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아카데미_삼일학 연구원
삼일학연구원 최근게시글

춘천 중도 선사유적지
[이덕일 역사TV] 세계적인 고조선 유적지에 레고…
[춘천 중도 고조선 유적지의 역사적 고찰] 3. 단…
[춘천 중도 고조선 유적지의 역사적 고찰] 2. 고…
[춘천 중도 고조선 유적지의 역사적 고찰] 1. 춘…
[반크] 레고랜드 플라스틱 장난감에 의해 어이…
정길선의 북방유라시아 유목사 산책
포르투갈의 고인돌 문화 - 카스트로 문화(Castro c…
알타이의 텡그리를 바라보며...
투르크-타타르의 Умай (우마이) 여신에 대하여
페르가나의 지형
고대 중앙아시아 유목민족들의 개념
유범식의 천지자연의 법 조선철학
3. 혁명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우리의 조선…
3. 혁명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2. 뿌리없는 사상적 흐름을 경계하며
제5장 한국 사회운동 단편 - 1. 노동자운동의 기…
존엄어린 죽음 - 인신공양 / 평화의 땅에서 살육…
팔봉산의 하나민족 이야기
한국인의 하나복본 5
한국인의 하나복본 4
한국인의 하나복본 3
한국인의 하나복본 2
한국인의 하나복본 1
한길 백공종사의 배달학당
白空 한길 종사님의 천부경 강의(73)
한길 백공종사님의 천부경 강의(72)
한길 백공종사님의 천부경 강의(71)
천부경을 빛깔로...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천일…
천부경을 빛깔로...析三極無盡本(석삼극 무진본
화니의 재미있는 桓세상이야기
[원효대사와 한桓철학 13]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원효대사와 한桓철학 12] 잘못됨을 알면서도 바…
[원효대사와 한桓철학 11] 무엇보다 홍익하는 자…
[원효대사와 한桓철학 10]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원효대사와 한桓철학 9] 애국애족은 쉽지 않다.…
김응렬의 생각없이 읽는 철학
[다석어록 - 8] 제나는 말, 얼나는 기수
[多夕語錄 - 7] 얼나
[책속의 한 줄 - 3_4] 요가난다 자서전(기리 발라)
[책속의 한 줄 - 5_3] Conversations with God : book 3
[책속의 한 줄 - 5_2] Conversations with God : book 2
이강산의 통일을 위한 한민족 역사공부방
가섭원부여기 [복애거사 범장 찬] 시조 해부루
북부여기 [복애거사 범장 찬] 북부여기하 _ 5세 …
북부여기 [복애거사 범장 찬] 북부여기상 _ 3세 …
북부여기 [복애거사 범장 찬] 북부여기상 _ 시조…
단군세기(檀君世紀) 제46세 단군보을 / 제47세 단…
조홍근의 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조선(朝鮮) 제27대 두밀 …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조선(朝鮮) 제27대 두밀 …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조선(朝鮮) 제26대 추로 …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조선(朝鮮) 제25대 솔나 …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조선(朝鮮) 제25대 솔나 …
박현우의 가림토한글
한울(○).가를(十)
을미일 왕께서 아뢰시니
고한글 가릶톬
動動歌(동동가)
한 얼을 찾아서. [산해경 해내북경..氷夷(빙이)…
김용성의 태극한글 "신획"
[미치다]의 어원은 [밑+치다]입니다. (2)
마츄픽츄는 원주민 언어로 오래된 이라는 뜻
치우천황은 누구인가? 치우기록들!
