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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gs.jpg  정길선  북방유라시아 유목사 산책
 
  고구려의 요동 침공과 모용외의 대응
  
   작성자 : 정길선
작성일 : 2017-05-20     조회 : 333  

모용외의 차남인 모용황(慕容皝)이 각 제후들과 귀족 자제들을 이끌고 속수(束脩)하여 수업(受業)하고 모용외가 정무를 보다 틈이 있으면 친히 유학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이렇게 모용외가 다스리는 요동지역은 비교적 평안했으며 학문으로는 유학적인 부분을 받아들임으로써 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강력한 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다.


당시 평주자사(平州刺史) 동이교위(東夷校尉) 최비(崔毖)는 남주(南州) 선비 부족들 사이에서 신망이 있었다. 최비는 한족의 유민들까지 품어서 모을 뜻을 지니고 있었으나 유랑민들 중 최비에게로 오는 자가 없었다. 최비는 모용외가 유랑민들을 억류한 탓이라 생각하고는 이에 고구려(高句麗)와 우문(宇文), 단 선비(段鮮卑) 등과 은밀히 연결해 모용외를 쳐서 멸하고 그의 땅을 나누어가지자 제안했다.


319년 초, 고구려, 우문, 단 선비가 이에 동의했고 곧 군사를 일으켜 모용외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수도인 극성(棘城)을 포위하자 모용외는 성문을 닫고 싸우지 않고는 이간책을 써서 세 나라를 분열시키고자 하였다. 이리하여 사자를 보내 우문(宇文)의 군사들에 술과 고기를 주고 부족의 군사들에게 “최비(崔毖)의 사자가 모용선비에도 왔었다.”라고 전달했다. 모용외의 사자가 우문선비의 군영을 방문했다는 것을 안 고구려와 단 선비는 우문선비가 모용외와 내통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그리고 군을 물려 돌아갔고 우문선비의 우문실독관(宇文悉獨官)은 모용선비를 단독으로 공격하고자 하였다.


모용외는 아들인 모용황에게 군사를 주어 북문을 열고 우문선비의 뒤쪽으로 돌아서 역습하기로 하였고 모용외는 정면에서 우문선비를 공격하니 양쪽의 포위망에 갇힌 우문선비의 군사들은 대패하였다. 우문실독관은 간신히 몸을 피했으나 일족들은 모두 붙잡혔다. 그리고 곧바로 모용외는 우문선비의 영토로 진격하여 우문선비 부족들을 제압하고 황제(皇帝)의 옥새(玉璽)를 노획하고는 이를 장사(長史) 배억(裴嶷)을 시켜 건업(建鄴)으로 보냈다.


최비(崔毖)는 모용외가 자신에게 원한을 가질까 두려워하여 조카 최도(崔燾)를 모용외에게 보내 거짓으로 승전을 축하했다. 때 마침 세 나라의 사자들 또한 모용외에게 이르러 화친을 청하며, “우리의 본의가 아니고, 최평주(崔平州)가 공격하도록 제안하였다.”라고 하였다. 모용외가 최도를 데리고 공격하며 포위한 곳을 보여주고는 군사들로 하여금 포위하도록 하고는 그에게 말했다.


“너희 숙부(叔父)가 나를 멸하라고 세 나라에 제안을 해놓고는, 어찌 속임수를 쓰며 내게 와서는 축하하는가?”


