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불루(진조선 22세단군)이 국가제도를 개편하고
혁명가 서우여를 번한 왕에 임명함(1)
색불루단군(22세)께서 일찍이 삼한을 아우르고 나라의 제도를
고치실 때, 은나라 왕 무정이 사신을 보내와서 조공을 바칠 것을 약속하였다. 이에 앞서 서우여를 폐하여 서인(보통사람)으로 만드셨다.
서우여는 몰래 좌원(남만주 관전현 성동산과 통화현 홍석납자의 중간에 있는 긴 평원, 정인보 조선사연구, 122쪽, 이유립은 대능하 상류의 능원현으로 봄)으로 돌아가 사냥꾼 수천명과 함께 군대를 일으키려고 모의하였다. 갑천령이 그 소식을 전해 듣고 즉각 가서 쳤으나, 패하여 진중에서 죽었다. 색불루 단군께서 친히 3군을 거느리고 가서 치려하실 때, 먼저 사람을 보내 항복할 것을 권하고 비왕으로 봉할 것을 약속하였다. 다시 설득하시자
말씀에 따랐다. 이 때 서우여를 30세 번한 왕으로 임명하였다.
*고조선의 8조 금법
색불루단군4년 기해(BCE1282)년에, 진조선이 천왕 색불루의 칙문을 전하였다. 그 칙문을 말하기를
"너희 삼한은 위로 천신을 받들고, 아래로 뭇 백성을 맞아 잘 교화하라"라 하셨다. 이로부터 백성에게 예절과 의리, 농사, 누에치기, 길쌈, 활쏘기, 글자를 가르쳤다. 또 백성을 위하여 금팔조를 정하였는 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교과서에는 8조 금법)
ㆍ제1조는 살인한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
ㆍ제2조는 상해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보상한다.
ㆍ제3조는 도독질 한 자 중에서 남자는 거두어들여 그 집안의 남자 종(노)으로 삼고, 여자는 여자의 종(비)로 삼는다.
ㆍ제4조는 소도를 훼손한 자는 금형에 처한다.
ㆍ제5조는 예의를 잃은 자는 군에 복역시킨다.
ㆍ제6조는 게으른 자는 부역에 동원시킨다.
ㆍ제7조는 음란한 자는 태형으로 다스린다.
ㆍ제8조는 남을 속인 자는 타일러 방면한다.
자신의 잘 못을 속죄한 자는 비록 죄를 면해 공민이 될 수 있었지만, 당시 풍속이 이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시집가고 장가들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백성이 마침내 도독질을 하지 않았고, 문을 닫고 사는 일이 없었으며, 부인은 정숙하여 음란하지 않았다. 전야와 도읍은 개간하고, 음식을 그릇에 담아 먹었으며, 어질고 겸양하는 교화가 이루어졌다.
신축(BCE 1280)년에 은나라 왕 무정이 번한 왕을 통해 천왕에게 금을 올리고 방물을 바쳤다. 병신(BCE 1225)년에 서우여가 세상을 떠났다. 정유(BCE 1224)년에 아락(31세 왕)이 즉위하였다.
아락이 세상을 뜨자 갑자(BCE 1137)년에 임나(33세 왕)가 즉위하였다. 신미(BCE 1130)년에 진조선 25세 솔나단군이 조칙으로 동쪽 교외에 천단을 쌓고 삼신께 제사를 지낼 때, 많은 사람이 둥굴게 모여 춤을 추며 북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정성으로 천단을 쌓고
삼신님께 장수를 축원하세.
황운을 축수함이여! 만만세로다.
만민을 돌아봄이여! 풍년을 즐거하도다.
임나가 세상을 떠나고 병신(BCE 1105)년에 아우 노단(34세 왕)이 즉위하였다.
북막(북쪽사막, 고비사막)이 침범하므로 노일소를 보내어 쳐서 평정하였다. 노단이 세상을 뜨니 기유(BCE 1092)년에 아들 마밀(35세 왕)으로 즉위하였다. 마일이 세상을 뜨자 정묘(BCE 1074)년에 아들 모불(36세 왕)이 즉위하였다. 을해(BCE 1066)년에 천문을 관측하는 감성을 설치하였다.
모불이 세상을 떠나고 정해(BCE 1054)년에 아들 을나(37세 왕)가 즉위하였다.
갑오(BCE 1047)년에 주나라 임금 하(주나라 4세 왕인 소왕 하)가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소련과 대련 형제를 섬긴 번한
ㆍ3년 풍속의 기원
을나가 세상을 떠나고 정묘(BCE 1014)년에 아들 마휴(38세 왕)가 즉위하였다.
마휴가 세상을 떠나자 기사(BCE 1012)년에 아우 등나(39세 왕)가 즉위하였다.
