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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맥의 태백일사 제8_고려국본기
  
   작성자 : 배달문화원
작성일 : 2018-07-13     조회 : 325  

이맥 태백일사 제8 고려국본기



*고려국본기는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의 출생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와 후삼국 건국 과정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였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창건하는 과정과 고구려 정신을 계승하고, 잃어버린 옛 땅을 회복한다는 뜻으로 국호를 고려라고 정한 이야기를 담았다.
*서희 장군과 거란 장수 소손녕의 담판, 윤관의 여진 정벌, 묘청의 난, 행촌 이암의 조부 이존비의 역사의식과 낭가의 자주 독립정신, 선교의 삼신사상으로 무장한 인물들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특히 단군세기의 저자 행촌 이암의 역사의식과 삼신사상 등을 자세히 전한다.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1)
태조 신성태왕(神聖太王) 천수(天授) 2년(단기 3252, 919)에 송악의 남쪽에 도읍을 정했다. 26년(단기 3276, 943)에 태왕께서 훈요(訓要)를 지으셨는 데, 대략 이러하다.
"생각컨데 우리 동방이 예로부터 당풍(唐風)을 사모하여 문물과 예악이 모두 그 법을 따랐다. 그러나 방위가 다르고 풍토가 달라 사람의 성품이 제각기 다르니 진실로 반드시 동화되어서는 안 되리라."
*훈요~훈요십조를 말함, 고려 태조가 후손에게 귀감으로 삼게 한 10가지 유훈. 불법을 승상하라는 것과 서경(평양)을 중시할 것, 연등과 팔관회 행사를 소홀히 하지 말 것 등의 내용이 있다.
*고려사 권2, 세가2, 태조26년 계묘(943)
첫째로, 우리 국가의 왕업은 반드시 모든 부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중략
둘째로, 모든 사원들은 도선의 의견에 의하여 국내 산천의 좋고 나쁜 것을 가려서 창건한 것이다. 중략
세째로, 적자에게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비록 떳떳한 법이라고 하지만은 옛날 단주(丹朱)가 착하지 못하여 요가 순에게 나라를 위양하는 것은 실로 공명정대한 마음에서 울어나온 것이다. 후세에 만일 국왕의 맡아들이 착하지 못하거든 왕위를 지차 아들에게 줄 것이며 지차 아들이 또 착하지 못하거든 그 형제 중에서 여러 사람들어게 신망이 있는 자로써 정통을 잇게 할 것이다.
네째로, 우리 동방은 오래 전부터 중국 풍습을 본받아 문물 예약 제도를 다 그대로 준수하여 왔다. 그러나 지역이 다르고 사람의 성품도 각각 같지 않으니 구태여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다. 그리고 거란은 우매한 나라로서 풍속과 언어가 다르니 그들의 의관제도를 아에 본받지마라.
다섯째로, 내가 삼한 산천 신령의 도움을 받아 왕업을 이루었다. 서경은 수덕(水德)이 순조로워 우리나라 지맥의 근본으로 되어 있으니 만대 왕업의 기지다. 중략
여섯째로, 나의 지극한 관심은 연등과 팔관에 있다. 연등은 부처를 섬기는 것이요. 팔관은 하늘의 신령과 5악, 명산, 대천, 용신을 섬기는 것이다. 중략
일곱째로, 임금은 인민의 신망을 얻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
그 신망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간하는 말을 쫓고 참소하는 자를 멀리하여야 하는 바 간하는 말을 쫓으면 현명하다. 중략
여덟째로, 차현(車峴)이남 공주(公州)강 바깥은 산형과 지세가 모두 반대 방향으로 뻗었고 따라서 인심도 그러하니 그 아래 있는 주군 사람들이 국사를 참여하거나 왕후, 국척들과 혼인하여 나라의 정권을 잡게 되면 혹은 국가에 반란을 일으킬 것이요. 중략
아홉째로, 배관의 녹봉은 나라의 대소에 따라 일정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니 현재의 것을 증감하지마라. 중략
열째로, 나라를 가진 자나 집을 가진 자는 항상 만일을 경격하며 경전과 역사 서적을 널리 읽어 옛일을 지금의 교훈으로 삼는 것이다. 중략
이 열가지 훈계 끝에 일일 "마음속에 간직하라(中心藏之)"라는 네 글자를 붙여서 후대의 왕들이 전해 오면서 보배로 여기게 되었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p705~706
#한자원문 해설은 이맥의 태백일사 고려국본기를 참고 바람니다. 
