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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548338121.jpg  조홍근  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조선(朝鮮) 제25대 솔나 단군의 역사1
  
   작성자 : 배달문화원
작성일 : 2022-08-08     조회 : 747  



조홍근  

40여년 족보·역사 연구

[저서] 마고할미로부터 7만년/홍익인간 7만년 역사/천부경 인간완성-제1부 천부경과 음양오행 ·역원리 이해 등 

<고조선 문자> 검증역 · 허대동 저. 이민화 감수 / 공학사·법학사·언론학사·인문학사(중문학·영문학·국문학)

참한역사신문 감사 / 씨알문화축제 조직위원회 밝달장 / 한국성씨총연합회 자문위원 / 민족회의 대표 / 역사광복군 총사령 / 개천절 세계평화 축제 조직 위원회 대표 / 단수학회 이사 / 한뿌리사랑세계모임 자문위원 / 한문화사업총단(해달별아리랑.천부역사태학원) 대표 

[조선(朝鮮) 제25대 솔나(率那) 천왕(天王)의 역사]  

천단가(天壇歌) 

서기전1130년 신미년(辛未年)에 번한(番韓) 임나(任那)가 솔나 천왕의 조서(詔書)로써 천단(天壇)을 동쪽 교외에 설치하고 삼신(三神)께 제사를 지냈다. 무리들이 둥글게 모여 북을 치며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정성으로 천단을 쌓고 삼신께 축수하세!

(精誠乙奴 天壇築爲古 三神主其 祝壽爲世)

황운을 축수함이며 만만세로다!

(皇運乙 祝壽爲未於 萬萬歲魯多)

만인을 돌아봄이며 풍년을 즐거워하도다!

(萬民乙 睹羅保美御 豊年乙 叱居越爲度多)


위 천단(天壇)은 삼신(三神) 제천단(祭天壇)으로서, 번한(番韓) 임나(任那)가 솔나 천왕의 명(命)을 받아 마한의 수도인 백아강의 동쪽 교외에 설치한 것이다.  

둥글게 모여 북을 치며 노래하는 형태는 이미 서기전3897년 이전의 한국(桓國)시대부터 있어온 태백환무가(太白環舞歌)와 일맥상통한데, 이러한 노래가 있었던 것을 보면 태평시대였던 것이 된다. 

위 노래의 가사가 한자(漢字)와 이두식 한자로 기록되고 있는데, 만약 말투가 위와 같았다라면 서기전1130년경의 단군조선의 언어는 지금의 한국어 언어형식과 다름없는 것이 되는데, 구전(口傳)되던 노래가 기록되었던 것을 다시 조선시대 이맥(李陌) 선생이 번한세가(番韓世家)를 편찬할 때 서기1520년경의 말투로 기록하였을 여지는 있겠다.   


[조선(朝鮮) 제25대 솔나(率那) 천왕(天王)의 역사]  

은(殷)나라 멸망과 주(周)나라 건국 

은(殷)나라 왕 주(紂)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많이 하여 서기전1122년 기묘년(己卯年)에 주(周)나라 무왕(武王) 희발(姬發)에게 망하였다.  

은나라는 서기전1766년에 단군조선의 군사적 후원을 받아, 단군조선 선인(仙人) 유위자(有爲子)의 제자(弟子)였던 이윤(伊尹)을 재상으로 삼은 성탕(成湯)이 박(亳)을 수도로 하여 건국하였으며, 단군조선의 지방 제후국에 해당하는 천자국(天子國)으로 출발하였으나, 하(夏)나라의 제도(制度)를 답습함으로써 독자적 왕국으로 점점 이탈을 하게 되었는데, 다만, 단군조선 삼한(三韓)에 대하여는 조공(朝貢)의 예를 행하였다. 

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紂)는 포악한 정치를 하며 달기(妲己)라는 여자에 빠져 하(夏)나라 마지막 걸왕(桀王)처럼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에 지냈는데, 주왕(紂王)의 숙부(叔父)인 기자(箕子)와 비간(比干)과 서형(庶兄) 미자(微子)가 자주 간(諫)하였으나 들은 체도 하지 않아, 미자(微子)는 주왕(紂王)을 떠나 버렸다. 

또, 비간은 주왕(紂王)이 가슴을 칼로 도려내어 무참하게 살해당하였으며, 기자는 미친 사람 행세를 하고 숨어 살았으나 결국 주왕에게 붙들고 말았다. 이에 은나라 태사(太師)는 예약(禮樂)과 제사(祭祀)만이라도 보존하려고 악기(樂器)와 제기(祭器)를 가지고 주(周)나라로 달아났다.

