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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인간과 사회의 변화 - 생태계 속의 인간
  
   작성자 : 배달문화원
작성일 : 2019-11-26     조회 : 600  

3. 인간과 사회의 변화


생태계 속의 인간

생태계란 먹이사슬에 의해 일련의 관계를 맺고 있는 생물들의 세계와 자연적 환경과의 총체이다. '생산자-소비자-분해자'의 삼극으로 형성되어 있는 생태계 먹이사슬 속에서 모든 생물은 생산자인 녹색식물이 만든 탄수화물 속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생명활동을 한다. 또한 동식물의 주검이나 배설물 등을 분해하는 부식성의 미생물이 있어 분해된 유기물을 녹색식물의 자양으로 사용하게 된다.

생태계의 하나로 이어진 먹이사슬을 오행의 형식을 빌려 상생순서에 대입시키면 木이 녹색식물, 火가 초식동물, 土가 육식동물, 金이 인간, 그리고 水가 미생물로 분류될 수 있다.

녹색식물 木은 전체 생물들이 활동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한다. 인간은 오행상 金이 의미하듯 가장 강하고 완성된 종단점에 위치해 있다. 녹색식물 木이 불급하게 되면 초식동물, 육식동물 그리고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두 위기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초식동물 火가 불급하면 따라서 육식동물도 피폐해지고 인간도 녹색식물에 제한되어진다. 육식동물 土가 불급하면 초식동물 火가 과태하여 녹색식물 木이 극도로 소모되어지며 전체 생물들이 위기에 처하게 된다.

생태계에서 이러한 먹이사슬의 조화는 전체 생물들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먹이사슬 그 자체만은 아니다. 자연환경의 변화야말로 생태계 먹이사슬에 안정성을 주기도 하고 혼란을 초래케 하기도 한다.

빙하기가 닥치자 많은 생물들이 도태되었다.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생물들이 추위에 ?겨 대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생태계는 일대 변란을 겪게 된 것이다. 자연환경의 변란은 빙하기 이후에도 크게나 작게 계속 발생하여 왔다. 지구상에 처음 생물이 생겨난 이후 많은 생물들이 지구상에서 도태되어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생물세계 전체를 한눈으로 본다면 생물개체의 생과 사는 점멸하듯 진행되고 있다.

생태계의 변화가 어떤 생물 하나의 종 전체에 부적합한 공통적인 특징으로 작용한다면 그 종은 전체적으로 절멸하게 될 것이다. 지구상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공룡같은 동물은 멸종되고 바퀴벌레같은 곤충은 수억년 이상을 존재하여 왔다는 것이 생태계의 적응의 차이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생태계의 변화가 아무리 극심하더라도 버틸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생물은 살아 남을 것이고 아니면 도태되지 않기 위한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이는 생명의 목적인 자기실현 그 자체이다. 보다 나은 환경을 찾아 이동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고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찾아 살아남게 될 것이다.

외부로부터 먹이를 획득하는 활동과, 자기와 같은 것을 태어나게 하는 종족보존 활동, 그리고 이러한 먹이확보와 종족보존을 더욱 용이하게 하기 위한 활동이 생명활동의 삼극으로, 변화하는 생태계 속에서 변화를 이루어내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생명활동의 삼극 즉 생명활동의 본질적인 특성을 실현하는 것이 생물진화의 기본적인 동인이다. 진화란 생물의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변화를 의미한다. 

'내인'으로서의 신체구조, '외인'으로서의 생태계 환경, '불내외인'으로서의 적응과 대처라는 삼극적 요인에 의해 진화는 결정되어진다. 도태될 것인가, 아니면 뜯어 고칠 것인가 하는 결단을 해야 한다. 도태되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는 말릴 수 없다. 도주할 것인가의 결단도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뜯어 고칠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서 자기 자신을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뜯어 고치는 것이 내부에 의한 문제해결이며, 환경을 뜯어 고치는 것이 외부에 대한 문제 해결이며, 신체구조와 생태계 환경 모두를 뜯어 고치는 것이 내, 외부에 대한 동시적인 문제해결이다.

도태된 생물들은 지금 우리가 만날 수 없게 되었고 도주한 생물들은 수십만년전 또는 수백만년전의 그 모습 거의 그대로 지금 변함없이 만날 수 있다. 뜯어 고친 생물들도 지금 우리가 만날 수 있지만 한참 기억을 더듬어야 알아볼 수 있다. 인간도 뜯어 고친 생물중에 하나인데 단순한 하나가 아니라 극점에 도달한 하나이다.