그러자 최도가 두려워하며 자백했다. 그러자 모용외는 최도를 보내주며 돌아가서 최비에게 전하라 하며 말했다, “항복하는 것이 상책이고 달아나는 것이 하책이다.” 뒤이어 군대를 보내어 최비를 추격하자 최비는 가족들을 버린 채 수 십명의 기병과 함께 고구려로 달아났다. 모용외는 최비의 군병들을 모두 항복시키고 최도와 고첨(高瞻) 등을 극성(棘城)으로 이주시키고는 빈객으로 예우했다. (『진서(晉書)』, 卷 百八,「載記」,第八,<慕容廆傳>. [본문] 時平州刺史·東夷校尉崔毖自以爲南州士望, 意存懷集, 而流亡者莫有赴之. 毖意廆拘留, 乃陰結高句麗及宇文·段國等, 謀滅廆以分其地. 太興 初, 三國伐廆, 廆曰:「彼信崔毖虛說, 邀一時之利, 烏合而來耳. 旣無統一, 莫相歸伏, 吾今破之必矣. 然彼軍初合, 其鋒甚銳, 幸我速戰. 若逆擊之, 落其計矣. 靖以待之, 必懷疑貳, 迭相猜防. 一則疑吾與毖譎而覆之, 二則自疑三國之中與吾有韓 魏之謀者, 待其人情沮惑, 然後取之必矣.」 於是三國攻棘城, 廆閉門不戰, 遣使送牛酒以犒宇文, 大言於衆曰:「崔毖昨有使至.」於是二國果疑宇文同於廆也, 引兵而歸. 宇文悉獨官曰:「二國雖歸, 吾當獨兼其國, 何用人爲!」 盡衆逼城, 連營三十里. 廆簡銳士配皝, 推鋒於前, 翰領精騎爲奇兵, 從旁出, 直衝其營, 廆方陣而進. 悉獨官自恃其衆, 不設備, 見廆軍之至, 方率兵距之. 前鋒始交, 翰已入其營, 縱火焚之, 其衆皆震擾, 不知所爲, 遂大敗, 悉獨官僅以身免, 盡俘其衆. 於其營候獲皇帝玉璽三紐, 遣長史裴嶷送于建鄴. 崔毖懼廆之仇己也, 使兄子燾僞賀廆. 會三國使亦至請和, 曰:「非我本意也, 崔平州敎我耳.」 廆將燾示以攻圍之處, 臨之以兵, 曰:「汝叔父敎三國滅我, 何以詐來賀我乎?」 燾懼, 首服. 廆乃遣燾歸說毖曰:「降者上策, 走者下策也.」 以兵隨之. 毖與數十騎棄家室奔于高句麗, 廆悉降其衆, 徙燾及高瞻等于棘城, 待以賓禮. )


이후 모용외의 아들인 모용인(慕容仁)이 고구려의 하성(河城)을 공격하여 성주인 여노(如孥)가 모용외의 부장인 장통(張統)에게 사로잡혔다. 그리고 천 여명의 무리들이 모용선비군의 포로가 되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미천왕은 자주 병사를 보내 요동을 침공하였다. 모용외는 모용한(慕容翰)과 모용인(慕容仁)을 보내 고구려를 공격하게 하였는데 미천왕이 구원군을 보내어 역습하자 패하여 돌아갔다.


320년 고구려가 요동(遼東)을 또다시 침범하자 모용외가 군사를 보내 이를 공격해 격파했다.고구려는 이후 미천왕이 죽을 때까지 모용선비를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였다.이것은 여러 차례 군사적 공격을 감행하였으나 큰 소득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반면 모용선비는 이러한 위기 상황을 잘 넘기며 하북성과 산동성 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 『진서(晉書)』, 卷 六,「원제기(元帝紀)」에서는 “태흥 2년(319년) 12월] 선비족 모용외가 요동을 습격하자 동이교위, 평주자사 최비(崔毖)가 고구려로 달아났다”(鮮卑慕容廆襲遼東, 東夷校尉, 平州刺史崔毖奔高句驪.)고 하고 “태흥 3년(320년) 3월, 모용외가 옥새 삼뉴를 봉송했다.”(三月, 慕容廆奉送玉璽三紐.)고 하였다. 최비가 고구려로 달아난 시점이 319년 12월이므로 위 문헌에 나오는 이전 사건들은 모두 319년 12월 이전이나 새해 무렵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권17 (고구려 미천왕 20년)에서도 같은 해, 같은 달로 수록되어 있고,『자치통감(資治通鑑)』권91 진기13에서는 이 사건들을 모두 동진 원제 태흥2년(319년) 12월 조에 수록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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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녕문화공정에서 극성을 복원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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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성과 용성 부근의 지도

 

 
 
