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아카데미_삼일학 연구원
삼일학연구원 최근게시글

춘천 중도 선사유적지
[이덕일 역사TV] 세계적인 고조선 유적지에 레고…
[춘천 중도 고조선 유적지의 역사적 고찰] 3. 단…
[춘천 중도 고조선 유적지의 역사적 고찰] 2. 고…
[춘천 중도 고조선 유적지의 역사적 고찰] 1. 춘…
[반크] 레고랜드 플라스틱 장난감에 의해 어이…
정길선의 북방유라시아 유목사 산책
포르투갈의 고인돌 문화 - 카스트로 문화(Castro c…
알타이의 텡그리를 바라보며...
투르크-타타르의 Умай (우마이) 여신에 대하여
페르가나의 지형
고대 중앙아시아 유목민족들의 개념
유범식의 천지자연의 법 조선철학
3. 혁명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우리의 조선…
3. 혁명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2. 뿌리없는 사상적 흐름을 경계하며
제5장 한국 사회운동 단편 - 1. 노동자운동의 기…
존엄어린 죽음 - 인신공양 / 평화의 땅에서 살육…
팔봉산의 하나민족 이야기
한국인의 하나복본 5
한국인의 하나복본 4
한국인의 하나복본 3
한국인의 하나복본 2
한국인의 하나복본 1
한길 백공종사의 배달학당
白空 한길 종사님의 천부경 강의(73)
한길 백공종사님의 천부경 강의(72)
한길 백공종사님의 천부경 강의(71)
천부경을 빛깔로...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천일…
천부경을 빛깔로...析三極無盡本(석삼극 무진본
화니의 재미있는 桓세상이야기
[원효대사와 한桓철학 13]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원효대사와 한桓철학 12] 잘못됨을 알면서도 바…
[원효대사와 한桓철학 11] 무엇보다 홍익하는 자…
[원효대사와 한桓철학 10]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원효대사와 한桓철학 9] 애국애족은 쉽지 않다.…
김응렬의 생각없이 읽는 철학
[책속의 한 줄 - 3_4] 요가난다 자서전(기리 발라)
[책속의 한 줄 - 5_3] Conversations with God : book 3
[책속의 한 줄 - 5_2] Conversations with God : book 2
[책속의 한 줄 - 5_1] Conversations with God : book 1
[多夕日誌 공부 - 9] 張橫渠의 西銘
이강산의 통일을 위한 한민족 역사공부방
가섭원부여기 [복애거사 범장 찬] 시조 해부루
북부여기 [복애거사 범장 찬] 북부여기하 _ 5세 …
북부여기 [복애거사 범장 찬] 북부여기상 _ 3세 …
북부여기 [복애거사 범장 찬] 북부여기상 _ 시조…
단군세기(檀君世紀) 제46세 단군보을 / 제47세 단…
조홍근의 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조선(朝鮮) 제27대 두밀 …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조선(朝鮮) 제27대 두밀 …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조선(朝鮮) 제26대 추로 …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조선(朝鮮) 제25대 솔나 …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조선(朝鮮) 제25대 솔나 …
박현우의 가림토한글
한울(○).가를(十)
을미일 왕께서 아뢰시니
고한글 가릶톬
動動歌(동동가)
한 얼을 찾아서. [산해경 해내북경..氷夷(빙이)…
김용성의 태극한글 "신획"
[미치다]의 어원은 [밑+치다]입니다. (2)
마츄픽츄는 원주민 언어로 오래된 이라는 뜻
치우천황은 누구인가? 치우기록들!
시애틀에 대한 어원 고찰
우리말로 읽어야 뜻을 아는 영어
천부경, 삼일신고를 논하다
[참한역사신문] 마고천부경(麻姑天符經) 해독 …
[참한역사신문] 천부경의 내력
[참한역사신문] 묘향산 석벽본 천부경(天符經) …
[참한역사신문] 부도지와 천부…
[조홍근의 천부역사태학원] 하늘, 하늘님이란 - …
치화경治化經 인간366사
인간366사 제8훈 응함 _ 제6장 「응함」은 작음으…
인간366사 제8훈 응함 _ 제5장 「응함」은 큼으로…
인간366사 제8훈 응함 _ 제4장 「응함」은 가득함…
인간366사 제8훈 응함 _ 제3장 「응함」은 맑음으…
인간366사 제8훈 응함 _ 제2장 「응함」은 중히 …
성미경의 삼일사랑방
2022 배달문화원 애국가 - 독립군가
[KBS 다큐] 대장경에 담긴 '천년의 진리' -…
[배달문화원 개천이야기9-02] 3·1독립선언서(三…
[배달문화원 개천이야기9-01] 대한독립선언서(大…
[배달문화원 개천이야기 9] 대한독립선언서와 3…