변화를 시도한 생물들의 경우 공통점은 신체구조를 변화시켰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환경에 대한 적응을 위해 자기 몸을 맞추어나가게 된 것으로 이것은 살려고 하는 생명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되는, 자기 몸으로 갖고 있는 도구의 변화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코끼리의 짧았던 코가 길어진 것이라든가, 기린의 목이 길어졌다라든가, 말이 옛날에는 개나 고양이 만한 크기에서 오늘날 말의 크기로 되었다든가 하는 추측들이 도구의 변화와 연관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도구는 먹이를 ?게 된다. 먹이를 ?아 코가 길어지고 목이 길어지고 하듯이 인간은 먹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진화의 극점이 맹수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갖추고, 몸통에는 독수리의 커다란 날개를 달고, 어둠속에서의 활동을 위한 적외선 탐지능력을 갖춘 눈과, 개들의 민감한 코와 귀, 박쥐의 초음파 송수신능력, 그리고 물 속도 헤엄칠 수 있는 뒷발과, 부레와 아가미를 갖춘 수륙양용 호흡기관 등을 한 몸에 갖춘 것으로 되지 않고 기껏 먹이를 향해 뻗는 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손은 수천 수만가지의 도구의 역할을 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손이다. 여기서 환경을 뜯어 고칠 수 있는 힘이 발휘되므로, 이 손은 인간을 동물속에서 구별해내는 척도인 것이다.

원숭이도 먹을 것을 ?아 손이 나가는 종이다. 그런데 이 원숭이들은 생태계의 변화 속에서 도주하는 것을 선택하는 부류에 포함된다. 수십만년전 또는 수백만년전이나 지금이나 특별한 차이가 없다. 이들의 두개골을 모아 연구를 해도 그때나 지금이나 원숭이일 뿐이다.

서양인들은 인간을 창조한 것은 백인의 모습을 한 절대자라 하기도 하고, 외계에서 온 우주인이라고도 하고,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고도 한다. 백인의 모습을 한 절대자나 외계에서 온 우주인에 의한 인간의 생성을 다루게 될때는 생태계에서의 생물학적 진화의 문제는 논외가 된다. 그러나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고 하는 문제는 생물학적 진화의 문제와 연관된 중요한 논점이며 이미 많은 사람들의 통념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결론을 도출해내는 방식에는 심각한 함정이 있다. 기계론적 세계관에 의한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은 존재하는 동물들의 해부를 통하여, 간단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으로 임의배열하여 인간을 정점에 놓고 진화의 코스를 매기는 방식이다. 마치 재산을 기준으로 하여 빈털털이로부터 세계 최대갑부에 이르는 코스를 잡아 놓고, 인간가치의 우위를 비교한다든가 또는 갑부가 되어나가는 필연적 과정을 설명하는 이데올로기적 발상과 본질상의 차이가 없다.

동물들의 비교를 통해서 보면 고등동물일수록 뇌의 겉면에 주름이 많다. 이것은 좁은 머리 안에 되도록 많은 뇌세포를 넣기 위해서 주름으로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개구리나 쥐 또는 토끼 등의 뇌는 주름이 별로 없으나 개나 원숭이의 뇌에는 많은 주름이 있고, 그보다 사람은 더 주름투성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돌고래는 사람보다 주름이 더 많으며, 주름이 없는 쥐의 경우 주름이 많은 다른 동물보다 학습능력이 앞서가는 점이 적지 않다.

뇌의 무게를 보게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이 1,350~1,400그램이라고 한다. 보통 세계적인 위인들의 뇌가 무겁다는 견해가 지배적인데, 백치들 중에는 위인들의 평균치 보다 더 무거운 2,000그램이나 되는 것도 있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치 보다 작은 1,000그램 정도의 뇌를 가진 세계적 위인도 있었다. 코끼리의 경우 암놈은 4,000그램이고 숫놈은 7,000그램이나 된다.

뇌를 이루고 있는 신경세포의 수를 보면 보통 140억~150억 개이고, 대머리 문어는 1억 7천만 개, 그리고 보통 원숭이는 8억개 정도이나 침팬치는 사람의 두 배인 308억 개나 된다.

서양인들이 좋아하는 뇌에 대한 예를 든 것은 단순하게 외형적인 모습이 비슷하다고 해서 본질이 같은 것이 아님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원숭이와 인간의 중간 크기 정도의 뇌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원숭이와의 연관성을 결정짓는 완벽한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앞서 말한 바처럼 수백만년전의 원숭이는 아직도 원숭이임을 생각할 때 그 중간 크기 형태의 뇌가 인간의 뇌였다고 해도, 더 그 이전의 형태를 가상할 때 원숭이와는 차원이 다른 본래부터의 인간류로 추리해 들어가는 것이나 근거상의 차이는 없는 것이다.

