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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주의제국 단군조선
  
   작성자 : 배달문화원
작성일 : 2020-03-08     조회 : 1,056  

사회주의제국 단군조선

[단군조선사 연구의 의의]

단군조선사의 연구는 문헌이 기본이 되고 언어학, 고고학, 민속학 등 여러 학문이 동원되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의 기본이 되는 문헌들은 침략자(모용외의 난, 관구검의 난, 당나라의 침입, 몽골의 침입, 일제의 강점)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을 뿐 아니라 국내 지배계급에 의해서도 파괴되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사료들 중 국외에 있는 것들은 외래(外來) 침략자에 의해 변조, 각색된 것이 대부분이며, 국내의 것도 계급지배의 필요성과 사대주의자들에 의해 왜곡 기술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역사가 파괴된 경우는 천하만국에 없으며 만일 역사의 정령이 있다면 실로 처참의 눈물을 뿌릴 것이다'라고 한 신채호님의 지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우리 모두의 통분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철저히 파괴, 왜곡된 문헌을 새롭게 해석해 냄과 동시에 고고학, 언어학, 민속학 등을 동원하여 우리의 찬란한 민족사의 서막을 다시 복원하는 일은 우리 민족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서양의 역사와 문화가 세계보편의 진실과 아름다움으로 그대로 강요되고 있으며, 서양식의 역사발전 방식과 서양의 과학문명이 우리의 이상향을 실현시켜 줄 것이라는 장미빛 환상이 민족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고래로 이어져 온 우리의 역사와 문화, 사상과 철학은 모두 미신이나 미개로 치부되고, 서양의 특수한 상황에서 형성되고 전개된 이론과 방법들이 무조건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미래와 이상은 이러한 서양에 대한 환상을 지우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으며 우리의 역사와 문화, 사상과 철학을 옛 것에서부터 계승 발전시키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는 당연한 결론에 이른다. 결국 우리 역사의 특수성을 연구하지 않으면 우리는 보편의 바다 위에 떠다니는 한낱 부초가 되고 말 것이며, 역사보편의 진리도 도식과 획일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의 역사연구와 그 서술에는 아직도 중화사대주의의 독과 일제 식민사관의 독들이 완전히 제거되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에 이르러서는 서양문명중심의 역사기술이 보편의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심지어는 선진적인 지식층조차 마르크스 사회역사발전5단계설이나 소련의 일리인이 저술한 '인간의 역사' 같은 철저한 유럽중심의 역사를 인류역사발전의 보편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동양과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는 깊이있게 이해하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민족의 잃어버린 단군조선 2000년 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실로 우리사회 역사발전의 독자성에 대한 연구가 될 것이며,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새로운 규명에 의해 세계사 전개과정의 사실적인 관점을 확고히 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안으로는 민족허무주의자와 서양 것만을 진리로 외치는 사대주의자와의 싸움이 될 것이며, 밖으로는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고 분장하고 자신들의 역사발전과정만을 보편의 법칙으로 퍼뜨리는 패권주의자들과의 싸움이 될 것이며, 또한 서양중심의 역사만을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서양의 노동계층에게도 새로운 반성의 계기를 주는 일이 될 것이다.


[사회주의제국 단군조선]

조선벌판과 반도에서 환국을 세우고 생활해 가던 조선의 뿌리족과, 지금의 중국본토 깊숙히 진출하여 생활해 가던 조선 뿌리족들 속에서는, 자연히 효율적 치수사업과 더 나은 사회제도의 염원 속에 고립과 분산을 극복하고 통일성을 지향하는 요구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환국에서는 내부단합을 강화해 나갈 뿐 아니라 주위의 조선 뿌리족들을 점차 정치, 경제적으로 통합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으로부터 4320년 전경 드디어 세계최초, 최대의 제국인 단군조선이 창건되기에 이르렀다. 단군조선 국가사회가 건설됨으로써 비로소 조선 뿌리족은 민족체(민족의 맹아)의 단계를 벗어나 '혈연을 기초로 언어, 문화, 경제의 공통성을 갖고 사상적 통일성을 이루며 공동의 심리상태를 갖는 민족공동체의 단계로 발전해 나가게 되었다.