jgs.jpg  정길선  북방유라시아 유목사 산책
 
  진(晉) 나라 8왕의 난과 단 선비
  
   작성자 : 정길선
작성일 : 2017-05-18     조회 : 284  

사마씨의 진나라가 8왕의 난이 일어나면서 극심한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본고에서는 선비의 세력이 중원에 남하한 배경이 되는 8왕의 난부터 간단히 서술하면서 단 선비의 남하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8왕의 난은 북방유목민족인 흉노와 선비가 중원을 잠식하는데 시초가 되었던 중요한 사건이다. 그리고 시대적 구분도 8왕의 난 시기부터 실질적으로 5호 16국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보는데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는 8왕의 난이 서진(西晋)의 멸망을 촉진시키고 흉노와 선비가 화북지방을 잠식하면서 전조(前趙)의 유총(劉聰)이 311년 낙양을 함락한 사건이 5호 16국의 시작으로 보았다. 그러나 아라이 히데키(新井秀樹)는 8왕의 난부터 5호 16국의 시작으로 보았는데 후에 중국학계에서는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의 시대적 구분을 받아들이면서 학계에 정식으로 확정되었다. (중국학계에서는 1975년 고대~중세사 시대적 구분을 白鳥庫吉의 주장을 인정하여 교과서에 정식으로 등록함으로써 본문의 내용과 같이 시대적 구분으로 확정되었다.)


중원 삼국을 통일한 진(晋)나라의 1대 황제인 사마염 무제가 사망하고 아들인 혜제(惠帝)가 즉위했다. 그러나 혜제는 병약하고 나이도 어렸기 때문에 정치는 양준(楊駿)과 무제의 황후 양씨 일족들이 독식하게 되었다. 이 때 혜제의 황후였던 가남풍(賈南風)은 양씨 일족들을 조정에서 추방하고 자신이 실권을 잡기 위해 여러 음모를 꾸민 끝에 혜제의 동생 초왕(楚王) 사마위와 협력해 낙양(洛陽)에 있던 양씨 일족들을 모두 죽이거나 추방했다. 양씨 일족들을 조정에서 추방한 가남풍은 정권을 혜제의 대숙부였던 여남왕 사마량에게 맡겼으나, 사마량은 가남풍의 의도대로 정권을 운영하지 않았다. 그러자 가남풍은 혜제의 밀서를 이용해 사마위가 사마량을 공격하게 만들고, 끝내 사마량은 자결했다. 이후 사마위에게 사마량을 살해한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고 가남풍은 정권을 쟁취하여 안정화를 꾀하게 되었다.


혜제는 후궁에게서 태어난 황자인 사마휼(司馬遹)이 있었고 그의 재능이 뛰어나자 태자로 임명하려 하였다. 가남풍은 사마휼의 재능에 정치적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실제 무제는 혜제의 유약함에 실망하여 혜제를 태자로 세우려 하지 않았으나 손자인 사마휼이 워낙 출중했기 때문에 혜제에게 자리를 물려준 것이었다. 그리고 무제 자신도 26명의 후궁들에게서 많은 아들이 있었으나 황손인 사마휼의 재능을 뛰어넘는 황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황실의 상황에서 무제가 혜제를 태자 책봉함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장남인 사마궤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태자 상속에 대한 형평성도 어긋나지 않았다. 무제는 혜제가 워낙 유약해 오래 살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였다고 생각된다.