#좌우를 넘어 한겨레의 1만년의 정체성을 찾아라!!!


고구려 왕족의 후손, 궁예(2)
태봉국(泰封國,신라말 궁예가 세운 나라)왕 궁예는 그 선조가 평양인으로, 본래 보덕왕(報德王) 고안승(高安勝)의 먼 후손이다. 그의 아버지 강(剛)이 술가(術家)의 말을 듣고 궁예의 어머니 성을 따르게 하여 궁씨(弓氏)가 되었다.
*궁예~'삼국사기 열전' 궁예편에 궁예에 관하여 자세히 나와있다.
일찍이 궁예가 미륵불을 자체한 것은 신라 일세에 풍미한 화랑과 미륵신앙이 결합한 일면을 보여준다.
*고안승~고구려의 왕족,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부흥운동을 일으킨 검모장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의견 차이로 검모장을 죽이고 신라로 망명
*궁예의 성씨~궁예의 어머는 토산궁씨이다. 토산은 옛 지명으로 황해도 금천군과 신계면 사이에 있다. 고구려 왕족인 궁예의 아버지가 신라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아들에게 부인의 성을 물려 준 것으로 본다.
이보다 앞서 고구려 수림성(水臨城) 사람 모잠(牟埁) 대형(大兄, 벼슬 이름)이 유민을 모아 안승을 후고구려 왕으로 받들고 신라에 도움을 청하였다. 이에 신라 왕이 나라의 서쪽 금마저(金馬渚, 전북 익산)에 살게 하였다가 후에 고쳐서 보덕왕이라 하였다.
신문왕(신라31세 왕, 681~692)이 즉위하자 보덕왕을 불러 소판(蘇判, 신라 17등급 가운데 3등 벼슬) 그의 조카뻘인 대문이 금마저에 남아 반란을 꾀하고 왕이라 일컫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남은 무리가 관리를 죽이고 보덕성에 웅거하여 다시 모반하였으나 신라에게 평정을 당했다. 그 사람들은 나라의 남쪽 주군(州郡)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709
#원문해설은 태백일사, 고려국본기를 참고 바람니다.
#좌우를 넘어 한겨레의 1만년의 정체성을 찾아라!!!


궁예의 출생과 양길과의 만남(3-1)
대진국(14세) 명종 경황제 천복 9년(단기 3211, 878) 5월 5일에 궁예가 외가에서 태어났다. 이때 지붕 위에 흰 빛이 긴 무지개처럼 하늘에 뻗쳐 있었다. 신라 일관(日官)이 이것을 바라보고 장차 국가에 이롭지 못할 것이라 하여 임금께 아뢰었다. 임금이 꺼려서 사람을 그 집에 보내 아기를 죽이려 하였다. 그 어미가 진귀한 보물을 주며, 아이를 안고 도망가게 해 달라고 애원하였다.
이후 갖은 고생을 하며 자식을 길렀다. 궁예 나이가 10여세에 머리 깍고 중이 되어 법명을 선종(善宗)이라 하였다. 장성한 뒤에도 여전히 마음대로 거리낌없이 행동하였고, 계율에도 구애받지 않았다. 크고 작은 모든 일에 담력이 있었다.
*태조 왕건(917-943)이 궁예보다 한 살 위이다.


고구려의 옛 땅을 회곡하고자 한 궁예(3-2)
일찍이 궁예가 바리때를 들고 재(齋)를 드리러 가는 데 까마귀가 입에 물고 있던 상아 점대(점을 치는 데 쓰이는 가늘게 쪼갠 댓가지, 길흉을 판단)를 바리때 속에 떨어뜨렸다. 살펴보니 왕(王)이란 글자가 씌여 있었는 데, 사실을 숨기고 말하지 않았으나 자못 자부하였다.
