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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촉문화를 이룬 사천지역의 유목민족 - 융족,서남이, 강족, 저족
  
   작성자 : 배달문화원
작성일 : 2017-11-17     조회 : 401  


사천성의 옛 문명을 고촉문명이라 학계에서 명명하고 있는데 이 문명이 발생한 것은 소위 한족의 기원이라 명명되고 있는 황하문명을 약 200~300여년을 앞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서 가장 대표적인 고촉문명의 근거는 이른 시기에 나타난 삼성퇴 문명으로 이 문화의 시기는 신석기 후기~청동기 초기로 추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석기 문명으로까지 그 흐름을 연결하다 보면 약 200만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보아 사천 지역은 기록이 나타나는 시기보다 훨씬 오래전에 이미 인류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7,000~8,000년 전에 이미 신석기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4,000~5,000년 전에는 전설(傳說)시대라 하여 강족의 신화인 두안주와 목저주의 신화의 시기로 접어들게 된다. 이 시기에 유적들이 삼성퇴 이외의 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음에 따라 이와 같은 신화가 실제 역사일 수 있다는 가정을 하게 되었고 늦어도 상(商)나라 시대에는 이미 노예 사회로 진입하고 있음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광도(廣都)에 도읍을 정한 사천성의 원주민들과 강족 및 저족, 기타 융족의 민족들은 서기 전 4세기에는 매우 강성했으나 서융이 건국한 진(秦)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이 서기 전 316년에 사천으로 진입하여 점령하고 이후 사천은 진(秦)나라의 영토가 된다. 이후, 진(秦)나라가 전국을 재패하고 진(秦) 말기에 유방과 항우가 쟁패하면서 유방이 사천 지역으로 들어와 그 기반을 닦았다. 그리고 사천 지역을 중심으로 한왕(漢王)을 참칭했는데 이 사천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관중(關中)을 토벌하고 항우를 제압해 전한(前漢)이 건국된다. 

전, 후 한(漢)나라 시기에는 사천 지역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북방의 흉노, 선비 등의 유목민족들과 남방의 세력들이 반기를 들 때 사천 지역을 최후의 방어 지역으로 삼았으며 후한 말기~조위(曺魏)시대 초기에 유비(劉備)가 성도(成都)를 도읍으로 하여 촉한(蜀漢) 시대(221~263)를 열었다. 일반적으로 고촉문명, 혹은 고촉문화라 함은 촉한(蜀漢) 시대까지를 이르는 말이며 특히 중국학계에서는 고촉(古蜀)과 중촉(中蜀)을 구분할 때 촉한이 위(魏)의 사마소(司馬昭)에게 멸망할 때까지를 지칭하는 용어로 상정하기도 하였다. 

본 연구를 하게 된 것은 강족, 저족의 연구의 후속으로 북방 문명과의 연관성이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었고 강족, 저족의 연구로 인하여 많은 왕래가 있었을 것임을 확신했다. 그러한 연유에서 비롯되어 사천의 고촉 문명이 북방과 남방이 공존한 문명이라는 것에서 주목하게 되었다. 또한 중국 정부의 여러 공정을 견제하기 위하여 북방과 남방이 공존한 고촉 문명을 학술적 전략의 거점으로 삼기 위한 목적이 다소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이를 전제하기 위하여 본 고촉 문명에 대한 소고는 장기적인 연구의 첫 번째 틀을 형성하려 한다. 

일반적으로 고전 문헌들에 있어 많은 경우, 소위 멸시적인 칭호로 언급되는 중국의 여러 주변 부족들 가운데 그들의 역사가 가장 생소한 것이 강융(羌戎)과 서남이(西南夷)* 세력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방위의 개념을 차용하여 사방의 오랑캐에 명칭을 지칭했다. 이에 동쪽은 이(夷)와 서쪽은 융(戎), 북쪽은 적(狄)이고 남쪽은 만(蠻)이라 한다고 하는데 이는 후대에 정리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이에 대한 연유는 중세 시대의 명(明)나라가 남방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면서 한족의 용어로 사실상 확정되었는데 이전 원(元)나라 때도 남방 민족을 차별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유목민족성 계급사회를 만들기도 하였다. 