가남풍은 모반죄를 사마휼에게 덮어 씌어 태자 자리를 박탈하고 살해했다. 그러자 사마량의 동생이었던 조왕 사마륜은 혜제의 종제(從弟)인 제왕 사마경과 협력하여 혜제의 칙서를 위조해 궐기했다. 태자 사마휼을 살해한 죄를 물어 가남풍을 죽이고 일족을 몰살했다.


301년 사마륜은 혜제를 유폐하고 스스로 즉위했다. 그러나 사마륜과 측근 손수(孫秀)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에 불만을 품은 사마경은 혜제의 동생인 장사왕 사마애와 성도왕 사마영 그리고 사마의의 조카의 아들이었던 하간왕 사마옹을 낙양에서 궐기하게 하여 사마륜을 죽였다. 그리고 사마경은 혜제를 황위에 복위시켰다. 사마경은 모든 정권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혜제의 태자 책봉 문제에도 개입하였으나 이러한 독단적 행위는 주변의 사마씨들의 반발을 사게 만들었다.


사마애, 사마영, 사마옹은 다시 궐기하여 사마경을 살해했고, 사마경의 후임을 정하는 문제에서 이해관계가 발생했다. 그런 상황에서 사마영, 사마옹은 사마애를 불러내 살해했고 사마영이 승상과 스스로 태자 지위까지 올라 황제가 될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낙양에서 즉위하기에는 매우 위험하다 판단한 사마영이 사마옹의 부하 장방(張方)에게 낙양을 통치하게 하고 장안으로 수도를 옮기려 하였다. 그러자 이를 월권으로 판단한 동해왕 사마월이 혜제의 막내동생 예장왕(預章王) 사마치(司馬熾)와 함께 반기를 들었다. 한 때 사마월은 사마영에게 패배했으나 이번에는 남흉노의 잔존세력과 단 선비, 모용선비 등의 부족들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장안을 함락시키고 사마영을 태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선비세력과 흉노세력의 기마민족들을 자신의 편으로 흡수한 사마월은 낙양을 지키고 있던 사마옹을 공격했다. 이 때 사마옹이 강화를 요청하기 위해 성 밖에 나오자 사마옹을 제거하고 낙양에 입성했다. 그리고 포로로 잡은 사마영도 처형했다. 이 모든 작업이 끝나자 사마월은 306년에 죽은 혜제의 뒤를 이어 사마치를 회제(懷帝)로 즉위시키고, 자신은 그를 보좌하였다. 8왕의 난은 사마월의 최종 승리로 종결되었으나 사마월의 정권 쟁탈을 도왔던 남흉노, 선비의 세력들이 사마월에게 영토를 요구하였다. 그러자 사마월은 남흉노, 선비 세력들을 장성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이 장성 이남에 살 수 있도록 승낙했다. 이것은 사마월의 정권 유지를 위해서도 기마유목민족들이 필요했고 기마유목민족들은 장성 이남의 경작지들을 지배하여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마월은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유목민족들의 자치를 철회하고 그들을 장성 밖으로 몰아내려 하자 오히려 이에 반발한 흉노와 선비 일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유목민족들을 막기 위하여 군사적 공격을 감행했으나 오히려 패배하고 진나라는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진나라의 패배의 이유는 8왕의 난을 통해 손수, 장화, 양제 등 많은 인재와 무장들이 죽어 군사들을 통솔할 수 있는 지휘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리고 진나라 내부의 군관들과 장수들도 흉노, 선비계가 많았다. 이들 장수들이 언제라도 궐기를 할 수 있는 매우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남흉노 출신의 유연(劉淵)이 304년 한(漢)나라를 세우면서 중원 전 지역을 포함한 거대한 내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흉노 세력과 선비 세력이 합세했고 진나라와 일단 양분한 세력이 되었다.


먼저 8왕의 난 시기에 진나라로 들어온 선비의 세력은 단 선비, 모용선비, 우문선비로 탁발선비, 독발선비, 걸복선비는 혼란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들어온다. 311년 한나라의 유총이 진나라의 수도 낙양을 함락시키고 회제(懷帝)를 포로로 잡았다. 이에 진나라가 저항하자 316년 유총은 장안마저 함락시키고 민제(愍帝)를 사로잡으면서 진나라가 멸망하게 되었다.