앞서 고안승 때부터 임금을 모시는 일에 공로가 있었으나, 신라는 보답하지 않고 오히려 그 땅과 백성을 모두 빼앗었다. 다만 왕의 누이동생으로 아내를 삼게 하였을 뿐이었다. 고구려 유민이 이 때문에 여러 대에 걸쳐 원망이 쌓여 앙심을 품고 여러 차례 변을 일으켰으나 패하였다.
궁예는 국가가 쇠약하고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기회를 틈타 무리를 모아 조종(祖宗,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여러 대의 원한을 씻고자 죽주(竹州, 경기도 안성군 동북부있던 주의 이름)의 도적 기훤(箕萱)에게 몸을 던졌다.
궁예는 속이 답답하고 마음이 편치 못하여, 기훤의 부하인 원회(元會), 신훤(申烜) 등과 몰래 결탁하여 친구로 삼아 북원(지금의 원주)의 도적 양길(梁吉)에게 투신하였다.
양길은 궁예를 잘 대우하고 일을 맡겼다. 군사 100기를 나누어 주고 동북 지방의 주와 군을 치게 하니 모든 고을이 항복하였다. 궁예는 아슬나(阿瑟那, 지금의 강릉)를 공격하였다. 무리가 600명에 이르자 스스로 장군이라 일컬었다. 군사와 고락을 함께하고 주는 일과 빼앗는 일을 사사로이 하지 않음으로 사람들이 모두 마음속으로 경외하였다.
*기훤~신라 말 군웅(群雄)중 한 사람, 891년(진성여왕 5)에 죽주에서 군사를 모아 반란을 일으켰다. 궁예가 몸을 의탁해오자 오만한 기훤은 예로서 대하지 않았다. 이에 궁예는 기훤의 부하인 원희.신훤 등과 결탁하여 892년 북원(지금의 원주)의 양길에게 갔다.
*양길(梁吉)~신라 진성여왕 때 왕의 실정으로 국정이 어지러워지자 반란을 일으켜 한 때 강원도 지방에서 세력을 떨쳤으나, 뒷날 부하였던 궁예에게 쫓겨나 몰락하고 말았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사(2012), pp709~711
#한자 원문 해설은 태백일사 교려국본기를 참고 바람니다.
#좌우를 넘어 한겨레의 1만년의 정체성을 찾아라!!!


왕륭의 귀순과 이훤의 후백제 건국(4)
천복 27년(단기 3229, 896)에 태수 왕륭(王隆)이 궁예에게 송악군을 바치고 귀순하여 이렇게 설득하였다.
"대왕께서 만약 조선, 숙신, 변한 땅에서 왕 노릇을 하고자 하시면, 먼저 송악을 차지하는 것이 좋으니 저의 장자 건(建)을 그곳의 주인으로 삼의소서."
궁예가 이 말을 좇았다. 이때 이훤(李萱)이 무진주(武珍州, 전라도 광주)에서 군사를 일으키고 무리에게 말하여 밝혔다.
"내가 삼국이 시작한 근원을 살펴보니 마한(중마한)이 먼저 일어났고, 혁거세(신라)가 뒤에 일어나자 변한(가락)이 뒤따라 일어났다. 백제가 나라를 열어 전해 오는 데, 신라가 당나라와 함께 쳐서 멸망시켰다. 이제 비록 덕은 없으나 의자왕의 분을 풀어드리겠노라. 드디어 완산(지금의 전주)에 도읍을 정하여 왕이라 일컫고 국호를 후백제로 하였다.
*이훤(867~936) 후백제의 시조 견훤을 말한다. 본성은 이씨다. 상중출신으로 신라장수 아자개(阿慈介)의 아들이다. 서남해 방위에 공을 세워 비장(裨將)이 되었으나 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서 892년에 반기를 들었다. 900년에 완산주에 도읍을 정하여 후백제를 세웠다.
*대륙사에서는 삼한이 대륙에서 출발하였고, 신라와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공격한 것도 대륙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고 백제 부흥운동도 대륙에서 일어난 것으로 본다. 흑치상지묘는 1929년 10월에 중국 하남성 낙양의 망산에서 그의 아들 흑치준묘지와 함께 발견되었다. 현재 묘지는 남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묘지는 41행으로 41자씩 모두 1604자이다. 흑치상치에 대한 기록은 '신당서' 흑치상지열전에 보이며, 묘지에서 흑치씨가 백제의 왕성인 부여씨에서 나왔으며, 아울러 흑치씨의 가문은 대대로 달솔로 임명되었고, 백제 옛땅에 대한 당나라의 지배정책, 당나라에서 백제유민들의 활약상을 전해준다(다음 인터넷, 흑치상지묘지명)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711
#원문해설은 태백일사 고려국본기를 참고 바람니다.
