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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548338121.jpg  조홍근  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조선(朝鮮) 제25대 솔나 단군의 역사1
  
   작성자 : 배달문화원
작성일 : 2022-08-08     조회 : 748  



조홍근  

40여년 족보·역사 연구

[저서] 마고할미로부터 7만년/홍익인간 7만년 역사/천부경 인간완성-제1부 천부경과 음양오행 ·역원리 이해 등 

<고조선 문자> 검증역 · 허대동 저. 이민화 감수 / 공학사·법학사·언론학사·인문학사(중문학·영문학·국문학)

참한역사신문 감사 / 씨알문화축제 조직위원회 밝달장 / 한국성씨총연합회 자문위원 / 민족회의 대표 / 역사광복군 총사령 / 개천절 세계평화 축제 조직 위원회 대표 / 단수학회 이사 / 한뿌리사랑세계모임 자문위원 / 한문화사업총단(해달별아리랑.천부역사태학원) 대표 

[조선(朝鮮) 제25대 솔나(率那) 천왕(天王)의 역사]  

천단가(天壇歌) 

서기전1130년 신미년(辛未年)에 번한(番韓) 임나(任那)가 솔나 천왕의 조서(詔書)로써 천단(天壇)을 동쪽 교외에 설치하고 삼신(三神)께 제사를 지냈다. 무리들이 둥글게 모여 북을 치며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정성으로 천단을 쌓고 삼신께 축수하세!

(精誠乙奴 天壇築爲古 三神主其 祝壽爲世)

황운을 축수함이며 만만세로다!

(皇運乙 祝壽爲未於 萬萬歲魯多)

만인을 돌아봄이며 풍년을 즐거워하도다!

(萬民乙 睹羅保美御 豊年乙 叱居越爲度多)


위 천단(天壇)은 삼신(三神) 제천단(祭天壇)으로서, 번한(番韓) 임나(任那)가 솔나 천왕의 명(命)을 받아 마한의 수도인 백아강의 동쪽 교외에 설치한 것이다.  

둥글게 모여 북을 치며 노래하는 형태는 이미 서기전3897년 이전의 한국(桓國)시대부터 있어온 태백환무가(太白環舞歌)와 일맥상통한데, 이러한 노래가 있었던 것을 보면 태평시대였던 것이 된다. 

위 노래의 가사가 한자(漢字)와 이두식 한자로 기록되고 있는데, 만약 말투가 위와 같았다라면 서기전1130년경의 단군조선의 언어는 지금의 한국어 언어형식과 다름없는 것이 되는데, 구전(口傳)되던 노래가 기록되었던 것을 다시 조선시대 이맥(李陌) 선생이 번한세가(番韓世家)를 편찬할 때 서기1520년경의 말투로 기록하였을 여지는 있겠다.   


[조선(朝鮮) 제25대 솔나(率那) 천왕(天王)의 역사]  

은(殷)나라 멸망과 주(周)나라 건국 

은(殷)나라 왕 주(紂)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많이 하여 서기전1122년 기묘년(己卯年)에 주(周)나라 무왕(武王) 희발(姬發)에게 망하였다.  

은나라는 서기전1766년에 단군조선의 군사적 후원을 받아, 단군조선 선인(仙人) 유위자(有爲子)의 제자(弟子)였던 이윤(伊尹)을 재상으로 삼은 성탕(成湯)이 박(亳)을 수도로 하여 건국하였으며, 단군조선의 지방 제후국에 해당하는 천자국(天子國)으로 출발하였으나, 하(夏)나라의 제도(制度)를 답습함으로써 독자적 왕국으로 점점 이탈을 하게 되었는데, 다만, 단군조선 삼한(三韓)에 대하여는 조공(朝貢)의 예를 행하였다. 

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紂)는 포악한 정치를 하며 달기(妲己)라는 여자에 빠져 하(夏)나라 마지막 걸왕(桀王)처럼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에 지냈는데, 주왕(紂王)의 숙부(叔父)인 기자(箕子)와 비간(比干)과 서형(庶兄) 미자(微子)가 자주 간(諫)하였으나 들은 체도 하지 않아, 미자(微子)는 주왕(紂王)을 떠나 버렸다. 

또, 비간은 주왕(紂王)이 가슴을 칼로 도려내어 무참하게 살해당하였으며, 기자는 미친 사람 행세를 하고 숨어 살았으나 결국 주왕에게 붙들고 말았다. 이에 은나라 태사(太師)는 예약(禮樂)과 제사(祭祀)만이라도 보존하려고 악기(樂器)와 제기(祭器)를 가지고 주(周)나라로 달아났다.