이극회가 소련과 대련의 사당을 세우고 3년상을 정하여 시행하기를 청하니 왕께서 이를 따랐다.
ㆍ소련과 대련~공자의 여기에서 "소련과 대련은 거상을 잘 하였는 데, 3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3개월을 해태하지 않으며 3년을 슬퍼하였다. 그들은 동이 사람이다. 공자는 이를 윤리의 시초라고 보고, 소련.대련을 성인이라 하였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p471~475
#한자원문해설은 이맥의 태백일사 제4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하를 참조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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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 전역에서 시행된 왕문의 이두법(2)
*이두법의 창시자 왕문
누사가 세상을 떠나자 을미(BCE 866)년에 아들 이벌(44세 왕)이 즉위하였다. 병신(BCE 865)년에 한수(지금의 대릉하, 이유립의 배달민족사)사람 왕문이 이두법을 만들어 올리니 천왕(단군조선 31세 등올단군)께서 기뻐하시고 삼한에 명하여 시행하게 하셨다.
ㆍ왕문~2,900년 전 31세 등올 단군 때 사람으로 이두법을 창시하셨다. 이두는 한자의 음과 새김을 빌어서 우리말식으로 적던 문자이다. 일반적으로 설총이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왕문이 창안한 이두법을 더욱 발전.체계화하였다. 568년 진흥왕 29년 진흥왕 순수비문에도 이두가 나오는 데, 이것은 설총 이전에 이미 이두문이 쓰였다는 증거이다.
*주나라 격퇴와 흉노의 조공
기미(BCE 842)년에 상장 고려합을 보내어 회군(지금의 중국 회수 일대에 있었던 단군조선의 제후국)과 합세하여 주나라를 격퇴하였다.
이벌이 세상을 뜨니 신유(BCE 840)년에 아들 아륵(45세 왕)으로 즉위하였다. 병인(BCE 835)년에 주나라의 이공(주공과 소공)이 사절을 보내어 방울을 바쳤다. 아륵이 세상을 떠나고 기축(BCE 812)년에 아들 마휴(일명 마목, 46세 왕)가 즉위하였다. 마휴가
세상을 떠나자 병진(BCE 785)년어 아들 다두(47세 왕)가 즉위하였다. 다두가 세상을 뜨니 기축(BCE 752)년에 아들 내이(48세 왕)가 즉위하였다. 내이가 세상을 뜨자 기미(BCE 722)년에 아들 차음(49세 왕) 즉위하였다. 차음이 세상을 떠나자 기사(BCE 712)년에 아들 불리(50세 왕)가 즉위하였다. 불리가 세상을 떠나니 을사(BCE 676)년에 아들 여을(51세 왕)이 즉위하였다. 여을이 세상을 떠나니 갑술(BCE 647)년에 엄루(52세 왕)가 즉위하였다.
무인(BCE 643)년에 흉노가 번한에 사신을 보내어 천왕을 뵙기를 구하고, 스스로 신하라 칭하고 공물을 바치고 돌아갔다. 엄루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 감위(53세 왕)가 즉위하였다. 감위가 세상을 뜨자 무신(BCE 613)년에 아들 술리(54세 왕)가 즉위하였다.
술리가 세상을 뜨자 무오(BCE 603)년에 아들 아갑(55세 왕)이 즉위하였다.
ㆍ흉노~BC 3세기 말부터 CE 1세기 말까지 몽골고원.만리장성 일대를 중심으로 활약한 유목기마민족이다. 주대 중국을 위협하던 험윤.훈육 등의 후예이다. 단군세기에 따르면
고조선 3세 가륵단군 6년에 열양 욕살 삭정으로 하여금
약수로 옮겨가 평생 갇혀 살게 하였다가 나중에 방면하여 그 땅을 봉하니 흉노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30세 내휴단군 때와 37세 마물 단군 때 고조선에 조공한 기록이 보인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 2012, pp476~477
#한자원문해설은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하를 참조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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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동이족 혈통(3)
이갑이 세상을 뜨고 계유(BCE 588)년에 고태(56세 왕)가 즉위하였다. 고태가 세상을 떠나자 정해(BCE 574)년에 아들 소태이(57세 왕)가 즉위하였다. 소태이가 세상을 떠나고 을사(BCE 566)년에 아들 마건(58세 왕)이 즉위하였다. 마건이 세상을 떠나자 병진(BCE 545)년에 천한(59세 왕)이 계승되었다.
천한이 세상을 떠나고 병인(BCE 535)년에 아들 노물(60세 왕)이 즉위하였다.
노물이 세상을 떠나자 신사(BCE 520)년에 아들 도을(61세 왕)이 즉위하였다.