TOTAL 170
44. 전연의 전성기와 모용각의 활약
353년 동진의 영삭장군(寧朔將軍) 영호(榮胡)가 팽성(彭城)과 노군(魯郡)을 들어 동진에 반역하고 모용준에게 항복했다. 모용준은 이를 받아들여 팽성태수로 봉하여 변경을 방어하도록 하였다. 상산(常山) 사람인 이독(李犢)이 수천명 무리를 모아 보벽루(普壁壘)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모용준이 모용각(慕容恪)을 보내 군대를 이끌고 이를…
Name: 정길선  |  Date: 2017-05-23  |  Hit: 373
43. 모용준, 전연의 황제로 즉위하다.
352년 단 선비의 단근(段勤)이 당초 모용준에게 귀부했었다가 그 뒤에 다시 반기를 들었다. 모용준이 모용각(慕容恪)과 상국(相國) 봉혁(封弈)을 보내 안희(安喜)에서 염민(冉閔)을 치고, 모용수(慕容垂)는 역막(繹幕)에서 단근(段勤)을 치고, 모용준은 중산(中山)으로 가서 모용각과 봉혁의 군대를 위하여 미리 주둔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
Name: 정길선  |  Date: 2017-05-23  |  Hit: 323
42. 모용준의 즉위와 염민, 염위의 멸망
모용준(慕容儁)은 자(字)가 선영(宣英)이고 모용황(慕容皝)의 차남이다. 당초 모용준의 조부인 모용외(慕容廆)가 늘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내가 복(福)과 인(仁)을 쌓았으니 내 자손이 마땅히 중원(中原)을 차지할 것이다.” 얼마 뒤에 모용준을 낳자 모용외가 말했다, “이 아이의 골상(骨相)이 범상치 않으니 우리 가문이 마땅한 후계…
Name: 정길선  |  Date: 2017-05-23  |  Hit: 341
41. 전연, 부여와의 전쟁과 모용황의 죽음
모용황은 학문적인 부분과 인재 양성을 동시에 진행했는데 이는 초기의 과거제도를 창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모용황은 인재를 양성하는 방식으로 대신(大臣)의 자제(子弟)들 중 관학생(官學生)이 된 자에게 고문생(高門生)이라는 칭호를 하사했다. 그리고 학문의 진흥을 위해 옛 궁에 학교를 세워 활을 쏘고 수련하면서 공부 하는 곳으…
Name: 정길선  |  Date: 2017-05-23  |  Hit: 304
40. 동진(東晉) 조정, 모용황의 전연을 북방의 패자로 인정하다.
343년 전연은 우문귀(宇文歸)가 국상(國相) 막천혼(莫淺渾)을 보내 모용황을 공격하니 제장들이 맞서 싸울 것을 청했으나 모용황은 허락하지 않았다. 막천혼은 모용황이 자신을 두려워한다고 여겨 전혀 방비하지 않았다. 이 때 모용황은 모용한(慕容翰)과 기병들을 보내 막천혼의 군사들을 치게 하니 막천혼(莫淺渾)이 대패하여 혼자 화…
Name: 정길선  |  Date: 2017-05-22  |  Hit: 327
39. 모용황과 고구려의 전쟁 - 고구려의 치욕
339년, 모용황이 고구려를 공격하여 신성에 이르렀다. 전연의 군대가 막강하여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화의를 청하자 다시 회군하여 돌아왔다. 340년에는 고국원왕이 태자를 모용황에게 보내 입조하게 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卷第 十八,「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第 六, <故國原王> [본문] 九年, 燕王皝來侵, 兵及新城…
Name: 정길선  |  Date: 2017-05-22  |  Hit: 312
38. 모용황, 단 선비 - 후조(後趙) 석계룡과의 전쟁
모용황은 단요(段遼)가 여러 차례 변경을 공격하여 피해를 주자 장군 송회(宋回)를 후조(後趙)의 석계룡(石季龍)*에게 보내 함께 단요를 공격할 군대를 요청했다. 이에 석계룡이 군대를 총괄하여 진격하고, 모용황도 군사를 이끌고 단요의 도읍인 영지(令支) 이북의 여러 성들을 공격했다. 단요가 장수 단란(段蘭)을 보내 항거하니 이를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2  |  Hit: 352
37. 모용황의 모용인, 단 선비 공략과 전연 (前燕)의 건국