이후 주(周)나라 제후인 창(昌)과 구후(九侯)와 악후(鄂侯)가 주왕(紂王)의 삼공(三公)이 되었는데, 주왕이 간(諫)하던 구후를 죽이고 또 악후도 죽여서 시체를 마른 고기로 만들었던 것이며, 이에 주후(周侯) 창(昌)은 주왕(紂王)의 무도함을 탄식하였고, 주왕(紂王)은 이를 듣고 창(昌)을 감옥에 가두었던 것인데, 창(昌)의 신하 산의생(散宜生)이 미녀와 진기한 보배를 구하여 주왕(紂王)에게 바치자 이에 창(昌)을 놓아 주었던 것이다. 

주왕(紂王)은 창(昌)을 서백(西伯)으로 임명하였으며, 이에 창(昌)은 고향인 주(周)나라로 돌아와 덕을 닦았고, 많은 제후들이 서백 창에게 귀복하였던 것이며, 창이 죽고 아들 발(發)이 대를 이어 서백(西伯)이 되어 제후를 이끌고 주왕(紂王)을 쳤는데, 이때 주왕(紂王)은 보석으로 수놓은 옷을 입은 채 불속에 뛰어들어 자살함으로써 은나라는 제30대 644년간 존속하다 망하였던 것이다.

처음 주나라는 은나라의 조그만 제후국에 지나지 않았으나, 창(昌)이 서백(西伯)에 임명되어 덕을 닦자 제후들이 모여들었고, 산동지역의 동해(東海) 출신인 강태공(姜太公)의 보좌로 천하통일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대를 이은 발(發)이 서백이 되어 상중(喪中)에도 은나라 정벌을 시도하였다. 

이때 고죽국 출신의 백이와 숙제가 충효에 관하여 간하였는데, 좌우의 신하들이 백이숙제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강태공이 의사(義士)라 하며 호위하는 사람을 붙여 물러가게 하였다. 이리하여 주(周)나라 시조 무왕(武王)이 된 발(發)이 은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천하(天下)의 왕(王), 천자(天子)가 되었던 것이다.  

주무왕(周武王)은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실현하는 차원에서 은나라 왕족을 몰살시키지 아니하였으며, 천하를 주(周)나라에 귀속하게 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는데, 은왕족 기자(箕子)에게 천하를 다스리는 가르침을 청하였고 이에 기자는 주무왕에게 홍범구주(洪範九疇)를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자는 더 이상 주나라의 신하가 되기를 거절하고 태원 북쪽이자 태항산맥 서쪽 지역으로서 서화(西華)라고 불리게 되는 단군조선 영역으로 망명하였던 것이다. 

이후 기자국(箕子國)은 단군조선의 기후국(箕侯國)으로서 수유(須臾)라고도 불리는데, 천자국(天子國)인 주(周)나라의 북쪽, 천군국(天君國)인 구려국(句麗國)의 서남쪽, 천군국(天君國)인 고죽국(孤竹國)의 서쪽에 위치한 나라가 되는 것이며, 서기전650년경 이후에는 주류(主流)가 동쪽으로 이동하여 번한(番韓) 지역에서 읍차(邑借)로 활동하다가 서기전323년에 읍차 기후(箕詡)가 번조선왕(番朝鮮王)이 되었으며, 방계(傍系)는 남하(南下)하여 연(燕)나라와 조(趙)나라 사이에 선우중산국(鮮于中山國)을 세우고 서기전296년경에 조나라 무령왕(武寧王)에게 망하게 된다. 

한편, 주무왕은 은나라 주왕(紂王)의 서형(庶兄)인 미자(微子)를 송(宋)나라에 봉하였으며, 또 주왕(紂王)의 아들인 무경(武庚)을 은나라 후계자로서 녹보(祿父)로 봉하였는데, 무왕(武王) 다음의 성왕(成王) 시대에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무경을 받들어 모반(謀叛)을 일으켰는 바, 이를 삼감(三監)의 난(亂)이라고 한다. 즉 주나라 초기에는 은나라의 잔재세력(殘在勢力)도 남아 있어 정세(政勢)가 혼란하였던 것이 된다. 

주무왕(周武王)은,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서기전2436-서기전2366)의 아들인 후직(后稷)으로 불리는 기(棄)의 후손이 되는데, 서기전1134년에 서백(西伯)이 되어 서기전1122년까지 12년간 다스렸으며, 서기전1122년에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서기전1116년에 사망하여 주(周)나라 왕으로 7년 재위하여, 합 19년이 된다. 