이후 주(周)나라 제후인 창(昌)과 구후(九侯)와 악후(鄂侯)가 주왕(紂王)의 삼공(三公)이 되었는데, 주왕이 간(諫)하던 구후를 죽이고 또 악후도 죽여서 시체를 마른 고기로 만들었던 것이며, 이에 주후(周侯) 창(昌)은 주왕(紂王)의 무도함을 탄식하였고, 주왕(紂王)은 이를 듣고 창(昌)을 감옥에 가두었던 것인데, 창(昌)의 신하 산의생(散宜生)이 미녀와 진기한 보배를 구하여 주왕(紂王)에게 바치자 이에 창(昌)을 놓아 주었던 것이다. 

주왕(紂王)은 창(昌)을 서백(西伯)으로 임명하였으며, 이에 창(昌)은 고향인 주(周)나라로 돌아와 덕을 닦았고, 많은 제후들이 서백 창에게 귀복하였던 것이며, 창이 죽고 아들 발(發)이 대를 이어 서백(西伯)이 되어 제후를 이끌고 주왕(紂王)을 쳤는데, 이때 주왕(紂王)은 보석으로 수놓은 옷을 입은 채 불속에 뛰어들어 자살함으로써 은나라는 제30대 644년간 존속하다 망하였던 것이다.

처음 주나라는 은나라의 조그만 제후국에 지나지 않았으나, 창(昌)이 서백(西伯)에 임명되어 덕을 닦자 제후들이 모여들었고, 산동지역의 동해(東海) 출신인 강태공(姜太公)의 보좌로 천하통일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대를 이은 발(發)이 서백이 되어 상중(喪中)에도 은나라 정벌을 시도하였다. 

이때 고죽국 출신의 백이와 숙제가 충효에 관하여 간하였는데, 좌우의 신하들이 백이숙제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강태공이 의사(義士)라 하며 호위하는 사람을 붙여 물러가게 하였다. 이리하여 주(周)나라 시조 무왕(武王)이 된 발(發)이 은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천하(天下)의 왕(王), 천자(天子)가 되었던 것이다.  

주무왕(周武王)은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실현하는 차원에서 은나라 왕족을 몰살시키지 아니하였으며, 천하를 주(周)나라에 귀속하게 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는데, 은왕족 기자(箕子)에게 천하를 다스리는 가르침을 청하였고 이에 기자는 주무왕에게 홍범구주(洪範九疇)를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자는 더 이상 주나라의 신하가 되기를 거절하고 태원 북쪽이자 태항산맥 서쪽 지역으로서 서화(西華)라고 불리게 되는 단군조선 영역으로 망명하였던 것이다. 

이후 기자국(箕子國)은 단군조선의 기후국(箕侯國)으로서 수유(須臾)라고도 불리는데, 천자국(天子國)인 주(周)나라의 북쪽, 천군국(天君國)인 구려국(句麗國)의 서남쪽, 천군국(天君國)인 고죽국(孤竹國)의 서쪽에 위치한 나라가 되는 것이며, 서기전650년경 이후에는 주류(主流)가 동쪽으로 이동하여 번한(番韓) 지역에서 읍차(邑借)로 활동하다가 서기전323년에 읍차 기후(箕詡)가 번조선왕(番朝鮮王)이 되었으며, 방계(傍系)는 남하(南下)하여 연(燕)나라와 조(趙)나라 사이에 선우중산국(鮮于中山國)을 세우고 서기전296년경에 조나라 무령왕(武寧王)에게 망하게 된다. 

한편, 주무왕은 은나라 주왕(紂王)의 서형(庶兄)인 미자(微子)를 송(宋)나라에 봉하였으며, 또 주왕(紂王)의 아들인 무경(武庚)을 은나라 후계자로서 녹보(祿父)로 봉하였는데, 무왕(武王) 다음의 성왕(成王) 시대에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무경을 받들어 모반(謀叛)을 일으켰는 바, 이를 삼감(三監)의 난(亂)이라고 한다. 즉 주나라 초기에는 은나라의 잔재세력(殘在勢力)도 남아 있어 정세(政勢)가 혼란하였던 것이 된다. 

주무왕(周武王)은,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서기전2436-서기전2366)의 아들인 후직(后稷)으로 불리는 기(棄)의 후손이 되는데, 서기전1134년에 서백(西伯)이 되어 서기전1122년까지 12년간 다스렸으며, 서기전1122년에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서기전1116년에 사망하여 주(周)나라 왕으로 7년 재위하여, 합 19년이 된다. 