시애틀에 대한 어원 고찰
우리말로 읽어야 뜻을 아는 영어
천부경, 삼일신고를 논하다
[참한역사신문] 마고천부경(麻姑天符經) 해독 …
[참한역사신문] 천부경의 내력
[참한역사신문] 묘향산 석벽본 천부경(天符經) …
[참한역사신문] 부도지와 천부…
[조홍근의 천부역사태학원] 하늘, 하늘님이란 - …
치화경治化經 인간366사
인간366사(참전계경) | 제1훈 '정성'에 대…
인간366사 제8훈 응함 _ 제6장 「응함」은 작음으…
인간366사 제8훈 응함 _ 제5장 「응함」은 큼으로…
인간366사 제8훈 응함 _ 제4장 「응함」은 가득함…
인간366사 제8훈 응함 _ 제3장 「응함」은 맑음으…
성미경의 삼일사랑방
2022 배달문화원 애국가 - 독립군가
[KBS 다큐] 대장경에 담긴 '천년의 진리' -…
[배달문화원 개천이야기9-02] 3·1독립선언서(三…
[배달문화원 개천이야기9-01] 대한독립선언서(大…
[배달문화원 개천이야기 9] 대한독립선언서와 3…

gangsan.jpg 이강산  통일을 위한 한민족 역사공부방
 
  단군세기(檀君世紀) 제20세 단군고홀 / 21세 단군소태 / 22세 단군색불루
  
   작성자 : 배달문화원
작성일 : 2018-09-23     조회 : 859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20세 단군 고홀 _ 재위 43년
고홀단군의 재위 원년은 신유(BCE 1380)년이다. 
재위 11년 신미(BCE 1370)년 가을에 태양이 무지개를 꿰뚫었다.
재위 36년 병신(BCE 1341)년에 영고탑을 개축하시고 별궁을 지으셨다.
재위 40년 정자(BCE 1341)년에 공공(共工)인 공홀(工忽)이 구환지도(九桓地圖)를 만들어 바쳤다.
재위 43년 계묘(BCE 1338)년에 , 사해가 평안하지 못할 때 고홀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소태(蘇台)께서 즉위하셨다.
*영고탑이야기
•영고탑이라는 명칭이 등장하는 기록에는 현재 통설로는 '흑룡강지명고석(黑龍江地名考釋)'에 나오는 영고답이라는 명칭은 청대사지(淸大事誌)에 처음보인다. 청나라 만력(萬曆 36년(1608) 가을 9월에 호이객로(呼爾喀路) 사람들이 우리 영고탑성(寧古搭城)을 침입하였다. 이곳은 당시에 영고탑로(寧古塔路)라고 하는 곳이다. 여기서 영고탑성이니, 영고탑로에 관련해서 만주원류고에서는 명실록을 인용하여 "명나라 초기에 동해와집부(東海窩集部)를 설치했는 데, 여기에는 호이합(呼爾哈), 혁실혁(赫實赫), 영고탑(寧古塔) 등의 로(路)가 나온다. 
•영고탑의 명칭은 정사에 기록되기 이전부터 존재하였는 데, 기록에 나오는 영고탑에 위치도 한곳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다. 하나는 현재의 흑룡강성 영안시와 해림시에 속하는 지역을 가르키고, 다른 하나는 요령성 신빈현의 일부 지역을 가르친다.
•현재의 영고탑은 구성(舊城)과 신성(新城)으로 구분되는 데, 구성은 흑룡강성 영안시 고성촌에 있다. 청나라 초기에 한족(漢族) 사대부로서 영고탑으로 유배된 오조건의 아들 오진신이 쓴 '영고탑기략(寧古塔紀略)'에서는 금나라 아골타가 기병한 곳으로 여섯 형제가 여섯 개의 주요한 마을을 이루어서 영고탑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영고탑이란 말은 삼신하느님께 천제인 영고제를 지내는 소도 제천단이 있던 성지를 일컷는 명칭이다. "20세 고홀 단군 36년에 영고탑을 개축하였다"는
것은 소도 제천단을 다시 고쳐 쌓다는 말이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 141
#한자원문 해설은 이암의 단군세기를 참고 바람니다.
#좌우를 넘어 자랑스런 한겨레의 1만년의 정체성을 찾아라!!!