* 이를 일명 영가의 난(永嘉─亂)이라 한다. 산서성(山西省) 일대에 이주하고 있던 흉노부족이 중심세력으로, 족장(族長) 유연(劉淵)은 팔왕(八王)의 난(300) 뒤의 중원(中原)이 혼란함을 틈타 독립할 결심을 굳히고 304년 국호를 한(漢:후에 趙)이라 칭하였다. 유연이 죽은 뒤 아들 유총(劉聰)은 거병하여 낙양(洛陽)을 함락시키고 회제를 자신들의 근거지인 평양(平陽:山西省)으로 잡아다가 죽이고, 서진의 군사 10여만 명도 학살함으로써 낙양은 폐허가 되었다. 그리하여 서진은 망하고 왕족인 사마씨(司馬氏)는 강남(江南)으로 피하여 남경(南京)에 도읍하고 동진(東晉)을 세우자, 그때부터 5호 16국(五胡十六國)시대가 시작되어 화북(華北)은 오랫동안 5호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15284884_1268393906553007_2338303725411118713_n.jpg

 
 
TOTAL 170
23. 걸복선비의 중원 진출
걸복선비는 토욕혼, 농서지역에 정착하면서 세력을 키워갔다. 해당 지역은 원래 흉노의 점령지였고 흉노의 기원지로 추정되는 기련산(祁連山)과 언지산(焉支山)이 근교에 있었던 지역이었다. 그리고 두 산 근처에 독발선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걸복선비는 선비의 역사에 단 선비, 모용선비, 탁발선비처럼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그…
Name: 정길선  |  Date: 2017-05-19  |  Hit: 323
22. 단 선비 일족의이동
단 선비는 1차로 모용선비와 후조의 군사들에게 패배하고 하북, 산동성에 자리잡은 부족들이 고구려로 도주했다. 그리고 단요가 전연에 항복함으로써 단 선비는 대부분 전연에 흡수되어 소멸되었다. 그러나 일부 단 선비는 서북쪽으로 이동을 계속했고 산서성(山西省)이북의 독발선비의 지역을 통과해야 했다. 그러나 숫자적으로 열세…
Name: 정길선  |  Date: 2017-05-19  |  Hit: 332
21. 모용외의 등장과 단 선비
유총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화북의 복종하지 않는 다른 유목민족 세력을 굴복시키고자 하였다. 이에 반발한 세력은 유총과 다른 민족인 갈족(葛族) 수장인 석륵(石勒)이었다. 석륵은 진나라와 유총이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양국(襄國)을 기반으로 삼고 하북 일대에 반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하였다. 316년에는 하북 일대로 공격해온 남흉…
Name: 정길선  |  Date: 2017-05-19  |  Hit: 253
20. 진(晉) 나라 8왕의 난과 단 선비
사마씨의 진나라가 8왕의 난이 일어나면서 극심한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본고에서는 선비의 세력이 중원에 남하한 배경이 되는 8왕의 난부터 간단히 서술하면서 단 선비의 남하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8왕의 난은 북방유목민족인 흉노와 선비가 중원을 잠식하는데 시초가 되었던 중요한 사건이다. 그리고 시대적 구분도 8왕의 난 시…
Name: 정길선  |  Date: 2017-05-18  |  Hit: 285
19. 단 선비와 부여, 고구려와의 관계
단 선비는 대흥안령산맥을 중심으로 시작하였고 세력이 남하하면서 중국과 국경이 맞닿았고 동쪽으로는 부여, 고구려와 경계하였다. 부여는 평소 흉노와의 관계가 좋았으나 흉노가 물러난 이후 선비와 지속적인 평화적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부여와 선비의 관계는 외교적인 부분에서 아직 연구가 미진하기 때문에 2세기 이후의 관…
Name: 정길선  |  Date: 2017-05-18  |  Hit: 343
18. 가비능과 보도근의 단 선비 통치 시대
233년 가비능이 보도근을 유인하여 화친을 맺었고 이에 보도근은 설귀니와 부족민들을 모두 이끌고 가비능에게 의지하였다. 이것은 가비능이 위나라보다 더 좋은 실익(實益)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가비능은 보도근을 끌어들여 오히려 위나라를 공격하게 함으로써 두 세력 동시 제거를 노렸다. 보도근은 병주를 침략하고 관원과 백…