주(周)나라 또한 천자국(天子國)으로서 형식적으로는 물론 실질적으로도 상국(上國)으로서 천왕국(天王國)인 단군조선의 천하(天下)인 지방(地方)의 제후국(諸侯國)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서기전1122년경 숙신(肅愼)이 주(周)나라에 석궁(石弓) 등 조공(朝貢)을 바쳤다는 고대중국측의 기록은, 단군조선의 제후국(諸侯國)인 숙신국(肅愼國) 또는 전기 단군조선의 수도였던 아사달이 숙신국(肅愼國)의 영역에 속한 까닭으로 단군조선을 숙신으로 대칭(代稱)한 것이라면 단군조선 조정(朝廷)에서, 사신(使臣)을 보내어 주무왕의 즉위를 축하(祝賀)하며 천자(天子)로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을 왜곡한 것이 될 것이다.


[조선(朝鮮) 제25대 솔나(率那) 천왕(天王)의 역사]  

은나라 왕족 기자(箕子)의 망명 

서기전1120년 신사년(辛巳年)에 자서여(子胥餘)가 거처를 태행산맥(太行山脈)의 서북의 땅으로 피하여 가니 막조선(莫朝鮮)이 이를 듣고 모든 주(州)와 군(郡)을 샅샅이 조사하더니 열병(閱兵)을 하고 돌아왔다.  

자서여(子胥餘)는 기자(箕子)의 성명으로서 성씨가 자씨(子氏)이며, 서여(胥餘)는 그의 이름이다. 기자(箕子)는 기(箕)라는 땅에 봉해진 자작(子爵)을 가리킨다. 즉 기(箕)라는 땅에 봉해진 시조(始祖)가 자서여(子胥餘)로서 은(殷)나라의 자작인 것이다.  

기자(箕子)는 은나라 마지막 30대왕인 주(紂)의 숙부(叔父)이다. 주왕(紂王)은 이름을 수(受)라고도 하며 중국측 기록에서는 호(號)를 제신(帝辛)이라고도 한다. 고대중국의 역사기록에서 진한(秦漢) 시대 이전에 제(帝)로 붙여진 왕은 은나라의 29대왕인 제을(帝乙)과 제30대왕인 제신(帝辛)이 있는데, 왕(王)을 봉(封)하는 자리인 제(帝)의 의미와는 달리 은나라의 제을과 제신은 폭군(暴君)을 연상하게 한다.  

하(夏)나라의 왕은 통상 후(后)라 하고 은(殷)나라와 주(周)나라는 왕(王)이라 하는데 특히 주나라 천자(天子)는 무왕(武王), 성왕(成王) 등 모두 왕(王)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태행산맥(太行山脈)은 고죽국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기자(箕子)가 주나라 무왕(武王)의 요청으로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도(道)로서 홍범구주(洪範九疇)를 가르쳐 주었으나, 끝내 주무왕(周武王)의 신하(臣下)가 되기를 거절하고 패잔병 5,000명을 이끌고서 태행산맥 서북의 땅으로 피하여 소위 서화(西華)라는 땅에 정착하였던 것이다.  

막조선(莫朝鮮)은 마조선(馬朝鮮)을 나타낸 다른 표기가 되는데, 마조선의 임금인 마한(馬韓) 아도(阿闍)가 은나라 망명객인 기자(箕子)가 태행산맥 서북의 땅으로 피하여 간다는 소식을 듣고서, 모든 주(州)와 군(郡)을 샅샅이 조사하더니 열병(閱兵)을 하고 돌아왔다는 것인데, 막조선이 번조선(番朝鮮)의 오기(誤記)가 아니라면, 마한 아도가 혹시라도 기자의 소행으로 마조선 즉 마한 땅에 무슨 변고라도 일어날까 염려하여 마조선(馬朝鮮)의 각 지역을 순수하고 열병(閱兵)을 함으로써 사전(事前) 단속(團束)하였던 것이 된다. 

이때 번조선(番朝鮮)의 임금인 번한(番韓)은 임나(任那)인데, 기자(箕子)가 태행산맥의 서북 땅으로 피하여 가는 것을 번한(番韓)이 조사하였을 만한 사건이라고 보이는 바, 당연히 번한(番韓)이 마한(馬韓)보다도 기자(箕子)의 소행(所行)을 철저히 감시(監視)하였던 것이 될 것이다. 


서기전1122년에 은나라가 주무왕에게 망하고, 이에 주무왕이 기자(箕子)를 석방하여 홍범구주(洪範九疇)의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 되며, 기자는 주나라의 신하가 되기를 거절하고 서기전1120년에 끝내 주무왕(周武王)을 피하여 군사 5,000을 이끌고서 북쪽으로 단군조선 직할영역이 되는 태행산맥 서북의 땅으로 망명(亡命)하였던 것이 된다.  