제21세 단군 소태 _ 재위 52년

고조선 제후국을 침공하다가 대패한 은나라 무정(1)
소태단군의 재위 원년은 갑진(BCE 1337)년이다. 은나라 왕 소을(小乙, 21세)이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재위47년 경인(BCE 1291)년에 은나라 왕 무정(武丁, 22세)이 전쟁을 일으켜 이미 귀방(鬼方)을 물리치고 나서 대신 군대를 이끌고 삭도(索度)와 영지(令支) 등 여러 나라를 침공하다가 우리 군사에게 대패하여 화친을 청하고 조공을 바쳤다.
재위 49년 임진(BCE 1289)년에 개사원(蓋斯原) 욕살(褥薩) 고등(高登)이 몰래 군사를 이끌고 귀방을 공격하여 멸망시키자, 일군(一群).양운(養雲) 두 나라가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이때 고등이 대군은 장악하고 서북 지방을 경략하니 세력이 더욱 강해졌다. 고등이 임금께 사람을 보내어 우현왕(右賢王)이 되기를 주청하였다. 임금께서 꺼리시며 윤허하지 않으시다가 거듭 청하므로 윤허하시고, 두막루(豆寞婁, 북사에서는 두막루국은 물길에서 1천리 되는 곳에 있으며, 옛날의 북부여이다)라 불렀다.
*귀방(鬼方)~지금의 중국 산서성 북쪽 내몽골의 음산산맥 일대에 살던 족속이다. 은나라 때는 빈(邠)지역에 살던 주나라 조상인 고공단보(古公亶父)가 아들의 침략을 피해 기산(岐山) 남쪽 위수(渭水) 지역으로 옮기기도 했다.
*고공단보~중국 은나라 제후국인 주(周)의 제후이다. 성은 희(姬)이고, 이름은 단보(亶父)이다. 훗날 서주 무왕의 태왕(太王)으로 주승했다. 주승되기 이전은 고공으로 칭해졌고, 사기에는 그 고공과 이름인 단보를 합쳐서 고공단보로 칭하였다.
그는 사병을 거느리고 빈을 떠나서 칠수(漆水)와 저수(沮水)른 건너고 양산(梁山)을 넘어서 기산(岐山) 아래 정착했다. 이 때 태왕은 융적의 풍습을 개량하고 성곽과 가옥을 건축하고 읍을 나누어 살게하였다. 황제의 35대 손이며, 후직의 12대손이다.
고공단보의 3남이 계력(季歷)이며, 계력의 아들이 주문왕이다. 문왕의 아들인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였다.
*삭도(索度)~곧 삭두(索頭)로 '독사방여기요'를 보면 "산동성 임치현에 삭두성(索頭城)이 있다.
*영지(令支)~'한서지리지 요서군' 조를 보면 "고죽성이 있다"라 하였다. 지금의 하북성 천안현 서쪽이다.
*고등~22세 색불루단군의 할아버지이다.
*좌.우현왕 제도~이 제도는 천자를 좌.우에서 보필하는 제도이다. 고조선 초기 진한의 천황 대단군을 변한과 마한의 부단군이 좌.우에서 보좌하는 비왕(裨王)제도이다. 이 제도는 삼신 사상을 기초로 해서 성립된 것으로 흉노에게로 전파되었다.
*두막루~두막루국은 물길에서 북쪽으로 1천리 되는 곳에 있으며 옛날의 북부여다.
고구려 문자열제 때에 부여가 멸망한 뒤 그 유민이 북으로 이동하여 두막루국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고, 북부여 5세 고두막단군도 두막루라 하였다. 막루는 마을 또는 고을의 우두머리라는 뜻이고, 두는 최고를 나타내는 접두사로 고을을 다스리는 총수격에 해당하는 관직, 최고의 지도자를 의미한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143
#한자원문해설은 이암의 환단고기를 참고 바람니다.
#좌우를 넘어 자랑스런 한겨레의 1만년의 정체성을 찾아라!!!

고등의 손자 색불루의 혁명(2)
재위 52년 을미(BCE 1286)에 우현왕 고등이 훙서(薨逝)하고, 손자 색불루(索弗婁)가 우왕을 계승하였다.