주(周)나라 또한 천자국(天子國)으로서 형식적으로는 물론 실질적으로도 상국(上國)으로서 천왕국(天王國)인 단군조선의 천하(天下)인 지방(地方)의 제후국(諸侯國)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서기전1122년경 숙신(肅愼)이 주(周)나라에 석궁(石弓) 등 조공(朝貢)을 바쳤다는 고대중국측의 기록은, 단군조선의 제후국(諸侯國)인 숙신국(肅愼國) 또는 전기 단군조선의 수도였던 아사달이 숙신국(肅愼國)의 영역에 속한 까닭으로 단군조선을 숙신으로 대칭(代稱)한 것이라면 단군조선 조정(朝廷)에서, 사신(使臣)을 보내어 주무왕의 즉위를 축하(祝賀)하며 천자(天子)로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을 왜곡한 것이 될 것이다.


[조선(朝鮮) 제25대 솔나(率那) 천왕(天王)의 역사]  

은나라 왕족 기자(箕子)의 망명 

서기전1120년 신사년(辛巳年)에 자서여(子胥餘)가 거처를 태행산맥(太行山脈)의 서북의 땅으로 피하여 가니 막조선(莫朝鮮)이 이를 듣고 모든 주(州)와 군(郡)을 샅샅이 조사하더니 열병(閱兵)을 하고 돌아왔다.  

자서여(子胥餘)는 기자(箕子)의 성명으로서 성씨가 자씨(子氏)이며, 서여(胥餘)는 그의 이름이다. 기자(箕子)는 기(箕)라는 땅에 봉해진 자작(子爵)을 가리킨다. 즉 기(箕)라는 땅에 봉해진 시조(始祖)가 자서여(子胥餘)로서 은(殷)나라의 자작인 것이다.  

기자(箕子)는 은나라 마지막 30대왕인 주(紂)의 숙부(叔父)이다. 주왕(紂王)은 이름을 수(受)라고도 하며 중국측 기록에서는 호(號)를 제신(帝辛)이라고도 한다. 고대중국의 역사기록에서 진한(秦漢) 시대 이전에 제(帝)로 붙여진 왕은 은나라의 29대왕인 제을(帝乙)과 제30대왕인 제신(帝辛)이 있는데, 왕(王)을 봉(封)하는 자리인 제(帝)의 의미와는 달리 은나라의 제을과 제신은 폭군(暴君)을 연상하게 한다.  

하(夏)나라의 왕은 통상 후(后)라 하고 은(殷)나라와 주(周)나라는 왕(王)이라 하는데 특히 주나라 천자(天子)는 무왕(武王), 성왕(成王) 등 모두 왕(王)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태행산맥(太行山脈)은 고죽국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기자(箕子)가 주나라 무왕(武王)의 요청으로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도(道)로서 홍범구주(洪範九疇)를 가르쳐 주었으나, 끝내 주무왕(周武王)의 신하(臣下)가 되기를 거절하고 패잔병 5,000명을 이끌고서 태행산맥 서북의 땅으로 피하여 소위 서화(西華)라는 땅에 정착하였던 것이다.  

막조선(莫朝鮮)은 마조선(馬朝鮮)을 나타낸 다른 표기가 되는데, 마조선의 임금인 마한(馬韓) 아도(阿闍)가 은나라 망명객인 기자(箕子)가 태행산맥 서북의 땅으로 피하여 간다는 소식을 듣고서, 모든 주(州)와 군(郡)을 샅샅이 조사하더니 열병(閱兵)을 하고 돌아왔다는 것인데, 막조선이 번조선(番朝鮮)의 오기(誤記)가 아니라면, 마한 아도가 혹시라도 기자의 소행으로 마조선 즉 마한 땅에 무슨 변고라도 일어날까 염려하여 마조선(馬朝鮮)의 각 지역을 순수하고 열병(閱兵)을 함으로써 사전(事前) 단속(團束)하였던 것이 된다. 

이때 번조선(番朝鮮)의 임금인 번한(番韓)은 임나(任那)인데, 기자(箕子)가 태행산맥의 서북 땅으로 피하여 가는 것을 번한(番韓)이 조사하였을 만한 사건이라고 보이는 바, 당연히 번한(番韓)이 마한(馬韓)보다도 기자(箕子)의 소행(所行)을 철저히 감시(監視)하였던 것이 될 것이다. 


서기전1122년에 은나라가 주무왕에게 망하고, 이에 주무왕이 기자(箕子)를 석방하여 홍범구주(洪範九疇)의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 되며, 기자는 주나라의 신하가 되기를 거절하고 서기전1120년에 끝내 주무왕(周武王)을 피하여 군사 5,000을 이끌고서 북쪽으로 단군조선 직할영역이 되는 태행산맥 서북의 땅으로 망명(亡命)하였던 것이 된다.  