* 한나라 시기에는 지금의 복건성, 광동성, 광서지역, 귀주성, 운남성 일대에 거주하는 민족들을 남만 또는 서남이(西南夷)로 호칭하였으며, 동남아시아 일대의 임읍, 부남 등의 국가도 남만으로 분류하였다.

* 남만은 남쪽의 오랑캐를 지칭하는 용어이기 때문에 한족을 정복하고 정복왕조를 세운 북방민족들은 피정복민인 한족을 남만으로 멸칭하기도 하였다. 특히 원(元)나라는 남송을 정복한 이후 남송의 한족들을 남만으로 차별하였다.
동북아시아 문명권에 속해있던 한국과 일본도 사이(四夷)와 같은 호칭을 받아들여 사용하였다. 일본은 규슈 남부 및 오키나와 지역을 만(蠻)이라 호칭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한국은 류큐 왕국 및 동남아시아의 국가들과 조공 무역을 하였는데, 이들을 남만이라 불렀고 선박은 남만선, 상품은 남만물산이라 하였다.

* 여기에서 나타나는 사이(四夷) 중 남만(南蠻)은 중국 역사에서 남쪽에 사는 오랑캐를 통칭하여 부르는 말이다. 만이(蠻夷)라는 표현으로 남방민족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일반적으로 동, 서, 남, 북의 각 방위에 따라 오랑캐를 구분하여 동이(東夷) · 서융(西戎) · 남만 · 북적(北狄)으로 불렀다. 근대 이후에는 서양인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실상 융(戎)이라는 민족만 해도 고대 기록을 찾아보면 산융(山戎)은 요서지방에서 활동하던 북적이나 동이(東夷)와 더 가까운 종족이다.* 또한 운남성 등지에 자리 잡은 남방민족을 한(漢)나라 시대의 한족들이 이(夷)라 불렀고 동쪽의 이(夷)와 구별해 서남이(西南夷)라 지칭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강융(羌戎)과 서남이 민족들은 결국 독립성을 유지하는데 실패하여 현재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실크로드 지역에 있는 신강성과 청해성에 존재한 국가들처럼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고 이는 최근 중국의 북방 정책과 무관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 중국정부와 학계가 집중하고 있는 북방 지역과는 달리 남방 지역은 비교적 소외된 상태에 있기 때문에 북방과 남방의 교차점을 이루었던 사천 지역 문명을 전략적으로 연구해야 할 필요성이 재기되고 있다.*

*  산융은 초기에 산동 태산 부근에 거주하였지만 상(商)나라가 멸망하고 서주(西周)정권이 들어서자 한족과 대결을 하는 국면을 맞이하면서 점차 북쪽으로 이동하였다. 산동 지역의 산융은 한족과 잡거하며 그들에게 융합되었고, 제(齊)나라의 세력이 강해지자 더욱 북쪽으로 올라가 연(燕)의 북쪽에 거주한 산융은 하북 북부와 요서지역에 정착하여 다시 세력을 강화했다. 

* 서남이 부족은 복잡하고 다양한데, 그 중에서 규모가 비교적 큰 것으로는 '야랑(夜郞)'(지금의 귀주성 복천현 福泉縣 서쪽에서 운남성 동부에 이르는 지대) '전'(滇: 지금의 운남성 중부 지대) · '공도'(邛都: 지금의 사천성 서창 西昌 지대) · '수'(수=山 아래 雋, 지금의 운남성 보산 保山 지구) · '곤명'(昆明: 지금의 운남성 대리주 大理州) · '도'(徒) · '작도'(笮都: 지금의 사천성 아안 雅安 지구) · '염방'(冉방: 지금의 사천성 아패주 阿坝州 일대) · '백마'(白馬: 지금의 감숙성 남부와 사천성 접경지대) 등이 있었다. 당시에 그들이 살던 지역은 파촉(巴蜀)의 서남 변방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남이(西南夷)'라 일컬어졌다.