50~60만 년 전부터 장구한 세월을 조선의 하늘과 땅에서 살아온 조선 뿌리족이 조선민족사의 시원을 열면서 건국한 단군조선은 삼극적 세계관에 의한 삼신일체의 도(道)를 사상적 토대로 하여 홍익인간의 정치이념이 구현되고 균전법이 실시된 사회주의제국이었다.

사회적 통일성의 토대였던 천지인 합일사상은 당시 제천의식의 성지였던 수두의 교육과 설교에 의해 널리 설파되었다. 삼신일체의 도란 천신-지신-인신은 하나이며, 그 하나는 작용면에서 셋으로 나뉘지만 그것은 결국 하나이고, 그중에서 인신(人神)은 태일(太一)로 표현되는 가장 고귀한 신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천지와 더불어 세계를 변화시키는 또 하나의 신이며 천지가 창조한 한낱 만물과 같은 피조물이 아니라 천지와 더불어 만물을 창조해내는 천지와 병립하는 지존자(至尊者)라는 뜻이다. 천지인 삼신 사상은 천지와 더불어 창조의 삶을 이어온 노동주체로서의 자각과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사상이며, 정착 농경사회의 천문학과 자연과학의 발전을 토대로 뒷받침 되어온 사상으로 환국에서부터 형성되어 단군조선에서 정형화 되었다.

이렇듯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인간을 발견하고, 인간의 존엄함과 그 역할의 지극함을 자각했던 조선민족은 천지인 巫의 사상적 토대하에 모든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정치이념을 실현하였다. 홍익인간의 지도이념은 백성 위에 군림하지 않고 백성 속에 들어가 여민동행(與民同行)하는 행동강령을 통해 널리 구현되었다.

이로써 역대의 왕들은 인민들과 더불어 전답 사이에 있는 도량도 파내고, 밭길도 만들며, 누에치기를 널리 권하고, 고기잡는 법도 발전시켰다. 이에 인민들은 재물이 남아 나라에 보탰으며 10월에는 국중대회를 열어 하늘에 제사지내고 밤낮으로 노래하고 춤추며 즐겼는데 이는 하늘같은 어진 정치의 실현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진리를 사랑하고 화목하게 살았으며, 명랑하고 용감한 품성들을 갖고 있었고, 밤에도 문을 잠그지 않고 살았다. 이러한 단군조선의 사상과 정치는 물론 당시 균전제라는 경제제도와 통일되어 있었다.

단군조선의 균전제는 지금의 중국영토로 된 제후국으로 건너가 정전제(井田制)가 되었다. 정전제는 제후국이었던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에서 다 행하여졌으며, 이는 정자(井字)형의 구백무(九百畝) 땅을 여덟집이 나누어 한 집이 백무(100 이랑)씩 경작하고 나머지 백무는 공전(公田)이라 하여 여덟집이 공동으로 경작하여 공용(公用)에 쓰게 하고, 또 각기 경작한 백무에서 십분의 일을 세금으로 거두는 습일세(십분의 일)방식을 취한 토지제도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러한 정전법은 춘추시대에서부터 시작되는 계급지배세력의 발호 속에서 철저히 파괴되고 문헌도 소실되었다. 그러다가 단기 23세기(서양기원전 1세기)경 한나라 외족(外族)이던 고대사회주의자 왕망(王莽)의 혁명으로 잠시 재실시되었으나 곧 사라졌다.