기자(箕子)가 망명한 지역은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인 구려국(句麗國)의 서남방(西南方)이자 고죽국(孤竹國)의 서방(西方)이며, 흉노(匈奴)지역의 동방(東方)에 위치하고 태원(太原)의 북방이 된다. 이를 소위 서화(西華)라 하는데, 원래의 서화는 처음 기자(箕子)가 자작(子爵)으로 봉해진 기(箕)라는 땅으로서 황하(黃河) 유역의 개봉부(開封府)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이때 기자(箕子)가 군사 5,000명을 이끌고 옮겨와 정착함으로써 이미 그 땅에 살고 있던 백성들이 터를 내주고 흩어지거나 동쪽으로 이동하였을 수도 있다고도 보인다. 5,000명이면 큰 읍(邑)을 이룰 만한 숫자가 된다. 

이후 기자국(箕子國)은 수유(須臾)이라 불리면서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서 서기전653년 제36대 매륵(買勒) 천왕(天王)이 파견한 군대와 연합으로 연(燕)나라를 정벌하기도 하였다. 수유(須臾)라는 말은 자서여(子胥餘)의 서여(胥餘)와 통하는 말이 된다.


[조선(朝鮮) 제25대 솔나(率那) 천왕(天王)의 역사]  

기자(箕子)의 은거(隱居) 

서기전1114년 정해년(丁亥年)에 기자(箕子)가 서화(西華)에 옮겨와 있으면서 인사를 받는 일도 사절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서화(西華)라는 땅은 태항산맥(太行山脈)의 서북쪽 지역을 가리키는데, 원래의 서화는 옛 기(箕)의 땅으로서 개봉부(開封府)의 서쪽 90리에 있었으며 이곳에 기자대(箕子臺)가 있다. 

기자(箕子)는 단군조선의 직할영역 안으로 망명함으로써 주(周)나라의 영향력을 벗어났던 것이고, 이후 단군조선에서 제후(諸侯)로 인정받은 것이 된다. 원래 은나라가 단군조선의 제후국에 해당하는 천자국(天子國)으로서 은나라가 왕족 자서여(子胥餘)를 기(箕)의 땅에 자작(子爵)으로 봉하였는데, 이는 천하왕이 봉한 제후로서 또한 상국(上國)인 단군조선으로부터도 제후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된다. 즉 기자는 단군조선으로 망명한 이후에는 단군조선의 직속 제후가 되는 것이다. 


기자(箕子)가 서화(西華)에 은거하였다는 것은, 자신이 이미 망한 은(殷)나라의 왕족이자 제후(諸侯)로서 주(周)나라의 신하가 되기를 거절하고 주나라 영역을 벗어난 땅에 망명(亡命)한 처지이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라고 보인다. 

그러나 이후 기자(箕子)는 단군조선의 문화제도를 접하면서 단군조선의 제후로서 활동하였던 것이 된다. 특히 기자는 사사(士師)였던 왕수긍(王受兢)에게 부탁하여 단군조선의 경전의 하나인 삼일신고(三一神誥)를 단목판에 새기게 하고서 읽었다라고 대진국(大震國, 발해) 제3대 문황제(文皇帝)가 대흥(大興) 3년인 서기739년 3월 15일에 지어 태백산(白頭山) 보본단(報本壇) 석실(石室)에 보관한 삼일신고봉장기(三一神誥奉藏記)에 전한다.


[조선(朝鮮) 제25대 솔나(率那) 천왕(天王)의 역사]  

기자(奇子)와 기자(箕子)는 다른 인물 

단기고사(檀奇古史)의 기(奇)는 소위 기자(奇子)의 기(奇)를 가리키는데, 서기전1286년경의 인물로 단군조선 제21대 소태 천왕 시절에 개사원(蓋斯原) 욕살(褥薩) 고등(高登)과 함께 은나라를 정벌한 장수(將帥) 즉 상장(上將) 서여(西余)와 동일인물이며 일명 서우여(徐于餘)라고도 불리는데, 해성(海城)의 욕살(褥薩)로 봉해졌다가 천왕의 종실(宗室)로서 서기전1286년에 소태 천왕으로부터 살수(薩水) 지역 100리를 하사받고 섭주(攝主)로 봉해져 기수(奇首)라고 불려진 인물이다.

즉, 기수(奇首)가 기자(奇子)로 불려진 것이 되는데, 땅 100리에 봉해지는 제후는 고대중국에서는 공후(公侯)에 해당하나 단군조선에서는 자작(子爵)에 해당한다고 보아 기자(奇子)로 불려진 것이 된다. 또는 자(子)를 일반적인 높임말로 사용하여 기수(奇首)를 기자(奇子)라 하였을 수도 있겠다.