#좌우를 넘어 한겨레의 1만년의 정체성을 찾아라!


궁예의 후고구려 건국
궁예 또한 이듬해(단기 3234, 901)에 스스로 왕이라고 일겉고 말했다. "신라가 당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를 멸했는 데 이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다. 내 반드시 고구려를 위해 그 원수를 갚으리라." 
이에 나라를 세워 후고구려라 하고, 연호를 무태(武泰)라 하였다. 일찍이 남으로 순행하여 흥주사(興州寺)에 이르러 신라 전왕(前王)의 화상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칼을 뽑아 내리졌다.
궁예는 신라를 삼겨 버리려는 뜻을 품고 도읍을 멸하라 부르짓으며 신라에서 귀화해 오는 사람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이때부터 궁예는 스스로 미륵불이라 칭하고 머리에 금책(金幘)을 썼다. 또 스스로 경문 20권을 지어 때로 정좌하여 강설하기도 하였다.
이에 승려 석총(釋聰)이 "모두 사설괴담(邪說怪談)으로 세상 사람에게 가르칠 것이 못된다"하니, 궁예가 노하여 철추로 때려 죽였다.
*미륵불(彌勒佛)~불가에서는 석가모니 뒤에서 미래불인 미륵불이 출세하여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이상 낙원 즉 용화(龍華)세계를 건설한다고 해왔다.
백제에서는 무왕이 익산에 초대형 사찰을 창건, 본격적인 미륵신앙은 8세기 신라 법상종의 창시자인 진표율사가 미륵신앙의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신라 화랑이 미륵을 신앙한 자취를 삼국유사 기록에서 보면 낭승 월명사의 도솔가에 '도솔', 화랑 김유신을 따르는 '용화향도'라 했고, 화랑 미시랑을 '미륵선화'라 했으며, 화랑의 성유지(聖遊地)인 남산에서 '석미륵'이 나와서 생의사(生義寺)을 지었다 한다.
#역주 안경전 환단고기, 상생출판사(2012), pp711~712
#한자원문해설은 이맥의 태백일사 고려국본기를 참고 바람니다.
#좌우를 넘어 한겨레의 1만년의 정체성을 찾아라!!!


왕건의 즉위와 궁예의 최우(6)
천수 원년(단기 3251, 918) 여름 6월에 왕건이 홍유.배현경.신숭겸.복지겸 등 여러 장군의 추대를 받아 날이 밝을 무렵에 곡식더미 위에 앉아 군신의 예를 행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을 시켜 뛰어다니면서 "왕공이 이미 의기(義旗)를 들었다"라고 외치게 하였다. 
이때 달려와 따르는 자가 무리를 이루었다. 궁문에 이르니 먼저 와서 북을 치며 함성을 지르며 기다리는 사람이 만여 명이었다.
드디어 포정전(布政展)에 즉위하고, 연호를 천수(天授)라 하였다. 이 때 태봉 왕 궁예가 변란 소식을 듣고 미복으로 갈아입고 궁문을 빠져 나가 도망치다가 얼마 못가서 부양(斧壤, 강원도 평강) 백성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홍유(洪儒)~의성 홍씨의 시조, 고려의 일등개국 공신이며, 후백제를 멸망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배현경(裵玄慶)~경주 배씨의 시조, 처음 이름을 백옥삼(白玉衫)이라 하였다.