기자(箕子)가 망명한 지역은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인 구려국(句麗國)의 서남방(西南方)이자 고죽국(孤竹國)의 서방(西方)이며, 흉노(匈奴)지역의 동방(東方)에 위치하고 태원(太原)의 북방이 된다. 이를 소위 서화(西華)라 하는데, 원래의 서화는 처음 기자(箕子)가 자작(子爵)으로 봉해진 기(箕)라는 땅으로서 황하(黃河) 유역의 개봉부(開封府)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이때 기자(箕子)가 군사 5,000명을 이끌고 옮겨와 정착함으로써 이미 그 땅에 살고 있던 백성들이 터를 내주고 흩어지거나 동쪽으로 이동하였을 수도 있다고도 보인다. 5,000명이면 큰 읍(邑)을 이룰 만한 숫자가 된다. 

이후 기자국(箕子國)은 수유(須臾)이라 불리면서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서 서기전653년 제36대 매륵(買勒) 천왕(天王)이 파견한 군대와 연합으로 연(燕)나라를 정벌하기도 하였다. 수유(須臾)라는 말은 자서여(子胥餘)의 서여(胥餘)와 통하는 말이 된다.


[조선(朝鮮) 제25대 솔나(率那) 천왕(天王)의 역사]  

기자(箕子)의 은거(隱居) 

서기전1114년 정해년(丁亥年)에 기자(箕子)가 서화(西華)에 옮겨와 있으면서 인사를 받는 일도 사절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서화(西華)라는 땅은 태항산맥(太行山脈)의 서북쪽 지역을 가리키는데, 원래의 서화는 옛 기(箕)의 땅으로서 개봉부(開封府)의 서쪽 90리에 있었으며 이곳에 기자대(箕子臺)가 있다. 

기자(箕子)는 단군조선의 직할영역 안으로 망명함으로써 주(周)나라의 영향력을 벗어났던 것이고, 이후 단군조선에서 제후(諸侯)로 인정받은 것이 된다. 원래 은나라가 단군조선의 제후국에 해당하는 천자국(天子國)으로서 은나라가 왕족 자서여(子胥餘)를 기(箕)의 땅에 자작(子爵)으로 봉하였는데, 이는 천하왕이 봉한 제후로서 또한 상국(上國)인 단군조선으로부터도 제후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된다. 즉 기자는 단군조선으로 망명한 이후에는 단군조선의 직속 제후가 되는 것이다. 


기자(箕子)가 서화(西華)에 은거하였다는 것은, 자신이 이미 망한 은(殷)나라의 왕족이자 제후(諸侯)로서 주(周)나라의 신하가 되기를 거절하고 주나라 영역을 벗어난 땅에 망명(亡命)한 처지이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라고 보인다. 

그러나 이후 기자(箕子)는 단군조선의 문화제도를 접하면서 단군조선의 제후로서 활동하였던 것이 된다. 특히 기자는 사사(士師)였던 왕수긍(王受兢)에게 부탁하여 단군조선의 경전의 하나인 삼일신고(三一神誥)를 단목판에 새기게 하고서 읽었다라고 대진국(大震國, 발해) 제3대 문황제(文皇帝)가 대흥(大興) 3년인 서기739년 3월 15일에 지어 태백산(白頭山) 보본단(報本壇) 석실(石室)에 보관한 삼일신고봉장기(三一神誥奉藏記)에 전한다.


[조선(朝鮮) 제25대 솔나(率那) 천왕(天王)의 역사]  

기자(奇子)와 기자(箕子)는 다른 인물 

단기고사(檀奇古史)의 기(奇)는 소위 기자(奇子)의 기(奇)를 가리키는데, 서기전1286년경의 인물로 단군조선 제21대 소태 천왕 시절에 개사원(蓋斯原) 욕살(褥薩) 고등(高登)과 함께 은나라를 정벌한 장수(將帥) 즉 상장(上將) 서여(西余)와 동일인물이며 일명 서우여(徐于餘)라고도 불리는데, 해성(海城)의 욕살(褥薩)로 봉해졌다가 천왕의 종실(宗室)로서 서기전1286년에 소태 천왕으로부터 살수(薩水) 지역 100리를 하사받고 섭주(攝主)로 봉해져 기수(奇首)라고 불려진 인물이다.