고대중국의 왕제(王制)에서는 천자(天子) 즉 왕(王)은 밭(田)을 사방 천리(千里)를 가지며, 제후(諸侯)인 공후(公侯)는 사방 백리(百里)이고, 백(伯)은 사방 칠십리(七十里)이며, 자남(子男)은 사방 오십리(五十里)가 된다. 


이렇게 보면, 단군조선에서 기수(奇首)로 봉해진 한서여(桓西余, 徐于餘)는 땅 100리에 봉해졌으므로 고대중국의 자작(子爵)보다 두 단계나 높은 공후(公侯)에 해당하는 직위가 되는데, 이는 단군조선의 임금이 천하(天下) 왕(王)을 봉하는 천상(天上)의 왕인 천왕(天王) 즉 상제(上帝)이기 때문에 당연한 논리가 된다. 

은나라 왕족 기자(箕子)는 단군조선의 기자(奇子)보다 약 130년 이후가 되는 서기전1150년경에 기(箕) 땅에 봉해진 자작으로서 성명(姓名)이 자서여(子胥餘)이며, 사방 50리에 봉해진 제후가 된다.

즉 단군조선의 기수(奇首)인 서우여(徐于餘)는 단군조선의 기자(奇子)로서 고대중국의 작위(爵位)로 보면 은(殷)의 기자(箕子)보다 두 단계나 높은 공후(公侯)에 해당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은(殷)나라의 자작(子爵)이 되는 기자(箕子)를 단군조선의 자작(子爵)이 되는 기자(奇子)와 비교하거나 동일인물로 착각하는 것은 기자(奇子)를 모독하는 것이 될 것이다. 단군조선의 자작(子爵)은 천왕(天王)이 봉한 제후로서 천자격(天子格)이 되며, 고대중국의 천자(天子)와 동일격(同一格)이 되는 것이다.  

고대중국의 천자가 사방 천리(千里)를 가지고 대체적으로 약 15개 제후(諸侯)들이 사방 백리(百里)씩을 가졌다라고 한다면, 전체는 합 3,000리 정도 영역이 되는데, 이는 단군조선의 마한 땅과 엇비슷한 넓이가 되며, 아무리 넓어도 단군조선 전체로 보면 약 1/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된다. 특히 고대중국의 제후국으로 기록된 나라들이 원래는 단군조선의 제후국들이었다가 고대중국의 영향하에 놓일 때 그들의 제후국으로 둔갑시켜 놓은 경우가 많다. 


단군조선에서는 대국(大國)으로 마한(馬韓)과 번한(番韓)이 있고, 진한과 마한과 번한 관경내에 수많은 제후국을 두었는데, 큰 제후국으로 구려(句麗), 진번(眞番), 부여(扶餘), 남국(藍國), 청구(靑邱), 숙신(肅愼), 개마(蓋馬), 예(濊), 옥저(沃沮), 몽고리(蒙古里), 고죽(孤竹), 남선비(南鮮卑), 졸본(卒本), 비류(沸流), 엄(淹), 서(徐), 회(淮), 협야(陜野) 등 20여개국을 넘으며 조공국(朝貢國)까지 합하면 최소한 70여국이 넘었던 것이다.  

단군조선은 조공국과 지방장관인 욕살(褥薩)을 둔 큰 땅까지 모두 합하면 티벳고원에서 동쪽으로 동해(東海)에 이르는 동서 2만리 남북 5만리의 광대한 대제국으로서, 사방 3,000리 또는 5,000리에 해당하는 고대중국의 10배 이상 큰, 고대중국을 포함하면서, 바깥 경계가 없던 나라인 것이다.

숙신, 개마, 예, 옥저, 졸본, 엄, 서, 회, 협야 등의 제후국들이 소위 천자국(天子국)에 해당되며, 구려, 진번, 부여, 남국, 청구, 몽고리, 고죽, 남선비 등의 나라는 천군국(天君國)에 해당하게 된다. 당우하은주(唐虞夏殷周)의 고대중국은 단군조선의 제후격(諸侯格)에 해당하는 천자국(天子國)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서(徐)는 고대중국의 기록에서 서이(徐夷)라고도 하는데, 한때 사방 500리를 차지한 대국으로서 주(周)나라 천자국과 대적(對敵)하기도 하였다.