임금께서 나라를 순수하시다 남쪽 해성(海城)에 이르러 부로(父老)들을 크게 모아 하늘에 제사 지내고 노래와 춤을 즐기셨다. 이때 오가(五加)를 모아 놓고 옥좌를 양위할 일을 함께 의논할 때 "내가 이제 늙어 일하기가 고달프다"라고 말씀하시고, "서우여(徐于餘)에게 정사를 맡기겠노라"하셨다. 이에 살수(薩水) 주위의 땅 백리를 분봉하여 섭주(攝主)로 삼고 기수(奇首)라 하셨다.
*서우여(徐于餘)~21세 소태단군이 욕살 서우여에게 제위를 선양하려하자, 우현왕 색부루가 극력 반대하므로 마침내 서우여를 패하고 서인으로 만드셨다. 이에 서우여는 몰래 좌원(坐原)으로 돌아가 수천 명과 모의하여 기병하였다. 그 후 색블루 단군이 친히 삼한의 군대를 거느리고 토벌하려 할 때 먼저 사람을 보내 항복을 권하고, 비왕으로 봉할 것을 약속하였다. 
서우여는 이를 따르자 30세 번한 왕으로 임명하여 번조선을 다스리게 하였다(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마한세가 상, 번한세가 하 참고)
*섭주와 기수~섭주는 단군을 대행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기수는 섭주가 관할하는 이름이거나, 섭주의 보직 명칭인 것으로 추정된다.

은.주 교체기, 고조선의 제후국인 고죽국(3)
우현왕이 소식을 듣고 임금께 사람을 보내어 멈추시기를 청하셨다. 임금께서 끝내 듣지 않으시므로 우현왕이 좌우의 사람들과 사냥꾼 수 천명을 이끌고 부여 신궁(夫餘申宮, 단군조선의 두 번째 도읍지 백악산 아사달, 지금의 만주 일대 농안)에서 단군으로 즉위하셨다. 부득이 옥책(玉冊)과 국보(國寶)를 우현왕에게 전하고, 서우여를 폐하여 서인으로 만드셨다. 임금께서 아사달(지금의 하얼빈 완달산)에 은거하여 그곳에서 최우를 마치셨다.
이 때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고죽국(孤竹國)의 왕자로서 왕위를 사양히고 달아나 동해 쪽 물가에 살면서 스스로 밭을 일구어 먹고 살았다.
*백이와 숙제~백이.숙제는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고죽국(지금의 하북성 난하 유역)의 왕자로서 동이족이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폭군 주왕(纣王)을 정벌하려고 쳐들어 오자 백이는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서 "왕 이시여, 당신은 아버지(文王)가 돌아가시고 아직 상(喪) 중에 있는 데, 전쟁을 하려 하니 어찌 효(孝)라 할 수 있으며, 또 신하의 신분으로 군주를 침탈히려 하니 어찌 인(仁)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여 직언하였다(사기 백이열전) 그러자 곁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강태공이 의인의 말이라 하여 처벌을 면하게 해주었다.
마침내 무왕은 은을 쳐서 천하의 반을 차지하자 백이.숙제는 역성혁명을 인정할 수 없다하여 수양산에 들어가 최우를 마쳤다.
*고죽국~고죽국은 은대 제후국으로 북경 하북성 연산 일대를 세력권으로 춘추시대까지 존속하였다.
'사기 주본기'에서는 "고죽의 옛 성은 평주 노룡현에서 남쪽으로 12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은나라의 제후국이다"라고 하였다. '사기집해'에는 "요서군 영지현이다"라고 하고 있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p143~145
#한자원문 해설은 이암의 단군세기를 참고 바람니다.
#좌우를 넘어 빛나는 한겨레의 1만년의 정체성을 찾아라!!!