즉, 기수(奇首)가 기자(奇子)로 불려진 것이 되는데, 땅 100리에 봉해지는 제후는 고대중국에서는 공후(公侯)에 해당하나 단군조선에서는 자작(子爵)에 해당한다고 보아 기자(奇子)로 불려진 것이 된다. 또는 자(子)를 일반적인 높임말로 사용하여 기수(奇首)를 기자(奇子)라 하였을 수도 있겠다.

고대중국의 왕제(王制)에서는 천자(天子) 즉 왕(王)은 밭(田)을 사방 천리(千里)를 가지며, 제후(諸侯)인 공후(公侯)는 사방 백리(百里)이고, 백(伯)은 사방 칠십리(七十里)이며, 자남(子男)은 사방 오십리(五十里)가 된다. 


이렇게 보면, 단군조선에서 기수(奇首)로 봉해진 한서여(桓西余, 徐于餘)는 땅 100리에 봉해졌으므로 고대중국의 자작(子爵)보다 두 단계나 높은 공후(公侯)에 해당하는 직위가 되는데, 이는 단군조선의 임금이 천하(天下) 왕(王)을 봉하는 천상(天上)의 왕인 천왕(天王) 즉 상제(上帝)이기 때문에 당연한 논리가 된다. 

은나라 왕족 기자(箕子)는 단군조선의 기자(奇子)보다 약 130년 이후가 되는 서기전1150년경에 기(箕) 땅에 봉해진 자작으로서 성명(姓名)이 자서여(子胥餘)이며, 사방 50리에 봉해진 제후가 된다.

즉 단군조선의 기수(奇首)인 서우여(徐于餘)는 단군조선의 기자(奇子)로서 고대중국의 작위(爵位)로 보면 은(殷)의 기자(箕子)보다 두 단계나 높은 공후(公侯)에 해당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은(殷)나라의 자작(子爵)이 되는 기자(箕子)를 단군조선의 자작(子爵)이 되는 기자(奇子)와 비교하거나 동일인물로 착각하는 것은 기자(奇子)를 모독하는 것이 될 것이다. 단군조선의 자작(子爵)은 천왕(天王)이 봉한 제후로서 천자격(天子格)이 되며, 고대중국의 천자(天子)와 동일격(同一格)이 되는 것이다.  

고대중국의 천자가 사방 천리(千里)를 가지고 대체적으로 약 15개 제후(諸侯)들이 사방 백리(百里)씩을 가졌다라고 한다면, 전체는 합 3,000리 정도 영역이 되는데, 이는 단군조선의 마한 땅과 엇비슷한 넓이가 되며, 아무리 넓어도 단군조선 전체로 보면 약 1/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된다. 특히 고대중국의 제후국으로 기록된 나라들이 원래는 단군조선의 제후국들이었다가 고대중국의 영향하에 놓일 때 그들의 제후국으로 둔갑시켜 놓은 경우가 많다. 


단군조선에서는 대국(大國)으로 마한(馬韓)과 번한(番韓)이 있고, 진한과 마한과 번한 관경내에 수많은 제후국을 두었는데, 큰 제후국으로 구려(句麗), 진번(眞番), 부여(扶餘), 남국(藍國), 청구(靑邱), 숙신(肅愼), 개마(蓋馬), 예(濊), 옥저(沃沮), 몽고리(蒙古里), 고죽(孤竹), 남선비(南鮮卑), 졸본(卒本), 비류(沸流), 엄(淹), 서(徐), 회(淮), 협야(陜野) 등 20여개국을 넘으며 조공국(朝貢國)까지 합하면 최소한 70여국이 넘었던 것이다.  

단군조선은 조공국과 지방장관인 욕살(褥薩)을 둔 큰 땅까지 모두 합하면 티벳고원에서 동쪽으로 동해(東海)에 이르는 동서 2만리 남북 5만리의 광대한 대제국으로서, 사방 3,000리 또는 5,000리에 해당하는 고대중국의 10배 이상 큰, 고대중국을 포함하면서, 바깥 경계가 없던 나라인 것이다.

숙신, 개마, 예, 옥저, 졸본, 엄, 서, 회, 협야 등의 제후국들이 소위 천자국(天子국)에 해당되며, 구려, 진번, 부여, 남국, 청구, 몽고리, 고죽, 남선비 등의 나라는 천군국(天君國)에 해당하게 된다. 당우하은주(唐虞夏殷周)의 고대중국은 단군조선의 제후격(諸侯格)에 해당하는 천자국(天子國)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서(徐)는 고대중국의 기록에서 서이(徐夷)라고도 하는데, 한때 사방 500리를 차지한 대국으로서 주(周)나라 천자국과 대적(對敵)하기도 하였다.