군집성을 갖는 동물들의 사회적 형태에 있어서도 과거나 지금이나 차이를 나타내는 흔적은 없다. 원숭이가 고도의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이지만 그 사회생활의 형태에는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이다. 원숭이 정도의 사회생활은 군집성을 갖는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물개사회도 원숭이사회와 흡사한 형태를 유지한다. 꿀벌사회는 노동과 생식 등의 역할분담을 몸으로부터 갖고 나오며 육각형 구조의 완벽한 기하학적 건축물을 짓고 산다. 하다못해 초파리같은 곤충이나 콩같은 식물들조차, 고도의 협동능력을 발휘하여 생태계에 적응하는 군집성을 갖는다. 이러한 것들은 원숭이와 특별하게 구별되는 것들이 아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불과 수십초만에 1명씩 발생되고 있다는 에이즈의 시원을 아프리카대륙의 케냐라고 미국의 당국자가 발표한 적이 있다. 케냐 사람들이 푸른원숭이와 성교를 갖게 되면서 에이즈가 생겨난 것이라는 주장으로 약소국 케냐만 비참하게 되었다. 또한 서양인들은 개를 무척 사랑하여 개고기를 먹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야만인이라고 비난하여 왔다. 이 바람에 88올림픽을 앞두고 개고기를 먹을 자유까지 탄압하는 정책이 발효되었었다. 서양인들이 개를 사랑하는 것은 개와 잠자리를 같이 하고 셩교를 하는 정도에 까지 이르러 있으며, 심지어는 개와 성교하는 장면을 비디오로 제작 보급하는 데서도 그 열정을 엿볼 수 있다. 문화수준의 차이지만 우리나라 사람 중에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기겁할 노릇인가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리고 앞서 말한 뇌를 좋아하는 서양인의 그 뇌란 바로 자신들이 주장하는 인류의 조상이라는 원숭이의 뇌를 말한다. 서방계 중국인들을 포함하여 서양인들은, 원숭이를 산 채로 묶어놓고 탁자에 뚫어 놓은 구멍으로 머리만 나오게 한 다음 원숭이의 찢어지는 비명소리를 즐기며 톱으로 머리뼈를 절단하여 뇌를 파먹는다.

조상에 대한 숭모심이 뿌리깊은 조선민족에게 있어서 원숭이를 인류의 조상이라고 하면 틀림없이 원숭이 뇌 요리에 손을 대지 못할 것이다. 또한 미당국이 원숭이와의 성교가 에이즈감염의 원인이라고 발표하였기 때문에 아프리카 사람들도 원숭이를 피해 달아나게 될 것이다. 얼마나 맛이 있는지 모르지만 특급 요리라는 원숭이의 피흘리는 생뇌요리는 서양인들이 독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뭏든 이러한 원숭이가 인류의 조상이라는 서양인들의 주장은 몇가지 개념상 또는 분류 표현상에서 재정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원숭이가 오래 전 인류의 조상들과 생활방식이나 외형이 비슷하다는 것과 그것이 곧 원숭이라고 하는 것에는 차원이 다른 차이가 발생하는 것으로 인류의 진화과정이 목적의식적인 창조적 진화이냐 아니면 본능에 따른 진화이냐의 차이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사실상 이것이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진화방식의 가장 커다란 차이이다. 원숭이와 같은 외형적 모습조차도 갖기 훨씬 이전이라고 가정해도, 인간의 진화는 목적의식적인 창조적 진화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이고, 원숭이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은 본능적 진화였기 때문에 특별한 변화의 양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인간류로서, 인간종으로서, 자기만의 독특한 발전과정을 통하여 창조적인 진화를 해 온 것이다. 다른 동물들은 본능적 진화였기 때문에 생태계의 고정된 틀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며, 인간은 생태계 환경을 목적의식적으로 변화시켜 냄으로써 먹이사슬을 손아귀에 쥘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목적의식적인 창조적 진화는 퇴화를 수반하게 된다. 두더지의 눈도 퇴화의 증거이나 그것은 보다 나은 발전을 위한 퇴화라기 보다는 환경에 순응하기 위한 퇴화이다. 그러나 인간의 퇴화는 오행의 원리인 상생을 위한 상극작용처럼 진화를 위한 퇴화로서, 상황변화에 따라 새로운 능력을 키우고 그에 따라 불필요한 것을 정리하는 의미에서의 퇴화이다.

또한 인간의 진화가 이러한 것이었기 때문에 신체구조의 변화라는 내부적 변화에 종속되지 않고, 외부적 조건의 변화라는 차원이 다른 진화방식의 극점에 있는 것이다. 인간은 생태계의 변화 속에서 자신과 생태계 자체를 모두 뜯어 고쳐 나가는 유일한 존재이다. 이것이 바로 생물학적, 사회적 진화의 통일된 모습인 것이다.

생태계의 엄숙한 질서체계 속에서 홀로 우뚝 선 인간의 모습은 가히 만물의 영장이다. 그러나 인간도 생태계의 질서를 파괴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이 틀림없다. 오행이란 바로 이 생태계를 전제로 한 것이며, 오행의 원리란 생태계의 변화운동의 원리임과 동시에 그를 잘 다스리기 위한 원리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마음 속에는 삼극적 세계관과 오행원리를 담고, 양손에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움켜쥐고, 생태계를 지키는 우두머리가 되어 인류사의 위대한 시원문명을 창조한 것이다. 





글 : 천지자연의 법 유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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