제22세 단군 색불루 _ 재위 48년

백악산 아사달로 도읍을 옮김
색불루 단군의 재위 원년은 병신(BCE 1285)년이다. 임금께서 녹산(단군조선의 두 번째 도읍지 백악산 아사달) 임금께서 녹산(鹿山)의 성(城)을 개축하고 관제를 개혁하였다. 가을 9월에 장당경에 행차하여 종묘(宗廟)을 세우고 할아버지 고등(高登)에게 제사를 지냈다. 11월 친히 구환의 군사를 이끌고 여러차레 벌여 은나라 수도를 함락하고 잠시 강화(講和)하였으나, 또 다시 싸워 크게 격파하셨다. 
*관제개편~'태백일사 삼한관경 마한세가'에 22세 색불루 단군께서 재위 원년 5월에 삼한을 삼조선으로 하였는 데, 조선은 관경(영토관할)을 말하다. 여원홍을 마한왕으로 삼고, 서우여를 번한왕으로 삼아 다스렸다. 이를 총칭하여 단군관경이라고 하니, 이것이 진국(辰國)이다.
이듬해 2월에 황하 상류까지 추격하여 대첩의 하례(賀禮)를 받으시고, 회수와 태산 지역에 변한(弁韓) 백성을 이주시켜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게 하시어 국위를 크게 떨쳤다.
재위 6년 신축(BCE 1280)년에 신지 육우(陸右)가 주청하기를" 아사달은 천 년 제업(帝業)의 땅이나 대운이 이미 다했고 영고탑은 왕기가 농후하여 백악산보다 나으니, 청하옵건대 그곳에 성을 쌓고 천도하옵소서"
하니 임금께서 윤허하지 않고 말씀하시기를 "새 수도를 이미 자리를 잡았거늘 어찌 다른 곳으로 옮기리오" 하셨다.
재위 20년 을묘(BCE 1266)년에 이르러 남국(藍國)이 자못 강성하여 고죽국(孤竹國)왕과 더불어 모든 도적을 쫓아 버렸다. 남쪽으로 옮겨 엄독홀(奄瀆忽)에 이르러 머무르니 그곳은 은나라 국경과 가까운 곳이다.
임금께서 여파달(黎巴達)로 하여금 병력을 나누어 빈(邠).기(岐) 땅으로 진격하시고, 그곳 유민과 서로 단합하여 나라를 세워 그 이름을 여(黎)라 하셨다. 이들은 서쪽 융족(西戎)과 더불어 은나라의 제후국들안에서 뒤섞여 살게 하셨다. 남씨의 위세가 매우 강성해지고, 임금의 덕화가 멀리 항산(恒山) 이남의 땅까지 미쳤다. 
재위 36년 신미(BCE 1250)년에 변방 장수 신독(申督)이 난을 일으켜 임금께서 잠시 영고탑으로 피난하시니 많은 백성들이 뒤를 따랐다.
재위 48년 계미(BCE 1238)년에 색불루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아홀(阿忽)께서 즉위하셨다.
*여(黎)~치우천황 때 구려(九黎)의 약칭, '상서'에 "구려는 치우의 백성이다. 왕동령도 '중국민족사'에서 "구려는 치우의 백성이다"
남국의 여파달이 빈.기에 웅거하며, 하나라 말기부터 그곳에 거주하던 고조선 사람들과 힘을 합해 여(黎)국을 세운 사실은 漢族 고대 사서에 엄연히 기록되었다.
'사기 주본기'에 의하면 주나라 선조인 고공단보는 당시에 빈에 거주하고 있었다. 훈육과 융적이 공격해 재물과 땅을 요구하자 고공단보는 싸우고자 하는 백성들을 만류하고 기산으로 옮겨갔다. '사기 주본기, 사기정의'에서는 "기국(耆國)은 곧 여국이다"라고 하였다. 이 때 여국은 빈.기 땅에서 멀리 물러나오게 되었다. 그 잔영이 지금도 여성(黎城, 산서성 여성현)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3), pp145~147
#한자원문 해설은 단군세기를 참고바람니다!
#좌우를 넘어 한겨레의 자랑스런 1만년의 정체성을 찾아라!!!