당우하은주(唐虞夏殷周)의 고대중국은, 단군조선의 비왕으로서 천왕격(天王格)인 마한(馬韓)과 번한(番韓)의 저 아래 작위가 되는, 천자(天子)가 다스리던 나라였다. 단군조선의 황제(皇制)로 보면, 천제(天帝), 천왕(天王), 한(韓)이 되는 천왕격 비왕(裨王), 이하 한(汗)이라 기록되는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순서가 된다.

천왕 이하는 일반적으로 한(韓), 한(汗)이라 기록되는데, 특히 고대중국의 천자(天子)와 비교할 때는 모두 그 작위에 천(天)자를 붙여야 마땅한 것이 작위가 된다. 즉 단군조선에서 봉해진 군공후백자남은 스스로 천군, 천공, 천후, 천백, 천자, 천남이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고대중국의 천자는 단군조선의 제후 중에서 끝에서 두 번째의 작위에 해당하는 낮은 작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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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 역사 1~5권_조홍근 저
홍익인간 7만년 역사 _ 1~5권 [韓·中·日 역사 연대기 중심 총망라]  조홍근 저 | 글모아 우리 한국은 반만년이 아닌, 단군조선 더 이전부터 시작된 7만년의 역사다! 이 책은 우리 역사를 72399년이라 밝히고 있다. 서기전 70378년 계해년부터 마고(麻姑) 한국 63182년, 한국(桓國) 3301년, 배달나라(檀國) 1565년, 단군조선(檀君朝鮮…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1-12-23  |  Hit: 998
조홍근 필자의 보다 자세한 프로필
조 홍 근 한문화재단 사무총장, 홍익정치 연구원 부원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7-07-10  |  Hit: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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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태백의 홍익인간 7만년 역사<64> 하나라 정벌... 중국의 역사 날조마한이 상춘 구월산 삼신제를 돕다... 마고할머니~단군천왕 '三一神'사상[하(夏) 나라 정벌]서기전2119년 임인년(壬寅年)에 하주(夏主) 상(相)이 덕(德)을 잃어버리니, 천왕이 식달(息達)에게 명하여 남(藍), 진(眞), 변(弁)의 삼부(三部)의 병력(兵力)을 이끌고 가서 이…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1-02-07  |  Hit: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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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태백의 홍익인간 7만년 역사<63> 神書, 夏나라로 건너가다朝野의 구별을 글로 새긴 石文... 서기2131년 배 만드는 조선소 설치[하(夏)나라로 건너간 신서(神書)]서기전2133년 무자년(戊子年) 가을 8월에 하(夏) 나라 사람이 특산물을 바치고 신서(神書)를 구해 갔다.고대중국의 역사에서 하(夏) 나라는, 단군조선의 천자국(天子國)인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1-02-07  |  Hit: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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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태백의 홍익인간 7만년 역사<62> 오사달을 몽고리한으로 봉하다단군조선의 3대 특산물=인삼, 잣, 옥... 서기전 2133년 주조화폐 발행-조선(朝鮮) 제4대 오사구(烏斯丘) 천왕(天王)의 역사 -[몽골의 시조, 오사달(烏斯達)]서기전2137년 갑신년(甲申年)에 천왕의 아우 오사달을 몽고리한(蒙古里汗)으로 봉하였다. 몽고족이 그 후손이라고…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1-02-07  |  Hit: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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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제도 조정倭의 뿌리조상 "소시모리(牛首)"의 반란을 진압하다.[조세제도 조정(調定)]서기전2175년 초여름 4월이 되자 천왕께서 불함산(不咸山)에 올라 민가(民家)에서 나오는 연기를 보시고 연기가 일어나는 것이 적은 집은 조세(租稅)를 줄이도록 명령하여 조세에 차이가 있게 하였다.음력(陰曆)으로 1월, 2월, 3월은 봄이며, 4월, 5월, 6…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1-01-20  |  Hit: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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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륵 천왕의 칙서 '中一의 도' 단군조선의 서방에 있는 제후국 티벳... 