★노자는 순수한 동이족 혈통
계미(BCE 518)년에 노나라 사람 공자가 주나라에 가서 노자 이이에게 물었다. 이의 아버지는 성이 한이고, 이름은 건인 데, 선조는 풍이족 사람이다. 노자는 후에 서쪽으로 관문을 지나 내몽고를
경유하여 여기저기 전진하다가 야유타에 이르러 그 곳 백성을 교화하였다.
*풍이족~규원사화에 "치우씨.고시씨.신지씨 후예들이 가장 번창하여 융성하였다. 삼씨의 후예들이
아홉 갈래로 나뉘는 데, 견이.우이.방이.황이.백이.적이.현이.풍이.양이의 무리들이 모두 같은 조상에 다른 가지이다.
풍이족은 치우족의 일족으로
뒷날 견이와 풍이는 서남으로 옮겨갔다. 복희씨도 풍족에서 태어나 중토역리의 원조가 되었다.
*야유타~'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는 태국이라하였다. 원래 위치는
인도 갠지스강 중류 야요디아로 알려져있다. 가야 김수로왕의 황후 허황옥의 고향이기도 한다.
★천지인과 오행, 한으로 지은
번한 왕들의 이름
도을이 세상을 떠나고 병신(BCE 505)년에 아들 술휴(62세 왕)가 즉위하였다.
술휴가 세상을 떠나자 경오(BCE 471)년에 아들 사량(63세 왕)이 즉위하였다.
사량이 세상을 떠나자 무자(BCE 453)년에 아들 지한(64세 왕)이 즉위하였다.
지한이 세상을 떠나자 계모(BCE 438)년에 아들 인한(65세 왕)으로 즉위하였다.
인한이 세상을 뜨자 신사(BCE 400)년에 아들 서울(66세 왕)이 즉위하였다. 서울이 세상을 떠나자 병오(BCE 375)년에 아들 가색(67세 왕)이 즉위하였다. 가색이 세상을 떠나자 경신(BCE 341)년에 아들 해인(68세 왕)이 즉위하였는 데, 일명 산한이라고 한다. 이 해에 해인이 자격에게 살해되었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p479~481
#한자원문해설은 태백일사 제4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하를 참조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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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번조선 왕이 된 기후(4)
신사(BCE 340)년에 아들 수한(69세 왕)이 즉위하였다. 임오(BCE 339)년에 연나라가 이틀 길을 하루에 달려 쳐들어와 안촌홀(번조선의 수도인 안덕향, 지금의 하북성 개평 동북 70리에 있는 탕지보, 고구려 때 안시성이다. '삼국사기 지리지4'에 "안시성은 옛 안촌홀이다"라고 하였다) 이 때 수유 사람 기후가 젊은 청년 5천명을 거느리고 와서 전쟁을 도우니 군세가 조금 진작되었다. 이에 진한.번한의 군사와 함께 협공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또 무리의 군사를 나누어 보내 계성(연나라 수도 지금의 하북성 북경) 남쪽에서 싸우려 하니, 연나라가 두려워서 사신을 보내어 사죄하고 공자를 인질로 보냈다.
*번조선과 연나라의 전쟁결과, 번조선이 승리함에 따라 연나라의 공자와 장수 진개를 인질로 붙잡아 두었다. 그러나 진개는 도망쳐 귀국한 후에 다시 쳐들어와서 번조선의 서쪽 모퉁이 땅을 탈취하였다(BCE 300년경) 사마천이 중국 정사의 머리인 사기에서 의도적으로 '흉노전'에 실음으로써 고조선의 국토뿐만 아니라 강성했던 국력을 모두 은폐시켜 버린 것은 중대한 역사적 음모이다.
★번조선의 왕통 단절과 연나라의 강성
무술(BCE 323)년에 수한이 세상을 떠나고 후사가 없었다.
그리하여 수유사람 기후가 명을 받들어 군령을 대행하였다.
연나라 사신을 보내 하례하였다. 이 해 연이 왕이라 칭하고 장차 침범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기후도 명을 받들어 왕호를 써서 번조선의 왕이 되고 비로소 번한성에 머물면서 뜻밖의 사태를 대비하였다.
*번한성~번조선의 수도, 지금의 하북성 개평 동북쪽 70리에 위치, 고구려 때 유명한 안시성이 바로 이곳이다.
*번조선의 말기 왕들(70세 기후~75세 기준)을 기자의 직계 후손으로 조작하고 그들이 고조선의 전체의 단군천왕인양 왜곡하였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하'에서는 번조선의 제후국인 수유국인 기후가 70세 번조선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p481~482
#한자원문해설은 태백일사 제4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하를 참조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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