 
 
TOTAL 67
67. 가섭원부여기 [복애거사 범장 찬] 시조 해부루
가섭원부여기 _ 복애거사 범장 찬 시조 해부루 _ 재위 39년 ★동부여 수도 가섭원은 차릉 시조 해부루왕의 재위 원년은 (단기 2248, BCE)년이다. 왕이 북부여의 제재를 받아 가섭원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가섭원을 차릉(岔陵)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은 토지가 기름져서 오곡이 자라기에 적합하였는 데, 특히 보리가 많…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11-20  |  Hit: 2886
66. 북부여기 [복애거사 범장 찬] 북부여기하 _ 5세 단군 고두막 / 6세 단군 고무서
북부여기 _ 복애거사 범장 찬 북부여기 하 5세단군 고두막(일명 두막루) _ 동명왕 재위22년, 북부여 단군 재위27년 ★동명왕 고두막한의 북부여 재건과 시대배경 고두막한의 재위 원년은 계유(단기 2226, BCE 108)년이다. 이 때의 북부여는 고오루단군 13년이다. 임금께서는 사람됨이 호방하고 영준하며 용병을 잘 하셨…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11-20  |  Hit: 2998
65. 북부여기 [복애거사 범장 찬] 북부여기상 _ 3세 단군 고해사 / 4세 단군 고우루
북부여기 _ 복애거사 범장 찬 3세단군 고해사 _ 재위 49년 ★번조선 유민 최승의 낙랑국 건설 고해사단군의 원년은 임신(단기 2165, BCE169)년이다. 정월에 낙랑 왕 최승이 해성에서 곡식 3백석을 바쳤다. 이에 앞서 최승은 낙랑산(樂浪山)에서 진귀한 보물을 싣고 바다를 건너 마한에 이르러 왕검성(王儉城)에 도읍하였…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11-20  |  Hit: 2858
64. 북부여기 [복애거사 범장 찬] 북부여기상 _ 시조 단군 해모수 / 2세 단군 모수리
북부여기 _ 복애거사 범장 찬 9천년 한겨레사의 잃어버린 고리, 부여사의 진실 *고려의 국운이 다하자 사관(仕官)의 뜻을 버리고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하여 충절을 지킨 두문동 72인 중 한 분이시다. *범장 선생은 통곡하여 말하되 "백이(佰夷)는 누구이며 나는 누구인고 하니 그 품절이 이러하더라"하였다. 태조 이성계가 세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11-20  |  Hit: 3129
63. 단군세기(檀君世紀) 제46세 단군보을 / 제47세 단군고열가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46세 단군 보을 _ 재위 46년 •번조선 왕 시해사건과 고조선 중앙정부의 내분 심화 보을단군 원년은 경진(BCE 341, 단기 1993)년이다.  12월에 번조선 왕 해인(解仁)이 연나라에게 보낸 자객에게 시해를 당하였다. 오가(五加)가 서로 권력을 다투었다. •기후가 번조선의 왕이 되다.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11-20  |  Hit: 2913
62. 단군세기(檀君世紀) 제36세 단군 매륵 / 제43세 단군 물리 / 제45세 단군 여루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36세 단군 매륵 _ 재위 58년 매륵단군의 재위 원년은 정축(BCE 704)년이다.  재위 28년 갑진(BCE 673)년에 지진과 해일이 일어났다. 재위 32년 무신(BCE 673)년에 서쪽 마을 민가에서 다리가 여덟개 달린 송아지가 태어났다. 재위 35년 신해(BCE 670)년에 용마(龍馬)가 천하(天河)에서 나왔는 데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11-20  |  Hit: 675
61. 단군세기(檀君世紀) 제33세 단군 감물 / 제34세 단군 오루문 / 제35세 단군 사벌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33세 단군 감물 _ 재위 24년 감물단군의 재위 원년은 임오(BCE 819)년이다. 재위 2년 계미(BCE 818)년에 주(周)나라 사람이 와서 호랑이와 코끼리 가죽을 바쳤다. 재위 7년 무자(BCE 813)년에 영고탑 서문 밖 감물산(甘勿山) 아래에 삼성사(三聖祠)를 세우고 친히 제사를 드렸는 데, 그 서고문(誓告…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11-20  |  Hit: 673