강거의 반란을 정벌하다[중일(中一)의 도(道)]서기전2176년 을사년(乙巳年) 9월에 가륵(嘉勒) 천왕이 칙서(勅書)를 내려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다.“천하(天下)의 대본(大本)은 우리 마음의 중일(中一)에 있나니, 사람이 중일(中一)을 잃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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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시대 역사서 배달유기 편찬흉노족의 조상 색정에게 명하여 약수로 옮기게 하고 훗날 사면하다.[배달나라 시대의 역사서 배달유기(倍達留記)]서기전2180년 신축년(辛丑年)에 신지(神誌) 고글(高契)에게 명하여 배달유기(倍達留記)를 편수(編修)하게 하였다.신지(神誌)는 문자(文字) 및 명령(命令) 관련 담당 벼슬(官職)이다. 후대에 문…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1-01-20  |  Hit: 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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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근 한문화사업총단 대표/천산역사연구원장/천부역(天符易)과학원장/마고족보연구원 대표/세계무궁화축제문화사업회 이사/독도 대마도 동해 만주 수호회복단 이사/천웅도 문무원 이사/광개토황비문연구원 이사/천부어문연구원 이사/산삼문화사업단 이사/한국삼협회 고문/홍익정치연구원 이사/한문화컨텐츠개발원 이…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1-01-20  |  Hit: 595
91. [홍익인간 7만년 역사] 가륵 천왕의 역사 11 - 인도 브라미 문자와 가림토 / 알파벳…
가륵 천왕의 역사 11천산태백의 홍익인간 7만년 역사<55> 돌궐·브라미문자·알파벳과 가림토페니키아·그리스문자는 오리엔트.. 수메르.. 한배달조선에서 연유 추정10. 인도 브라미 문자와 가림토서기전2000년경 이후에 인도 브라미족(브라만)이 쓴 브라미(brahmi)문자는 가림토글자와 닮은 점이 많은데, 만약 브라미(brahmi, 브라흐미)가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1-01-20  |  Hit: 597
90. [홍익인간 7만년 역사] 가륵 천왕의 역사 10 - 돌궐문자와 가림토의 관계
가륵 천왕의 역사 10천산태백의 홍익인간 7만년 역사<54> 가림토와 돌궐문자의 유사성돌궐의 근거지는 구려, 선비, 흉노, 몽골 땅... 글자 형태 많은 부분 일치9. 돌궐문자와 가림토의 관계(1) 돌궐(톤유쿡)비문에 보이는 글자 위 비문(碑文)은 돌궐의 비문이다. 가림토 글자와 상당히 유사성이 있는 글자들인데, 분석을 해보면 글자의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1-01-20  |  Hit: 362
89. [홍익인간 7만년 역사] 가륵 천왕의 역사 9 - 반절법 이전의 발음표기법인 가림토…
가륵 천왕의 역사 9천산태백의 홍익인간 7만년 역사<53> 말과 글을 통일시키기 위한 가림토漢시대 지어진 說文解字에서 半切法의 音 표기는 단군조선 발음 기준8. 반절법 이전의 발음표기법인 가림토글 - 글자와 말의 소리 표기법가림토38자가 출현한 이유는 말이 통하지 않고 글이 통하지 않아 이를 통일시키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1-01-20  |  Hit: 343
88. [홍익인간 7만년 역사] 가륵 천왕의 역사 8 - 상형문자 진서(眞書)와 소리글자 가림…
가륵 천왕의 역사 8소위 한자(漢字)는 원래 배달나라 그림글자(符圖文)에서 나온 것이며, 글(契)이라는 말 자체가 그림(그리다의 명사형) 또는 그리다(동사)라는 말의 명사에 해당하는데, 단군조선 시대의 그림글자 즉 상형문자는 진서(眞書 :참글 = 참 그림글자)라 불렀고, 서기전924년에 왕문이 만든 부예(符隸)라는 상형문자가 있다.7. 상…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1-01-05  |  Hit: 569
87. [홍익인간 7만년 역사] 가륵 천왕의 역사 7 - 가림토와 명도전(明刀錢) 문자의 음가…
가륵 천왕의 역사 7 6. 가림토와 명도전(明刀錢) 문자의 음가(音價)의 실례(實例)가림토38자의 체계로 보면, ㅡ아래 자음은 그 자음의 복자음이 되어 경음이 되며, 아래아(.) 아래의 자음은 그 자음의 격음이 되는 규칙성을 보인다. 그래서 ㅡ아래 ㅇ은 [ㅇㅇ]의 발음으로서 ㅇ의 된발음이 된다.가림토38자 정립이전의 ㅇ은 경우에 따…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1-01-05  |  Hit: 464
86. [홍익인간 7만년 역사] 가륵 천왕의 역사 6 - 단군조선 가림토가 존재하였다는 증…
가륵 천왕의 역사 6 5. 단군조선 가림토가 존재하였다는 증거역사상 단군조선 시대에 소리글자인 가림토가 존재하였다는 증거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1) 한단고기 신시본기에 배달나라(서기전3897년~서기전2333년) 시대에 이미 ㄱ과 같은 문자가 있었다고 단서를 적고 있다.(2) 한단고기 단군세기와 소도경전본훈, 단기고사에 가림토38자…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1-01-05  |  Hit: 483