당우하은주(唐虞夏殷周)의 고대중국은, 단군조선의 비왕으로서 천왕격(天王格)인 마한(馬韓)과 번한(番韓)의 저 아래 작위가 되는, 천자(天子)가 다스리던 나라였다. 단군조선의 황제(皇制)로 보면, 천제(天帝), 천왕(天王), 한(韓)이 되는 천왕격 비왕(裨王), 이하 한(汗)이라 기록되는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순서가 된다.

천왕 이하는 일반적으로 한(韓), 한(汗)이라 기록되는데, 특히 고대중국의 천자(天子)와 비교할 때는 모두 그 작위에 천(天)자를 붙여야 마땅한 것이 작위가 된다. 즉 단군조선에서 봉해진 군공후백자남은 스스로 천군, 천공, 천후, 천백, 천자, 천남이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고대중국의 천자는 단군조선의 제후 중에서 끝에서 두 번째의 작위에 해당하는 낮은 작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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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 역사 1~5권_조홍근 저
홍익인간 7만년 역사 _ 1~5권 [韓·中·日 역사 연대기 중심 총망라]  조홍근 저 | 글모아 우리 한국은 반만년이 아닌, 단군조선 더 이전부터 시작된 7만년의 역사다! 이 책은 우리 역사를 72399년이라 밝히고 있다. 서기전 70378년 계해년부터 마고(麻姑) 한국 63182년, 한국(桓國) 3301년, 배달나라(檀國) 1565년, 단군조선(檀君朝鮮…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1-12-23  |  Hit: 994
조홍근 필자의 보다 자세한 프로필
조 홍 근 한문화재단 사무총장, 홍익정치 연구원 부원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현 법무사. 30여년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7-07-10  |  Hit: 1920
58. [홍익인간 7만년 역사-57] 단군조선 연대기10 "순(舜)임금의 상소와 효충 회복의 기…
단군조선 연대기 10우(禹)가 치수에 관하여 상국(上國)인 단군조선에 구원을 요청하자는 취지로 고하는 내용을 순순히 듣고 있던 순임금은 내심 불편하였으나, 무턱대고 화낼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한편으로 아버지 유호씨(有戶氏)와의 앙금을 풀고 단군조선에도 충성심(忠誠心)을 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순(舜)…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0-07-17  |  Hit: 505
57. [홍익인간 7만년 역사-56] 단군조선 연대기9 "사공 우, 자허선인께 가르침을 구하다
단군조선 연대기 9서기전2280년경 순임금으로부터 치수담당으로 명(命)을 받은 사공(司空) 우(禹)는 서기전2267년까지 13년간 쌓고 고치고 부수고, 다시 쌓고 고치고 부수고 하면서 온갖 고생을 다 하였어도 치수를 완성하지 못하였다. ▲ 우(禹) 치수기념비 탁본비 © 천산태백 사공(司空) 우(禹), 자허선인(紫虛仙人)께 가르침을 구하…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0-07-17  |  Hit: 509
56. [홍익인간 7만년 역사-55] 단군조선 연대기8 "곤(鯤)의 처형과 곤의 아들 사공(司空)…
단군조선 연대기 8서기전2288년에 황하이남으로 양자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여 발생한 소위 요순시대 9년 대홍수의 치수를 곤(鯤)이 맡고 있었다. 당시 요임금의 섭정이던 순(舜)이 곤에게 맡겼던 것이다. 곤(鯤)의 처형과 곤의 아들 사공(司空) 우(禹)곤(鯤)은 치수에 온 힘을 기울였으나, 오행(五行)의 원리에 따른 치수법을 알지 못하…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20-07-17  |  Hit: 547
55. [홍익인간 7만년 역사-54] 단군조선 연대기 7 "순(舜)의 천자(天子) 자리 찬탈(簒奪)"
단군조선 연대기 7서기전2284년 정사년(丁巳年)에 단군조선 땅에도 대홍수가 우수주(牛首州)를 중심으로 발생하여 치수(治水)에 여념이 없던 틈에, 천자(天子) 요(堯)의 섭정(攝政)이던 순(舜)이 자신이 계획해 왔던 일을 실행하기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순(舜)의 천자(天子) 자리 찬탈(簒奪)순(舜)은 서기전2284년에 118세이던 요(…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11-26  |  Hit: 567
54. [홍익인간 7만년 역사-53] 단군조선 연대기 6 "천자(天子) 요(堯)와 장당경(藏唐京)"