60. 단군세기(檀君世紀) 제24세 단군연나 / 제25세 단군 솔나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24세 단군 연나 _ 재위 11년 연나 단군의 재위 원년은 정사(BCE 1161)년이다. 임금께서 숙부 고불가(固弗加)에게 명하여 섭정을 맡기셨다. 재위 2년 신축(BCE 1160)년에 모든 왕이 조칙을 받들어 소도(蘇塗)를 증설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국가의 대사가 있거나 재앙이 있으면 곧 하늘에 기도…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11-20  |  Hit: 645
59. 단군세기(檀君世紀) 제20세 단군고홀 / 21세 단군소태 / 22세 단군색불루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20세 단군 고홀 _ 재위 43년 고홀단군의 재위 원년은 신유(BCE 1380)년이다.  재위 11년 신미(BCE 1370)년 가을에 태양이 무지개를 꿰뚫었다. 재위 36년 병신(BCE 1341)년에 영고탑을 개축하시고 별궁을 지으셨다. 재위 40년 정자(BCE 1341)년에 공공(共工)인 공홀(工忽)이 구환지도(九桓地圖)를 만…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9-23  |  Hit: 860
58. 단군세기(檀君世紀) 제15세 단군 대음 / 제16세 단군 위나 / 제17세 단군 여을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15세 단군 대음 _ 재위 51년 대음단군의 재위 원년은 경진(BCE 1661)년이다. 은나라 왕 소갑(小甲) 7세가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였다. 이 해에 세를 개혁하여 80분의 1세법으로 고쳤다. 재위 2년 신사(BCE 1660)년 홍수가 크게 나서 민가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임금께서 심히 불쌍히 여기시어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9-23  |  Hit: 784
57. 단군세기(檀君世紀) 제12세 단군아한 / 제13세 단군흘단 / 14세 단군고불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12세 단군 아한 _ 재위 52년 아한단군의 재위 원년은 정해(BCE 1834)년이다. 재위 2년 무자(BCE 1833)년 4월에 외뿔 달린 짐승이 송화강 북변에 나타났다. 가을 8월에 임금께서 나라를 순행하시다가 요하(遙河)의 왼쪽에 순수관경비(巡狩官境碑)를 세우고, 역대 제왕의 명호를 새겨 전하셨다. 이…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9-23  |  Hit: 826
56. 단군세기(檀君世紀) 제10세 단군 노을/제11세 단군 도해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10세 단군 노을 재위 59년 노을단군의 재위 원년인 신묘(BCE 1950)년에 큰 동산을 만들어 처음으로 야생동물을 기르셨다. 재위 2년 임진(BCE 1949)년에 임금께서 친히 읍락에 행차하여 민정을 살피고 위로하시고 어가를 멈추고 야외에 머무르실 때 현자가 많이 따랐다.  재위 5년 을미(BCE 1946)…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8-28  |  Hit: 748
55. 단군세기(檀君世紀) 제7세 단군 한율/제8세 단군 우서한/제9세 단군 아슬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7세 단군 한율 재위 54년 갑인 원년(B.C.2047)  정미 54년(B.C.1994), 단제께서 붕어하시니 우서한(于西翰)이 즉위했다. 제8세 단군 우서한(일명 오사함) 재위 8년 우서한 단군이 재위 원년은 무신(BCE 1933)년이다. 임금께서 '20분의 1 세법'를 정하시고 물자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을 서로 통하…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8-28  |  Hit: 753
54. 단군세기(檀君世紀) 제4세 단군 오사구/제5세 구을 단군/제6세 단군 달문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4세 단군 오사구 재위 38년 ★몽고왕 임명과 인삼의 유래(1-1) 오사구단군의 재위 원년은 갑신(BCE 2137)년이다. 임금께서 아우 오사달(烏斯達)을 몽고리한(蒙古里汗, 몽골지역이 단군조선의 영역)으로 봉하셨다. 혹자는 지금의 몽고족이 그 후손이라 말한다.  겨울 10월에, 북쪽을 순수(巡狩,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8-28  |  Hit: 848