Name: 정길선  |  Date: 2017-05-18  |  Hit: 352
17. 화련과 가비능, 보도근의 통치 시대
화련은 재능과 용력이 부친인 단석괴에 미치지 못하고 탐욕스럽고 음란하였다. 그리고 사리판별을 못하여 부족민들 중에 반기를 든 자가 절반에 이르렀다. 영제 말년에 후한 변경을 여러 차례 침략하고 북지(北地)를 공격했는데, 북지의 서인(庶人) 중에 노(弩)를 잘 쏘는 자가 있어 화련을 쏘아 죽였다. 단 선비는 화련이 죽자 퇴각하였…
Name: 정길선  |  Date: 2017-05-18  |  Hit: 358
16. 단석괴의 통치 시기와 선비족의 남하
단석괴는 앞서 단 선비씨족의 기원을 서술함에서 출생과 신화적 요소에 대해 서술하였으며 본 단락에서는 단석괴의 단 선비의 성장과 가비능의 등장 및 가비능의 암살로 인한 부족 침체기까지 서술하려 한다. 단석괴가 즉위한 이후 고류(高柳) 북쪽 3백여 리 되는 곳의 탄한산(彈汗山) 철구수(啜仇水)가에 정(庭)을 두었고 주변 씨족…
Name: 정길선  |  Date: 2017-05-18  |  Hit: 336
15. 초기 선비의 고고학적 검토
초기 선비는 대흥안령산맥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서요하(西遼河)유역, 서쪽으로는 몽골고원의 오논 강에서부터 시라무렌 강까지에 이른다. 대흥안령산맥의 북쪽 지역인 탁발씨의 기원지이고 그보다 남쪽인 선비산은 단 선비의 기원지이다. 그리고 서랍목륜하 지역은 독발씨와 걸복씨의 기원지이고 대흥안령산맥이 끝나는 지점인 서…
Name: 정길선  |  Date: 2017-05-18  |  Hit: 302
14. 단 선비의 상세한 연구 개요 설명
앞서 단 선비에 대한 서술은 단 선비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단석괴의 탄생신화에 주로 역점을 두었다. 그리고 단석괴는 15~16세에 용맹함과 지략, 부족을 이끌 수 있는 역량을 두루 갖춘 뒤 단 선비의 지도자가 되어 선비의 씨족 전체를 통솔하게 되었다. 단석괴는 몽골고원과 장성 이북, 멀리는 중앙아시아에까지 세력을 확대하여 거대…
Name: 정길선  |  Date: 2017-05-18  |  Hit: 388
13. 우문선비의 기원 두번째 이야기
모용선비는 대외적으로는 위나라에 협력하고 위나라의 정복전쟁에 참가하면서 서서히 역량을 끌어올렸다. 대표적인 위나라의 정복전쟁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촉, 오와의 삼국쟁패에 용병으로 참전하였다는 것과 관구검의 고구려 침략에 참여했다는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모용선비의 이러한 이중적인 외교는 …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380
12. 우문선비의 기원
우문씨 선비는 기원이 분명치 않으나 시라무렌 강(西拉木倫河) 유역을 중심으로 단 선비와 함께 유목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탁발, 모용, 단 선비가 세력이 강력해졌을 때 우문씨는 선비 씨족 중 가장 늦게 세력이 발흥(發興)했으며 가장 늦게 중원에 진출한 세력이었다. (『후한서,後漢書』,卷 九十,「烏桓鮮卑列傳」, 第五, [본문] 俞…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297
11. 탁발선비의 기원 두번째 이야기와 시조 탁발역미의 등장
후한에서 위나라로 교체되고 오환이 조조에 의해 무너지자 탁발씨는 오환과 그 외의 기타 선비씨족들을 지속적으로 통합했다. 전쟁이 아닌 포용성과 개방성을 지니면서 각 부족을 통합하여 사마씨(司馬氏) 진나라 시기에는 상당한 세력을 갖춘 부족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부족 통합은 역량을 갖춘 부족장이 나타나지 않으면 불가능한…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327
10. 탁발선비의 기원
탁발선비는 선비의 씨족 중 가장 많은 씨족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그들은 기존의 단 선비나 모용선비와는 기원지가 달랐으며 대부분 평원과 산을 의지하였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동굴에서 부족의 기원이 시작되었는데 이에 대한 시대적인 배경에는 흉노의 침입으로 동호가 멸망하였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탁발의 씨족들…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334