단군조선 연대기 6서기전2324년에 요(堯)의 굴복(屈服)을 받은 천사(天使) 유호씨(有戶氏)는 단군왕검 천왕(天王)께 그동안의 경과를 보고하면서, 요(堯)를 진정으로 믿지 못하니 대책을 강구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上疏)도 함께 올렸다. 천자(天子) 요(堯)와 장당경(藏唐京) 유호씨가 서기전2324년에 요의 항복을 받고서 단군왕…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11-26  |  Hit: 645
53. [홍익인간 7만년 역사-52] 단군조선 연대기5 "마한산(馬韓山) 제천과 유호씨(有戶氏…
단군조선 연대기 5서기전2333년 10월 3일에 조선을 개국한 후, 단군왕검은 삼한(三韓)으로 관경(管境)을 나누었으며, 마한(馬韓)에 웅백다(熊伯多)를 봉하여 달지국(達支國)에 도읍하게 하고 마한산(馬韓山)에 올라 하늘에 제(祭)를 올리게 하였다.마한산(馬韓山) 제천(祭天)웅백다(熊伯多)는 다(多)라는 이름을 가진 웅백(熊伯)이라는 말이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11-26  |  Hit: 559
52. [홍익인간 7만년 역사-51] 단군조선 연대기4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역사"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4나라의 제도를 완비한 단군조선은 10년 사이에 국력이 크게 신장되었다. 이에 따라 단군왕검은 홍익인간의 세상을 어지럽히는 전쟁의 불씨를 끄기 위하여 배달나라 말기에 전란(戰亂)을 일으켜 언제든지 재앙(災殃)의 불씨가 될 당요(唐堯)를 토벌(討伐)할 계획을 진행시켰다.서기전2324년경에 단군왕검은 전…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11-26  |  Hit: 550
51. [홍익인간 7만년 역사-50] 단군조선 연대기3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역사"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3단군왕검은 역법과 행정과 제례 등의 제도를 정비하였다. 북두칠성(北斗七星)과 일월(日月) 오행성(五行星)의 위치를 정하여 천문(天文), 역법(曆法)을 정리하고, 희생제(犧牲祭)나 제천행사(祭天行事)를 벌이며 천웅(天雄)의 음악을 연주하였다.진(津)과 포(浦)를 두어 물과 땅이 연결되게 하여 오고가며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11-26  |  Hit: 590
50. [홍익인간 7만년 역사-49] 단군조선 연대기2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역사"
단군조선 연대기 2서기전2334년에 당요(唐堯)의 기습침략으로, 배달나라 말기의 중심지였던 청구(靑邱) 지역에 있던 단웅국(檀熊國)의 왕성(王城)을 잃고서, 한인씨(桓因氏) 한국(桓國)의 중심지였던 동북의 송화강 아사달로 이동하여, 1년여 후인 38세 되던 해인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朝鮮)을 개국한 단군왕검은, 한국(桓國) 시대부터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09-28  |  Hit: 1159
49. [홍익인간 7만년 역사-48] 단군조선 연대기1 "배달나라(檀國)와 단웅국(檀熊國)"
단군조선 연대기 1단군조선의 뿌리는 배달나라(檀國)와 단웅국(檀熊國)이다. 배달나라는 단군왕검(檀君王儉)에게 천부삼인(天符三印)으로써 정통성을 부여한 나라이며, 단웅국은 단군왕검으로 하여금 조선을 개국하기 이전에 백성들에게 덕치(德治)를 실현할 수 있게 한 나라이다.서기전2370년 신묘년 5월 2일에 단군왕검은 배달…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09-28  |  Hit: 505
48. [홍익인간 7만년 역사-47] 단군왕검의 홍익인간 부활 3
단군왕검의 홍익인간 부활 3단군왕검은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의 삼사와 저가(豬加), 구가(狗加), 양가(羊加), 우가(牛加), 마가(馬加)의 오가의 보좌로 국가 정치를 이끌었다. 6. 삼사오가(三師五加)와 삼한(三韓) 8군후국(君侯國)풍백은 입법(立法), 우사는 행정(行政), 운사는 사법(司法)을 관장하고, 이들 삼사에 오가(五加…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09-28  |  Hit: 540
47. [홍익인간 7만년 역사-46] 단군왕검의 홍익인간 부활 2
단군왕검의 홍익인간 부활 2단군왕검은 나라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이는 “아침 새 나라”라는 의미이다. 배달나라는 해와 달이 떠서 밝히는 밝은 땅, 밝달, 박달(檀, 明地)이며, 아사달은 아침해와 아침달이 비치는 밝은 땅이다. 즉 아사달은 밝달 중 아침땅(朝)인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朝鮮)은 아침땅을 포함하는 아침나라…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09-28  |  Hit: 394
