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이 임금성에 도읍을 세워 성곽을 축조하고 궁실을 지으며 생명과 곡식과 병사와 형벌과 질병과 선악과 및 지방의 일 등을 주관하는 여러 관직을 설치하였다. 아들 부루(夫婁)는 호가(虎加)로 삼아 모든 가(加)들을 통괄하게 하였으며, 신지씨(즉 옛날 신지씨의 후손이다. 다음의 모든 것도 이와 같다)는 마가(馬加)로 삼아 생명을 주관하게 하고, 고시씨는 우가(牛加)로 삼아 곡식을 주관하게 하고, 치우씨는 웅가(熊加)로 삼아 병사를 주관하게 하고, 둘째아들 부소(夫蘇)는 응가(鷹加)로 삼아 형벌을 주관하게 하고, 세째 아들 부우(夫虞)는 노가(鷺加)로 삼아 질병을 주관하게 하고, 주인씨는 학가(鶴加)로 삼아 선악을 주관하게 하고, 여수기(余守己)는 구가(狗加)로 삼아 모든 고을을 나누어 관리하게 하였다. 이를 일컬어 ‘단군팔가(檀君八加)’라 하고는 흰소를 잡아 태백산 기슭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단기고사檀奇古史에
125년 7월 5일에 셋째 아들 부우(扶虞)를 강화(江華)에 보내 전등산(傳燈山)에 삼랑성(三郞城)을 쌓게 하시며, 제천단(祭天壇)을 마니산(摩尼山)에 쌓고 하느님께 제사하시니, 동방 민족이 하느님께 제사하는 풍속은 시조 단제(檀帝)때부터 시작되었다. 150년에 임금께서 세상을 뜨시니 왕위에 계신 지 57년이며 제위(帝位)는 93년이다. 백성들이 부모상을 당한 것처럼 사해(四海)가 다 음악을 그치고, 집집마다 시조 단제의 신위(神位)를 세우고, 아침저녁으로 경배하였다.
태자 부루(扶婁)가 왕위에 오르니 제 2세 단제시다. 부루단군 재위 첫해 9월에 가운데 아우 부여(扶餘)를 망구왕(茫球王=遼西)으로 삼고, 셋째아우 부우(扶宇)를 동해와(東海王=東海邊)으로 삼으니 삼한(三韓)은 동해왕의 후세이다.
또한 강화 마리산과 삼랑성에 대한 기록은 단군세기에
"무오 51년(B.C.2283), 임금께서 운사(雲師)인 배달신(倍達臣)에게 명하여 혈구(穴口)에 삼랑성(三郞城)을 짓고 제천(祭天)의 단(檀)을 마리산(摩璃山)에 쌓게 하였으니 지금의 참성단(塹城壇)이 바로 그것이다."로 기록되어 있다.
배달전서에는
재위 오십일년 왕검천황께서 셋째 태자 부우를 강화에 보내어 삼랑성을 혈구에 쌓고 제천단을 마리산 꼭대기에 쌓아 하느님께 제 지내도록 명하시었다.이후로부터 각 곳에서 천제단을 쌓았는데 천일 지이를 뜻하여 두 개의 돌을 세우고 그 위에 한 개의 큰 돌을 얹어서 천단을 만들었다. 재위 육십칠년에 왕감천황께서 황태자 부루를 도산에 보내어 우사공을 만나 오행치수육법을 전하고 나라의 경계를 정하여 유영의 두 주를 조선에 붙게 하고 회대에 제후를 봉하여 다스리도록 하고 우순으로 하여금 감찰하도록 하시었다.
그림은 단군왕검과 비서갑 왕모 그리고 네분의 아드님이신 부루, 부소, 부여, 부우와 사료에는 없지만 전해내려오는 설화를 바탕으로 엄지공주까지 표현하였습니다.
가정은 불완전한 우리를 완전하게 하는 인간 삶의 필수 요건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옛 말에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뤄야 비소서 어른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정이 붕괴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이 가슴에 세겨야 할 옛 가르침이라 여겨집니다. 여기서 "어른"이라는 개념은 비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근본적 세상이치를 통하여 생명의 탄생과 책임있는 삶을 주도해 나가는 주체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이 과정을 충실히 잘 이행한 사람이 홍익인간이고 그 가정은 하나의 이화세상이라 하겠습니다.
그림에서 처럼 한웅천왕에게서 이어받은 어른으로서의 도리를 충분히 이행함으로서 단군왕검께서 이룬 가정은 민족을 이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