53. 단군세기(檀君世紀) 제3세 단군갸륵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3세 단군갸륵 재위45년 ★신과 왕과 종과 전의 도에 대한 말씀(1) 갸륵단군의 재위 원년은(BCE 2182)년이다. 5월에 임금께서 삼랑(三郞, 삼신을 관장하는 관직) 을보륵(乙普勒)을 불러 "신(神)과 왕(王)과 종(倧)과 전(佺)의 도"를 하문하셨다. 보륵이 엄지손가락을 깍지 끼고 오른손을 왼손 위에 포…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8-28  |  Hit: 671
52. 단군세기(檀君世紀) 제2세 부루단군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2세 단군 부루 재위 58년 ★제후 우순이 정한 국경을 바로 잡으심(1) 부루단군의 재위 원년은 신축(BCE 2240)년이다. 임금께서 어질고 복이 많아서 재물을 많이 쌓아 큰 부를 누리셨다. 백성과 더불어 산업을 다스리니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매년 봄가을에 나라 안…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8-28  |  Hit: 687
51. 단군세기(檀君世紀) 제1세 단군왕검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국조왕검 재위 93년 ★단군왕검의 탄강(誕降)과 계천(繼天):단군왕검의 혈통과 조선의 건국 '고기(古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되어 있다. 왕검(王儉)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요, 어머니는 웅씨왕(熊氏王)의 따님이다. 신묘년(BCE 2370)년 5월 2일 인시에 박달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태어나시니, 신인(…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8-28  |  Hit: 689
50. 행촌 이암 _ 단군세기(檀君世紀) 서문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이암(1297~1364), 본관은 고성이씨, 호는 행촌, 시호는 문정이다. *고려 충렬왕 23년(1297), 경상도 김해, 강원도 회양 부사를 지낸 아우(李瑀)의 장남이자 고성이씨 9대손으로 태어났다. *10세 충렬왕(32년, 1306)때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에 올라 단군왕검의 역사 의식을 가슴에 새기고 고려를 동방의 맑고…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8-28  |  Hit: 654
49. 원중동 찬_삼성기 하편
원중동 찬 삼성기하편 *환국의 실체와 배달의 역년을 밝히고 배달 성웅 치우천황의 진면목을 들어내다. *원동중(元董仲 ?)의 자세한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세조실록'에, 세조가 팔도관찰사에게 수거하도록 유시한 도서 목록에 안함로와 더불어 '삼성기'의 저자로 기록되어 있다. 한암당 이유립은 원동중을 고려 때 인물로 추정하…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7-15  |  Hit: 919
48. 안함로 찬_삼성기 상편
 안함로 찬 삼성기상편  *아찬을 지낸 시부(時賦)의 손자, 신라 진평왕 때 도승, 안홍법사, 안함태화상이라고 부르며, 신라 십중 중 한 사람이다. *시원의 신교 선맥을 계승하여 유불선의 정수를 신교 우주론으로 정리하였으며, 신교문화의 상수철학과 심신.칠성문화의 원형을 밝혔다. *삼성기 상은 환국~배달국~단군조…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7-15  |  Hit: 756
47. 이맥의 태백일사 제8_고려국본기
이맥의 태백일사 제8 고려국본기 ★고려말, 왕조의 분열과 옛영토 회복(14-1) 천수 기원 439년은 경효왕(공민왕) 5년(단기 3689, 1356)이다. 이해 여름 4월 정유(丁酉)에 기철(奇轍, 고려말기의 권세가, 몽골명 빠이앤부카), 태감 권겸(權謙), 경양부원군 노책(盧頙) 등이 반역을 꾀하다가 형벌을 순순이 받아 죽었다. 정지상을 석방하…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7-15  |  Hit: 753
1 2 3 4



- 맨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