모용황이 바다를 건너 모용인을 치려 하자 많은 신하들이 간언하며 ‘바닷길은 위태롭고 험하니 의당 뭍길(陸路)로 쳐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자 모용황이 말했다. “예전에는 바닷물이 얼지 않았는데 모용인이 반란을 일으킨 이래로 세 번이나 얼어붙었다. 옛날 후한 광무제(光武帝)가 얼어붙은 호타수(滹沱水)를 건너 대업을 이…
Name: 정길선  |  Date: 2017-05-22  |  Hit: 330
36. 모용황의 요동 경략
평주 요동국 양평현의 현령 왕빙(王冰), 장군 손기(孫機)가 요동(遼東)으로써 모용황에게 반기를 드니 동이교위(東夷校尉) 봉추(封抽), 호군(護軍) 을일(乙逸), 요동상(遼東相)* 한교(韓矯), 현도태수(玄菟太守) 고후(高詡) 등은 성을 버리고 달아났고 이들은 모용황에게 돌아갔다. * 요동상(遼東相)은 요동국의 상相. 모용외가 요동공…
Name: 정길선  |  Date: 2017-05-22  |  Hit: 713
35. 모용인의 반란과 모용황의 토벌
333년 5월에 모용황이 요동공의 지위를 이었고 평북장군(平北將軍) 대행이자 평주자사(平州刺史)가 되어 부(部) 내부를 장악했다. 같은 해 우문걸득귀(宇文乞得龜)가 그의 별부(別部) 일두귀(逸豆歸)에 의해 축출되어 도망치다가 객사했다. 이에 모용황은 일두귀의 행위를 용납하지 못한다고 하여 본격적으로 거병하였다. 모용황이 기병…
Name: 정길선  |  Date: 2017-05-20  |  Hit: 312
34. 모용외의 중원 공략과 모용황의 등장
배억(裴嶷)이 건업(建鄴)으로부터 돌아올 때 동진에서 사자를 보내 모용외를 감평주제군사(監平州諸軍事), 안북장군(安北將軍), 평주자사(平州刺史)로 임명하고 식읍을 2천 호(戶) 늘려주었다. 321년에는 동진에서 모용외에 사신을 보내 사지절(使持節), 도독유주동이제군사(都督幽州東夷諸軍事), 거기장군(車騎將軍), 평주목(平州牧…
Name: 정길선  |  Date: 2017-05-20  |  Hit: 318
33. 고구려의 요동 침공과 모용외의 대응
모용외의 차남인 모용황(慕容皝)이 각 제후들과 귀족 자제들을 이끌고 속수(束脩)하여 수업(受業)하고 모용외가 정무를 보다 틈이 있으면 친히 유학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이렇게 모용외가 다스리는 요동지역은 비교적 평안했으며 학문으로는 유학적인 부분을 받아들임으로써 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강력한 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다.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0  |  Hit: 334
32. 고구려의 미천왕과 모용외, 모용선비의 완전한 하북성 정착
309년, 고구려 미천왕은 장수를 보내어 요동의 서안평(西安平)을 쳐서 함락시키고, 315년에는 현도성(玄菟城)을 함락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卷第 十七,「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第 五, <美川王> [본문] 十二年, 秋八月, 遣將襲取遼東西安平...(중략)...十六年, 春二月, 攻破玄菟城, 殺獲甚衆. ) 그리고 이를 지키기 위해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0  |  Hit: 285
31. 모용외와 고구려의 격돌
고구려는 관구검의 침입 이후 동산(東山)에서 재기하여, 현도(玄菟) · 요동(遼東)을 다시 침략하였다. 무제 때에 소요수(小遼水)로 침입하여, 신성(新城)을 점령하였고, 또 대량수(大梁水)상류로 침입하여, 양맥(梁貊)을 통치하였다. 294년에 모용외는 군사를 이끌고 다시 고구려를 침공하여, 신성(新城)을 포위하자, 신성(新城)의 재북부(…
Name: 정길선  |  Date: 2017-05-20  |  Hit: 342
30. 모용선비와 부여의 전쟁
모용외는 우문선비를 공격하여 제압하기 위해 진나라에 사자를 보내 공격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했으나 진나라의 무제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모용외는 이에 분노하여 우문선비를 제압하고 진나라를 공격했다. 진나라의 낙양으로 향하는 지역인 요서(遼西)를 침입하여 여러 성들을 약탈하고 진나라 백성들을 사로잡아 갔다. 그러…