9. 목용과 모용선비, 그리고 모용선비의 기원 두번째..
목용은 씨족들을 규합하여 불칸 산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하여 부족으로 성장시켰다. 그리고 부족들을 이끌고 오늘날의 장성 근처로 이주하였는데 그 수는 2만 명에 달했다. 목용이 죽은 후 뒤를 이어 목연(木延)이 대인(大人)이 되어 부족을 이끌었고 모용씨는 하북성(河北省) 지역으로 들어와 거주하게 되었다. 대인(大人)은 부족을 …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349
8. 모용선비의 기원
모용선비는 선비의 씨족 중 세 번째로 많은 부족민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오늘날의 몽골고원 동쪽인 바르히얀(Barhiyan)에서 기원했다. 바르히얀(Barhiyan)은 오논 강(Ohnon) 중류 지역으로 지형상 칭기즈칸의 탄생지인 카라코룸(Karacorum)의 인근에 위치해있다. 지금은 사막으로 변했지만 당시 칭기즈칸이 해당 지역을 정복하고 파괴한 이전에는…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361
7. 독발선비의 기원
독발씨는 대대로 양주(凉州) 남부에 거주하던 씨족이었다. 독발씨는 어디에서 기원했고 기원 시조가 누구인지 기록된 바 없다. 단 남아있는 기록이 있다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양주(凉州)남부에 거주하였다는 기록이 전부이다. 독발씨는 걸복씨보다 기록이 더 없으며 『흉노사』에도 독발씨의 기원을 찾을 수 없다. 독발씨의 기…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274
6. 걸복선비, 홀복씨의 기원
걸복씨의 기원은 중국 문헌사료에 의하면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단지 단석괴의 단 선비에 의해 갈려나왔다는 기록이『위략(魏略)』에 존재하고 있으나 이 역시 확실하지 않다.『흉노사』에는 당시 걸복씨가 부여와 인근에 접경하고 있던 씨족이었다는 기록만이 걸복씨에 대한 단 선비 이전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걸복씨는 흉…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310
5. 단석괴의 이름 유래와 그에 따른 샤머니즘 해석
단석괴라는 이름에서 어원과 샤머니즘, 신화와의 비교를 분석해보면 사실 단족이 단군조선의 후예라는 것이 절실히 드러난다. 단석괴의 단(檀)은 단군조선의 천자(天子)인 단군(檀君)을 호칭하며 단석괴가 즉위하고 나서 본연의 성씨를 단(檀)씨로 하였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에 괴(槐)자가 중요한 부분인데 ‘홰나무 괴(槐)’ 자…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262
4. 단석괴의 출생과 성장 배경, 그리고 단석괴라는 이름의 의미
단 선비는 단석괴(檀石槐)가 나타나 선비 전체의 종족을 통합하기 전까지는 선비의 씨족 가운데 크게 중심이 되는 씨족이 아니었다. 단석괴(檀石槐) 이전까지의 선비는 전체적으로 통일되어 역사상 전면에 나타났던 부족이 아닌 마땅한 영도자가 없이 씨족끼리 이동하여 개별적으로 세력을 유지했던 종족이었다. 그러면서 흉노, 한, 오…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486
3. 단 선비 연구 개요
선비의 시대적 구분을 나열할 때 단선비의 단석괴(檀石槐)가 등장하기 전의 선비는 초기 선비로 구분하고 단석괴 이후에는 단 선비의 통치기, 가비능(軻比能)의 통치기를 거쳐 모용씨 선비, 탁발씨 선비로 구분하여 마지막에 우문씨 선비로 선비의 시대적인 구분이 이루어진다. 선비가 부족적인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유목…
Name: 정길선  |  Date: 2017-05-11  |  Hit: 295
1 2 3 4 5 6 7 8 9



- 맨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