* 『사기(史記)』, 卷 百十六,「西南夷列傳」, 第 十六. [본문] 西南夷君長以什數, 夜郎最大;其西靡莫之屬以什數, 滇最大;自滇以北君長以什數, 邛都最大:此皆魋結, 耕田, 有邑聚. 其外西自同師以東, 北至楪楡, 名為嶲、昆明, 皆編髪, 隨畜遷徙, 毋常処, 毋君長, 地方可數千里. 自嶲以東北, 君長以什數, 徙、筰都最大;自筰以東北, 君長以什數, 冉駹最大. 其俗或士箸, 或移徙, 在蜀之西. 自冉駹以東北, 君長以什數, 白馬最大, 皆氐類也. 此皆巴蜀西南外蠻夷也.

북방민족에 대해서는 20세기 후반에 제작된 일본 NHK 실크로드 특집 등을 방영되어 크게 알려진 바 있으나 반대로 서남이 종족들에 대한 고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운남성의 다양하고 이국적인 풍습을 가진 소수민족에 대해서 소개하는 자료들은 있어도 이들의 역사가 소개되는 자료는 거의 없어 역사적인 관점으로 볼 때 중국의 남방 민족들은 항상 소외 된 위치에 있었으며 역사의 전면에 나서 본 경험이 많지 않았다. 이러한 부분들로 볼 때 반대로 북방에 집중되어 있는 여러 공정들에 대해 견제 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들 민족에 대하여 관광 상품으로 개발될 수는 있어도 중국 학계조차 그들의 역사에 대하여 전혀 주목하지 않고 있어 전략적으로 이용할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사천 지역은 앞서 서술한 것과 같이 북방문화와 남방문화, 그리고 민족 간의 교차지점으로 그 활용 가치는 매우 높다. 

사천 지역의 민족으로 강(羌)과 같은 계통의 민족인 저(氐)는 갑골문에서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유래가 오래된 종족으로 알려져 있고 지금 현재에도 저(氐)족이 남아있다.족명으로 볼 때 융(戎)족보다 더 오래되었으며, 저족은 융족이 존재하기 이전에 그 계통이 서융계열로 상주(商周)시대에 국경을 유린하거나 아니면 중원에 신속하여 그 세력을 확장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TOTAL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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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북위 황실과 조정의 권력을 장악한 고구려 인
476년 고구려의 유력인사들이 대거 북위와 통교(通交)하면서 정착하여 살게 되었는데 그 중 고조(高肇)가 이와 같은 인물이었다. 고조(高肇)일가는 발해 고씨(撥海高氏)로 대대로 중원에 정착하여 살았던 완벽한 한족일가였다. 고조의 5세조인 고고(高苦)는 4세기 초 서진이 멸망할 무렵 난리를 피해 고구려로 갔다. 고고의 가문은 고구…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391
89. 북주와 고구려의 외교관계
북주와 고구려간의 외교적 부분의 대외관계에서는 고구려가 먼저 서위 시절인 546년에 외교 및 교역사절을 보냈다. 그리고는 서로간의 큰 교류가 없었다. 그것은 고구려는 원래 북제와 영토와 국경을 마주했기 때문이고, 동위와 북제를 세웠다고 할 수 있는 고환이 고구려계이기 때문이다.* 북주가 세워진 이후 고구려와 북주의 관계 기…
Name: 정길선  |  Date: 2017-05-31  |  Hit: 391
88. 단 선비의 상세한 연구 개요 설명
앞서 단 선비에 대한 서술은 단 선비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단석괴의 탄생신화에 주로 역점을 두었다. 그리고 단석괴는 15~16세에 용맹함과 지략, 부족을 이끌 수 있는 역량을 두루 갖춘 뒤 단 선비의 지도자가 되어 선비의 씨족 전체를 통솔하게 되었다. 단석괴는 몽골고원과 장성 이북, 멀리는 중앙아시아에까지 세력을 확대하여 거대…
Name: 정길선  |  Date: 2017-05-18  |  Hit: 389
   87. 오키나와에는 요나구니지마해저유적(与那国新島海底遺跡)_관련 동…
The mystery of Yonaguni underwater structure01 Was This Japan's Atlantis?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1-03  |  Hit: 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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