Name: 정길선  |  Date: 2017-05-20  |  Hit: 266
29. 모용선비의 등장과 모용외 신화
위나라가 모용선비에게 요동을 내주었다는 것은 위나라 입장에서 피해는 최소한으로 하고 고구려, 부여와의 전쟁을 통해 모용선비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 그리고 모용선비를 동북지역의 방패막이로 삼아 고구려와 부여를 견제하는 것도 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전략적 행위에 분노한 고구려는 요동의 서안평(西安平)을 공격하면서…
Name: 정길선  |  Date: 2017-05-20  |  Hit: 280
28. 모용선비에 대해 종합적 연구 개요
모용선비는 고구려 역사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5호 16국 시대에 세워진 선비 국가 중 가장 강한 국가는 탁발선비의 북위이지만 5호의 시대적 구분을 보았을 때 초기와 중기는 모용선비의 전연, 후연 시대, 후기는 탁발선비의 북위 시대로 구분되고 있다. 문화적으로도 하북성, 산동성 지역에는 모용선비가 강력한 국가로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0  |  Hit: 259
27. 남량(南凉)의 멸망과 독발선비의 후예, 티베트로 이주하여 토번을 …
독발이녹고 사후, 독발녹단이 즉위하여 남량을 통치했다. 아버지는 독발사복건이고 독발오고(禿髮烏孤), 독발이녹고(禿髮利鹿孤)의 동생이다. 남량은 세습 없이 형제상속으로 제위를 이어갔다. 이것은 독발사복건이 독발녹단의 재능을 높이 사서 후계자로 삼고 싶어 하였고, 독발오고와 독발이녹고는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따라 형제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0  |  Hit: 324
26. 독발선비가 세운 남량(南凉)
독발선비는 걸복씨와 같이 중원 북서쪽, 하서(河西)지역에 근거했던 부족이었다. 이들은 원래 독발씨라고 하는 씨족으로 분류되었으나 점차 씨족민이 늘어가면서 부족으로 탈바꿈 한 것으로 보인다. 주로 하서 양주(凉州)를 거점으로 하였으며 기존에 세력을 이루었던 걸복선비와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그러나 중원의 혼란기 시대를…
Name: 정길선  |  Date: 2017-05-20  |  Hit: 286
25. 걸복선비, 서진(西秦)의 멸망과 마무리
걸복치반의 뒤를 이은 걸복모말(乞伏暮末)은 즉위하자마자 북량의 침입을 받았다. 북량은 끊임없이 서진을 공격했으며 그것은 북쪽의 위협인 서진을 정복해야 북위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북량의 침략으로 서진 정권은 영토를 조금씩 잃어갔고 농서 지역과 산서성에 쥐었던 패권마저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
Name: 정길선  |  Date: 2017-05-19  |  Hit: 321
24. 걸복선비의 전성기, 걸복건귀, 걸복치반이 중국 서부 지역의 맹주가…
걸복건귀는 서성(西城)으로 천도하여 세력을 토욕혼 지역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저족이 세운 후량(後凉)이 존재했고 오히려 후량의 역습을 받아 대패했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후량은 397년 금성(金城)을 함락시키고 서진의 동쪽 국경 지대를 유린했다. 그러나 이 때 패배로 인해 서진의 세력은 급속도로 약화되었고 이러한 세…
Name: 정길선  |  Date: 2017-05-19  |  Hit: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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