이러한 전(前) 중국시대의 정전법은 모두 단군조선의 균전제를 전해 받은 것들이다. 이는 조엽(趙曄)의 오월춘추에 '하우(夏禹)의 정전(井田)이 조선의 균전제를 모방한 것이다'라는 기록에서도 알 수 있다. 또한 단군조선의 균전제는 팔가동전(八家同田)이 아니라 사가동전(四家同田)이었으며 이는 평양이나 경주에서 발견되는 기자형(器字形)의 고전(故田)이 이를 증명하며, 그 세제는 10분의 1을 취하는 습일세가 아니고 20분의 1을 취하는 입일세(卄一稅)였다는 신채호님의 글에서도 그 운용을 볼 수 있다.

단군조선 국가사회는 이러한 사상, 정치, 경제의 사회주의적 성격으로 하여 국가의 출현과 함께 예속노동에 기초한 노예제사회로 진전되어가는 서양방식과는 달리, 청동기의 출현과 함께 생산력의 비약적 증대가 있었음에도 사회의 지도와 피지도라는 구성분화가 계급적 지배, 피지배 종속관계로 전개되지 않았다. 당시의 조선민족은 자주노동의 실현 속에서 평등한 사회생활을 마음껏 영위한 것이다.

그런데 고조선의 8조법금을 들어 공동체 요인, 소농적 형태, 노예적 형태의 공존 중 노예적 형태가 사회의 지배적 형태였다고 주장하며 앞서 말한 것 같은 고조선 사회 규명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 8조법금은 조선민족의 문헌에 전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지배가 보편화 된 후한(後漢)시대의 반고(班固 단기 2365~2425)가 자국중심으로 편찬한 한서(漢書)에 전하여지는 것이므로 역사적 과정을 통해 볼 때 신빙성이 없는 것이며 설사 그것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는 계급적 분화가 심화된 고조선 말기의 상황을 언급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단기 16~17세기(서양기원전 8~7세기)경과 단기 17~19세기(서양기원전 7~5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강상무덤과 누상무덤이 유일한 순장제도의 증거로 제시되는데 이것도 노예제 사회임을 증명하는 것으로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이 시기는 제나라 등 춘추세력들이 침입하던 시기인데 많은 병사를 죽여 전력을 약화시켰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중앙에 있는 묘혈에 기껏해야 2~3인이 묻혀 있는 사실이나, 주위에 단절된 구덩이에 시체를 두었다는 점이나, 모두 화장해서 묻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노예제적 순장으로 보기에는 억지가 있다. 이러한 여러가지 정황을 미루어 보아 이것은 전사자들을 추념한 무덤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설사 순장이라고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진나라나 이집트의 순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소박한 형태이므로 결코 계급사회의 시금석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시대에는 이집트나 그리스, 로마같은 채찍을 맞으며 일하는 노예도 없었으며 노예를 확보하기 위해 조선민족이 타민족을 참살하고 정복하는 피의 침략전쟁도 없었다. 또한 노예의 피땀으로 이룩한 거대한 유물대신에 섬세하고 실용적인 유물만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 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당시 단군조선의 영향력이 미치는 주변국들에서는 단군조선을 '군자(君子)의 나라'라고 흠모했다. 사람들이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고 사냥을 좋아하면서도 서로 싸우지 않는 풍속을 칭한 말이다. 

또한 허신(許愼)은 설문(設文)에서 말하기를 '오로지 조선(東夷)은 대(大)를 쫓으니 대인(大人)이다. 조선의 풍속이 어질므로 사람들이 오래 산다.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가 있다 하니 공자같은 성인도 뗏목을 타고 가려했다'고 하였다.

또 동방삭이 지은 '신이경(神異經)에는 '태평하게 앉아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서로 기리며, 서로 헐뜯지 않고, 사람에게 근심이 있는 것을 보면 죽기를 무릅쓰고 구해 주니 선한 사람들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히 사회주의제국 단군조선을 가리켜 신인국(神人國), 神仙國), 군자국(君子國), 해동성국, 예의동방이라 부르며 경탄했음을 알 수 있다.
 



글 : 천지자연의 법 유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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