85. [홍익인간 7만년 역사] 가륵 천왕의 역사 5 - 가림토 38자는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
가륵 천왕의 역사 54. 가림토 38자는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 서문에 실린 옛 표음문자, 고전(古篆)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니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자가 있다. 그래서 옛 사람이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뜻을 통하게 하고, 삼재(三才)의 도(道)를 실었으므로 후세에도 능히 바뀌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가 나뉘어져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1-01-05  |  Hit: 579
84. [홍익인간 7만년 역사] 가륵 천왕의 역사 4 - 가림토의 뜻과 원류 / 가림토 38자는 …
가륵 천왕의 역사 4가림토(加臨土)라는 말은 가림의 토 즉 “가리기 위한 말”이라는 뜻이며, 말소리를 명확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글자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가림다(加臨多)라고도 하는데, 다(多)의 발음이 토(土)와 동일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가리는 말이라는 뜻으로 볼 때 가림토로 읽는 것이 맞는 것이다.1. 가림토의 뜻가림…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1-01-05  |  Hit: 503
83. [홍익인간 7만년 역사] 가륵 천왕의 역사 3 - 소리글자(正音) 가림토(加臨土) 38자 …
가륵 천왕의 역사 3서기전2181년 경자년(庚子年) 가륵 천왕이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正音) 38자를 만들게 하니, 이것을 가림토(加臨土)라 한다.[소리글자(正音) 가림토(加臨土) 38자 정선(精選)]단군조선 초기에 상형표의(象形表意) 문자인 진서(眞書) 즉 참글이 있었으나,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다르고, 열집의 고을이 말…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1-01-05  |  Hit: 311
82. [홍익인간 7만년 역사] 가륵 천왕의 역사 2 "조선(朝鮮) 제3대 가륵(嘉勒) 천왕(天王…
가륵 천왕의 역사 2서기전2182년 기해년(己亥年)에 마한(馬韓) 불여래(弗如來)가 소도(蘇塗)를 세우고 삼륜구서(三倫九誓)의 가르침을 펴니 치화(治化)가 크게 행해졌다.소도(蘇塗)는 제천행사(祭天行事)를 벌이는 신성(神聖) 지역이다. 소도임을 나타내는 표식(標式)을 솟대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솟대는 높은 나뭇기둥 위에 새 모양을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0-12-12  |  Hit: 458
81.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조선(朝鮮) 제3대 가륵(嘉勒) 천왕(天王)의 역사
가륵 천왕의 역사 1서기전2182년 기해년(己亥年)에 단군조선 제3대 가륵 천왕이 즉위하였으며, 삼랑 을보륵에게 신왕종전의 도를 물으시니, 이에 을보륵은 엄지손가락을 교차시키되 오른손을 올려 놓아 삼육대례(三六大禮)를 행한 후 나아가 말씀을 올렸다.-조선(朝鮮) 제3대 가륵(嘉勒) 천왕(天王)의 역사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의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0-12-12  |  Hit: 389
80. [홍익인간 7만년 역사-79] "부루 천왕의 역사 5 - 우(禹)의 반역(反逆)과 유호씨(有戶…
부루 천왕의 역사 5단군조선의 사자(使者) 유호씨(有戶氏)의 명을 받아 천자(天子) 순(舜)을 죽인 우(禹)는, 명령을 수행한 결과에 대하여 유호씨의 명(命)을 받아 공(功)을 정리하지 아니하고서 군사들만 위로하고 돌아가므로, 유호씨가 물러나 우(禹)의 소행을 관찰하니, 이에 우(禹)는 도읍을 옮기고 무리를 모아 방패(干)와 창(戈)을 보…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0-12-12  |  Hit: 416
79. [홍익인간 7만년 역사-78] 부루 천왕의 역사 4 "재차 반역한 순(舜)을 제거하다"
부루 천왕의 역사 4서기전2238년 계묘년에 부루 천왕이 조서(詔書)를 내려 백성들로 하여금 머리카락을 땋는 편발(編髮)을 하도록 하고, 푸른 옷(靑衣)를 입도록 하였으며, 곡식의 양을 재는 말(斗)과 저울(衡)과 측량기구를 표준에 맞추게 하였다. 이로써 시장에서의 가격이 다르지 않게 되었고 백성들이 서로 속이지 않아 두루 편하게 되…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0-12-12  |  Hit: 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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