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전59년 임술년(壬戌年)에 고무서 천왕이 졸본천에서 즉위하고는 백악산에서 장로들과 함께 모여 역사에 따른 실례에 따라 널리 하늘에 제사할 것을 약속하니 모두가 크게 기뻐하였다.
고무서 천왕께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신(神)과 같은 덕이 있어 능히 주술로써 바람과 비를 불러 잘 구제하므로 민심을 크게 얻어 소해모수(小解慕漱)라고 불렸다. 한편, 대해모수(大解慕漱)는 북부여 시조 해모수를 가리킨다.
나. 한나라 도적들을 격파하다.
서기전59년 임술년에 한나라 도적들이 요좌(遼左)에서 소란을 피우므로 여러 차례 싸워 크게 이겼다.
여기서 요좌(遼左)는 요수의 동쪽으로서 요동(遼東)을 가리키며, 요동과 요서의 기준이 되는 소요수(小遼水)와 난하를 기준으로 그 동쪽이 되며, 현도군과 낙랑군의 동쪽이 될 것이다. 진번 땅과 임둔 땅은 서기전82년에 북부여에 이미 귀속되었던 것이 된다.
다. 고주몽이 동부여에서 북부여 졸본으로 탈출하다.
서기전59년 고주몽이 21세 되던 해에 동부여에서 나라 사람들이 고주몽을 가리켜 나라에 이로움이 없는 인물이라 하며 죽이려 하므로, 남동쪽으로 도망하라는 어머니 유화부인의 명을 받들어, 덕으로 사귄 친구인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와 함께 길을 떠나 분릉수(엄리대수)에 이르렀는데, 건너려고 하였으나 다리가 없으므로 뒤쫓아 오는 군사들에게 몰릴까 두려워 하여 물에 고하기를, “나는 천제자(天帝子)요 하백(河伯)의 외손(外孫)인데 오늘 도주함에 추격하는 자들이 다가오고 있는데 어찌하란 말인가?”라고 하니, 이때 물고기와 자라 등이 떠올라 다리를 만들므로 주몽이 건너가자 물고기와 자라는 다시 흩어졌다.
여기서 물고기와 자라 등은 하백의 다스림을 받고 있던 어민이나 어부들을 가리키는 것이 되며, 다리를 만들었다는 것은 배와 배를 서로 이어서 다리처럼 만들었다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에 고주몽은 졸본으로 가다가 모둔곡(毛屯谷)에서 다시 재사(再思), 무골(武骨), 묵거(墨居)를 만나니 모두 7의인(義人)이 되어 무리들 앞에서 다물흥방(多勿興邦)을 맹세하며 하늘에 제를 지냈다. 이때 하늘에 고(告)한 제천문(祭天文)이 있다.
라. 고주몽 다물흥방(多勿興邦) 고천문(告天文)
한한상존(桓桓上尊)이시여!
구한(九桓)에 비추어 내리시사 밭을 일구고 황무지를 바꾸어 우리 땅에 우리 곡식으로, 오직 우리 진한(辰韓)이 융성하고 부강하게 하소서!
7인이 같은 덕(德)으로 큰 원을 회복하고자 맹서하고 도적들을 물리쳐, 우리 옛 강토를 완전하게 하고, 오래된 숙병(宿病)을 제거하고, 우리의 누적된 원한을 풀고, 기근과 병란을 일거에 없애고, 도를 따라 백성을 사랑하고, 삼한(三韓)이 함께 다스려져, 서에서 동으로, 북에서 남으로, 어려서는 반드시 전(佺)을 따르고 늙어서는 종(倧)이 있을 바이다!
노래와 춤으로 마땅히 취하고 배부르게 되오며, 구한(九桓)이 하나의 땅으로서 오래오래 계승되오리다!
이제 소자 과덕하여 근면에 힘씀에, 머리를 조아려 받드니, 신(神)께선 흠향을 마다하지 마시고, 소자들이 가는 정벌에 이롭게 하시고, 공을 빛나게 하소서. 우리나라를 도우시사 우리백성들이 오래 살게 하소서!
(桓桓上尊 照臨九桓 畇畇闢荒 我土我穀 惟我辰韓 旣殷且富 七人同德 誓復弘願 斥逐寇掠 完我旧疆 去彼宿病 解我積寃 飢饉兵亂 一幷掃盡 引道愛民 三韓同治 自西而東 自北而南 幼必從佺 老有所倧 以歌以舞 且醉且飽 九桓一土 齊登壽域 今朕寡德 甚勤而時 叩頭薦供 神嗜飮食 以利我征 俾光我功 佑我國家 壽我人民)
고주몽의 일행이 졸본(卒本)에 이르렀는데, 고무서 천왕은 아들이 없어 고주몽을 보고 사람이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 둘째 딸 소서노(召西弩)를 아내로 삼게 하였다.
마. 흰 노루(白獐)을 얻다.
서기전58년 계해년(癸亥年)에 고무서 천왕이 영고탑(寧古塔)을 순시하다가 흰 노루를 얻었다.
바. 고무몽의 북부여 단군 즉위
서기전58년 계해년(癸亥年) 10월에 고무서 천왕께서 붕하시고, 고주몽이 유언에 따라 대통(大統)을 이었다. 이에 고주몽도 또한 단군(檀君)이 된다. 고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후에는 시호가 동명성제(東明聖帝)로서, 일반 왕(王)을 거느리거나 봉하는 제(帝)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