과 고원, 아프가니스탄 바한(Bahan) 지협 부근 등에서 거주한다. 언어는 알타이어계 돌궐어족에 속하고 문자는 아라비…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12-29  |  Hit: 621
153. 이식쿨 호수
이식쿨 호수는 굉장히 크고 깊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크고 수심 또한 세계에서 두번째로 깊은 산정호수가 이식쿨 호수다.  그럼 세계에서 가장 큰 산정호수는 어딜까? 정답은 남미 페루, 볼리비아의 티티카카 호수다. 그럼 세계에서 가장 깊은 산정호수는 어딜까? 정답은 백두산 천지다. 사람들은 여태까지 백두산이 얼마나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12-28  |  Hit: 580
152. 오트라르
오트라르  카자흐스탄의 서부에 있는 심켄트는 우즈베키스탄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도시다. 이곳에서 서북쪽으로 약 80킬로미터 지점에 고대 실크로드의 요충지인 오트라르(Otrar)가 있다. 이곳의 원래 명칭은 ‘파라브’였다. 10세기부터 통상의 길목으로 떠오르면서 시장이 생겼고 도시로 번성했다. 당시 지리학자인 막디시의 기록…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12-19  |  Hit: 780
151. 외스케멘의 외튀켄 알타이 유적
외스케멘의 외튀켄 알타이 유적 이곳에서 정주한 사카인들의 유적과 다수의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정길선님의 페이스북 바로가기>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12-19  |  Hit: 832
150. 탐갈리 암각에 새겨진 그림들..
탐갈리 암각에 새겨진 그림들..  암면 조각들은 연계된 정착지, 매장지, 제단 등과 함께 청동기 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이 지역에 살았던 거주민들의 사회적·문화적 삶을 반영한다. 거주지가 전혀 형성되지 않았던 협곡에서는 5개의 주요 암면 조각 군집이 발견되었다. 인근 계곡에는 무덤과 종교 구조물이 있으며, 산 주변에는 정…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12-19  |  Hit: 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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