*신숭겸(申崇謙)~평산 신씨의 시조로 고려 예종이 지은 '도이장가(悼二將歌)의 주인공, 공산전투에서 견훤에게 포위 당해 죽음의 위기에 다른 왕건은 신숭겸의 기지로 포위망을 뚫고 살아 나왔다. 이 전투에서 신숭겸은 장렬하게 전사했고. 왕건 태조가 그 순절을 기려 장절공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복지겸(卜智謙)~복시의 시조
*견훤(867~936)의 묘~충남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에 있다. 견훤은 900년에 완산주에서 후백제를 세웠다. 아들들의 왕위 계승 싸움으로 말미암아 큰 아들 신검(神劍)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되었다가 고려에 투항하였다. 죽을 때 완산이 그립다는 유언을 하여 완산을 향해 묻었다고 한다.
#역주 안견전 환단고기, 상생출판(2012), pp713~714
*한자원문 해설은 태백일사 고려국본기를 참고 바람니다.
*좌우를 넘어 한겨레의 1만년의 정체성을 찾아라!!!


 
 
TOTAL 67
67. 가섭원부여기 [복애거사 범장 찬] 시조 해부루
가섭원부여기 _ 복애거사 범장 찬 시조 해부루 _ 재위 39년 ★동부여 수도 가섭원은 차릉 시조 해부루왕의 재위 원년은 (단기 2248, BCE)년이다. 왕이 북부여의 제재를 받아 가섭원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가섭원을 차릉(岔陵)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은 토지가 기름져서 오곡이 자라기에 적합하였는 데, 특히 보리가 많…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11-20  |  Hit: 2075
66. 북부여기 [복애거사 범장 찬] 북부여기하 _ 5세 단군 고두막 / 6세 단군 고무서
북부여기 _ 복애거사 범장 찬 북부여기 하 5세단군 고두막(일명 두막루) _ 동명왕 재위22년, 북부여 단군 재위27년 ★동명왕 고두막한의 북부여 재건과 시대배경 고두막한의 재위 원년은 계유(단기 2226, BCE 108)년이다. 이 때의 북부여는 고오루단군 13년이다. 임금께서는 사람됨이 호방하고 영준하며 용병을 잘 하셨…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11-20  |  Hit: 2140
65. 북부여기 [복애거사 범장 찬] 북부여기상 _ 3세 단군 고해사 / 4세 단군 고우루
북부여기 _ 복애거사 범장 찬 3세단군 고해사 _ 재위 49년 ★번조선 유민 최승의 낙랑국 건설 고해사단군의 원년은 임신(단기 2165, BCE169)년이다. 정월에 낙랑 왕 최승이 해성에서 곡식 3백석을 바쳤다. 이에 앞서 최승은 낙랑산(樂浪山)에서 진귀한 보물을 싣고 바다를 건너 마한에 이르러 왕검성(王儉城)에 도읍하였…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11-20  |  Hit: 2059
64. 북부여기 [복애거사 범장 찬] 북부여기상 _ 시조 단군 해모수 / 2세 단군 모수리
북부여기 _ 복애거사 범장 찬 9천년 한겨레사의 잃어버린 고리, 부여사의 진실 *고려의 국운이 다하자 사관(仕官)의 뜻을 버리고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하여 충절을 지킨 두문동 72인 중 한 분이시다. *범장 선생은 통곡하여 말하되 "백이(佰夷)는 누구이며 나는 누구인고 하니 그 품절이 이러하더라"하였다. 태조 이성계가 세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11-20  |  Hit: 2299
63. 단군세기(檀君世紀) 제46세 단군보을 / 제47세 단군고열가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46세 단군 보을 _ 재위 46년 •번조선 왕 시해사건과 고조선 중앙정부의 내분 심화 보을단군 원년은 경진(BCE 341, 단기 1993)년이다.  12월에 번조선 왕 해인(解仁)이 연나라에게 보낸 자객에게 시해를 당하였다. 오가(五加)가 서로 권력을 다투었다. •기후가 번조선의 왕이 되다.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11-20  |  Hit: 2066
62. 단군세기(檀君世紀) 제36세 단군 매륵 / 제43세 단군 물리 / 제45세 단군 여루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36세 단군 매륵 _ 재위 58년 매륵단군의 재위 원년은 정축(BCE 704)년이다.  재위 28년 갑진(BCE 673)년에 지진과 해일이 일어났다. 재위 32년 무신(BCE 673)년에 서쪽 마을 민가에서 다리가 여덟개 달린 송아지가 태어났다. 재위 35년 신해(BCE 670)년에 용마(龍馬)가 천하(天河)에서 나왔는 데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11-20  |  Hit: 487
