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라야 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일을 해야 한다.
"너는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살리라. 들에서 나는 곡식을 먹어야 할 터인데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 (창세기 3:17-18)
이렇게 사람들은 옛날부터 자신들의 처지를 간파하였다. 먹거리를 얻으려고 이마에 땀 흘리는 것은 차라리 즐겁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재해와 질병이 있다. 이보다 또 무서운 것은 사람들의 삼독(三毒)의 죄악이다.
불교와 기독교가 같이 지옥이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하느님의 나라에 지옥이 있을 리 없지만 지옥이 있다면 세상이 바로 아비 지옥이다. 아파서 못살겠다. 고파서 못살겠다. 원통해 못살겠다는 아우성 소리로 가득 찼다. 석가가 삶을 괴롬으로 본 것은 바로 본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을 떠나기 싫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나란 바로 정신이다. 정신이 자라는 것이 생각이다. 정신이 깨어나고 정신에 불이 붙어야 한다. 정신은 거저 깨어나지 않는다. 가난과 고초를 겪은 끝에 정신이 깨어난다."(「다석어록」)
삶이 모질게도 고달픈 것은 우리들의 정신을 일깨워 참나인 하느님을 찾아오게 하려는 하느님의 뜻이다. 죽겠다고 아우성만 칠 것이 아니라 먼저 내가 누구인가를 우주의 임자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우주의 소산이라 우주의 임자(하느님)에게 물어야 한다. 땅의 어버이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책임이 거의 없다.
* 유영모(多夕 柳永模, 1890 ~ 1981)
*《多夕 柳永模 명상록》p515, 2000, 도서출판 두레, 박영호 옮기고 풀이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여행하는 사람은 출발지에서부터 여러가지 교통수단을 갈아타면서 결국에는 자기가 원하던 목적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버스, 지하철, 택시 등 여정이 바뀔 때마다 갈아타는 이러한 여러 교통수단을 내 육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번 생은 지금의 내 몸에 의지하여 기나긴 여정 중의 한 구간을 살아가는 것이죠.
하지만 나는 내 몸, 그 육체 자체가 아닙니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승객 즉 여행자가 교통수단 자체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어렵고 고단한 길이라고 곁길로 새려고 할 때, 길을 바로 잡는 존재는 바로 여정을 떠난 승객, 바로 "나"입니다.
빠르고 편하다고 아무 생각 없이 실려서 가기만 하면 제대로 된 목적지에 이를 수 없습니다.
힘들고 괴로워도 이 몽뚱아리를 붙잡고 올바른 길을 찾아 가야만 합니다.
내 몸 자체도 내 편이 아닙니다. 곁길로 빠져나가라고 항상 충동질하는 어리석은 동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생길의 여행자가 참나인 하느님을 찾아가는 길은 그렇게 험하고도 어려운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