46. [홍익인간 7만년 역사-45] 단군왕검의 홍익인간 부활1
단군왕검개천(開天)1528년인 서기전2370년 신묘년(辛卯年) 5월 2일 인시(寅時)에 배달나라 18대 거불단(居弗檀) 한웅(桓雄)과 단웅국(檀熊國, 웅씨국, 염제신농국 후계)의 홍제녀(洪帝女) 사이에서 탄생하신 단군왕검께서, 서기전2357년 갑진년(甲辰年)에 단웅국의 홍제의 신임으로 섭정(攝政)을 하여 서기전2334년까지 3차례에 걸쳐 서기전2357…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08-21  |  Hit: 469
45. 단군왕검의 아리랑 여정 2
단군왕검의 아리랑 여정 2단군왕검은 서기전2334년에 단웅국(檀熊國)을 반란자 요(堯)에게 기습침략으로 빼앗기고, 측근의 무리800을 인솔하여 동북의 아사달을 향하여 이동하였다. 5. 한 맺힌 아리랑(阿里嶺)과 홍익인간 세상 복원(復元)을 약속하며 지나는 길에 수많은 백성들이 소식을 듣고 길을 나서며 따라가고자 하였다.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08-21  |  Hit: 477
44. 단군왕검의 아리랑 여정 1
단군왕검의 아리랑 여정 1단군왕검(檀君王儉)과 병립하였다는 소위 요임금은 배달나라 시대의 제후국이던 유웅국(有熊國)의 왕으로서, 서기전2401년에 출생하고, 서기전2383년경에 유웅국 왕이던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에 의하여 도(陶)에 봉해졌으며, 서기전 2357년 갑자년에 유웅국 왕이던 제지(帝摯)를 쳐서 멸하고 천자(天子) 자리를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08-21  |  Hit: 485
43. 중국어 분화(分化)와 상음(象音)문자
중국어 분화(分化)와 상음(象音)문자중국어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역사적 추론에 의한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중국의 실질적인 역사는 서기전2698년 계해년에 황제헌원(黃帝軒轅)에 의하여 시작된다. 그 이유는 황제헌원이 배달나라의 질서에 도전(挑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제헌원은 배달나라 질서에 귀복(歸復)하였다. 그래…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06-03  |  Hit: 454
42. 배달나라 시대 철학사상론 5 - 발귀리(發貴理)선인(仙人)의 원방각론(圓方角論)
배달나라 시대 철학사상론 5발귀리 선인은, 8괘역을 만든 서기전3500년경 태호복희와 동문수학(同門受學)한 인물이다.마고성(麻姑城) 시대의 기화수토(氣火水土 : 태양, 소양, 소음, 태음)로 표현된 사상(四相, 四象)에서 나아가 배달나라 시대 태호복희에 의하여 8괘(卦)로 정립된 역(易)은 원래 천지(天地) 즉 하늘과 땅이 상징하는 음양(…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06-03  |  Hit: 496
41. 배달나라 시대 철학사상론 4 - 역법(曆法)
배달나라 시대 철학사상론 4배달나라 초기에는 한국(桓國) 시대의 역법(曆法)을 계승하여 계해(癸亥)를 시작으로 하는 역법을 가지고 있었다. 즉 10천간(天干)의 처음을 계(癸)로 하고 12지지(地支)의 처음을 해(亥)로 하여 조합한 6계(癸) 곧 60계해를 사용한 것이다. 6계는 10천간을 6번 되풀이 한 수를 의미하여 60이라는 수를 뜻하는 것…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06-03  |  Hit: 492
40. 배달나라 시대 철학사상론 3 - 삼육구배(三六九拜)와 역법(曆法)
배달나라 시대 철학사상론 3배달나라 시대에 삼육구배라는 절(拜)하는 법이 있었다. 삼육대례(三六大禮)라고도 한다. 삼육대례는 삼육구대례(三六九大禮)의 준말이 된다.3. 삼육구배(三六九拜)- 삼육(구) 대례(大禮)삼육구(三六九)라는 숫자의 3, 6, 9는 모두 사람을 상징한다. 삼(三)은 신(神)으로서의 사람이며, 육(六)은 육신(肉身)으로서…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06-03  |  Hit: 395
39. 배달나라 시대 철학사상론 2 - 삼륜구서(三倫九誓)
배달나라 시대 철학사상론 2배달나라 시대에 삼륜구서라는 윤리도덕이 정립되어 있었다. 삼륜구서란 세가지 인간윤리에 아홉가지 맹서라는 의미이다.사람은 사회적 정치적 존재이다. 배달나라 이전의 한국시대에는 상대적으로 국가간의 전쟁이 거의 문제가 되지 아니하였으며 다만 일반 사회적인 윤리로써 충족되던 시대였다. 이에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06-03  |  Hit: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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