61. 단군세기(檀君世紀) 제33세 단군 감물 / 제34세 단군 오루문 / 제35세 단군 사벌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33세 단군 감물 _ 재위 24년 감물단군의 재위 원년은 임오(BCE 819)년이다. 재위 2년 계미(BCE 818)년에 주(周)나라 사람이 와서 호랑이와 코끼리 가죽을 바쳤다. 재위 7년 무자(BCE 813)년에 영고탑 서문 밖 감물산(甘勿山) 아래에 삼성사(三聖祠)를 세우고 친히 제사를 드렸는 데, 그 서고문(誓告…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11-20  |  Hit: 464
60. 단군세기(檀君世紀) 제24세 단군연나 / 제25세 단군 솔나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24세 단군 연나 _ 재위 11년 연나 단군의 재위 원년은 정사(BCE 1161)년이다. 임금께서 숙부 고불가(固弗加)에게 명하여 섭정을 맡기셨다. 재위 2년 신축(BCE 1160)년에 모든 왕이 조칙을 받들어 소도(蘇塗)를 증설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국가의 대사가 있거나 재앙이 있으면 곧 하늘에 기도…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11-20  |  Hit: 450
59. 단군세기(檀君世紀) 제20세 단군고홀 / 21세 단군소태 / 22세 단군색불루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20세 단군 고홀 _ 재위 43년 고홀단군의 재위 원년은 신유(BCE 1380)년이다.  재위 11년 신미(BCE 1370)년 가을에 태양이 무지개를 꿰뚫었다. 재위 36년 병신(BCE 1341)년에 영고탑을 개축하시고 별궁을 지으셨다. 재위 40년 정자(BCE 1341)년에 공공(共工)인 공홀(工忽)이 구환지도(九桓地圖)를 만…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9-23  |  Hit: 663
58. 단군세기(檀君世紀) 제15세 단군 대음 / 제16세 단군 위나 / 제17세 단군 여을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15세 단군 대음 _ 재위 51년 대음단군의 재위 원년은 경진(BCE 1661)년이다. 은나라 왕 소갑(小甲) 7세가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였다. 이 해에 세를 개혁하여 80분의 1세법으로 고쳤다. 재위 2년 신사(BCE 1660)년 홍수가 크게 나서 민가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임금께서 심히 불쌍히 여기시어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9-23  |  Hit: 591
57. 단군세기(檀君世紀) 제12세 단군아한 / 제13세 단군흘단 / 14세 단군고불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12세 단군 아한 _ 재위 52년 아한단군의 재위 원년은 정해(BCE 1834)년이다. 재위 2년 무자(BCE 1833)년 4월에 외뿔 달린 짐승이 송화강 북변에 나타났다. 가을 8월에 임금께서 나라를 순행하시다가 요하(遙河)의 왼쪽에 순수관경비(巡狩官境碑)를 세우고, 역대 제왕의 명호를 새겨 전하셨다. 이…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9-23  |  Hit: 642
56. 단군세기(檀君世紀) 제10세 단군 노을/제11세 단군 도해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10세 단군 노을 재위 59년 노을단군의 재위 원년인 신묘(BCE 1950)년에 큰 동산을 만들어 처음으로 야생동물을 기르셨다. 재위 2년 임진(BCE 1949)년에 임금께서 친히 읍락에 행차하여 민정을 살피고 위로하시고 어가를 멈추고 야외에 머무르실 때 현자가 많이 따랐다.  재위 5년 을미(BCE 1946)…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8-28  |  Hit: 568
55. 단군세기(檀君世紀) 제7세 단군 한율/제8세 단군 우서한/제9세 단군 아슬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7세 단군 한율 재위 54년 갑인 원년(B.C.2047)  정미 54년(B.C.1994), 단제께서 붕어하시니 우서한(于西翰)이 즉위했다. 제8세 단군 우서한(일명 오사함) 재위 8년 우서한 단군이 재위 원년은 무신(BCE 1933)년이다. 임금께서 '20분의 1 세법'를 정하시고 물자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을 서로 통하…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8-28  |  Hit: 576
54. 단군세기(檀君世紀) 제4세 단군 오사구/제5세 구을 단군/제6세 단군 달문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4세 단군 오사구 재위 38년 ★몽고왕 임명과 인삼의 유래(1-1) 오사구단군의 재위 원년은 갑신(BCE 2137)년이다. 임금께서 아우 오사달(烏斯達)을 몽고리한(蒙古里汗, 몽골지역이 단군조선의 영역)으로 봉하셨다. 혹자는 지금의 몽고족이 그 후손이라 말한다.  겨울 10월에, 북쪽을 순수(巡狩,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8-28  |  Hit: 657
53. 단군세기(檀君世紀) 제3세 단군갸륵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3세 단군갸륵 재위45년 ★신과 왕과 종과 전의 도에 대한 말씀(1) 갸륵단군의 재위 원년은(BCE 2182)년이다. 5월에 임금께서 삼랑(三郞, 삼신을 관장하는 관직) 을보륵(乙普勒)을 불러 "신(神)과 왕(王)과 종(倧)과 전(佺)의 도"를 하문하셨다. 보륵이 엄지손가락을 깍지 끼고 오른손을 왼손 위에 포…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8-28  |  Hit: 491
52. 단군세기(檀君世紀) 제2세 부루단군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제2세 단군 부루 재위 58년 ★제후 우순이 정한 국경을 바로 잡으심(1) 부루단군의 재위 원년은 신축(BCE 2240)년이다. 임금께서 어질고 복이 많아서 재물을 많이 쌓아 큰 부를 누리셨다. 백성과 더불어 산업을 다스리니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매년 봄가을에 나라 안…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8-28  |  Hit: 486
51. 단군세기(檀君世紀) 제1세 단군왕검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국조왕검 재위 93년 ★단군왕검의 탄강(誕降)과 계천(繼天):단군왕검의 혈통과 조선의 건국 '고기(古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되어 있다. 왕검(王儉)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요, 어머니는 웅씨왕(熊氏王)의 따님이다. 신묘년(BCE 2370)년 5월 2일 인시에 박달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태어나시니, 신인(…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8-28  |  Hit: 496
50. 행촌 이암 _ 단군세기(檀君世紀) 서문
단군세기(檀君世紀) _ 행촌 이암 편 *이암(1297~1364), 본관은 고성이씨, 호는 행촌, 시호는 문정이다. *고려 충렬왕 23년(1297), 경상도 김해, 강원도 회양 부사를 지낸 아우(李瑀)의 장남이자 고성이씨 9대손으로 태어났다. *10세 충렬왕(32년, 1306)때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에 올라 단군왕검의 역사 의식을 가슴에 새기고 고려를 동방의 맑고…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8-28  |  Hit: 467
49. 원중동 찬_삼성기 하편
원중동 찬 삼성기하편 *환국의 실체와 배달의 역년을 밝히고 배달 성웅 치우천황의 진면목을 들어내다. *원동중(元董仲 ?)의 자세한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세조실록'에, 세조가 팔도관찰사에게 수거하도록 유시한 도서 목록에 안함로와 더불어 '삼성기'의 저자로 기록되어 있다. 한암당 이유립은 원동중을 고려 때 인물로 추정하…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7-15  |  Hit: 734
48. 안함로 찬_삼성기 상편
 안함로 찬 삼성기상편  *아찬을 지낸 시부(時賦)의 손자, 신라 진평왕 때 도승, 안홍법사, 안함태화상이라고 부르며, 신라 십중 중 한 사람이다. *시원의 신교 선맥을 계승하여 유불선의 정수를 신교 우주론으로 정리하였으며, 신교문화의 상수철학과 심신.칠성문화의 원형을 밝혔다. *삼성기 상은 환국~배달국~단군조…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7-15  |  Hit: 577
47. 이맥의 태백일사 제8_고려국본기
이맥의 태백일사 제8 고려국본기 ★고려말, 왕조의 분열과 옛영토 회복(14-1) 천수 기원 439년은 경효왕(공민왕) 5년(단기 3689, 1356)이다. 이해 여름 4월 정유(丁酉)에 기철(奇轍, 고려말기의 권세가, 몽골명 빠이앤부카), 태감 권겸(權謙), 경양부원군 노책(盧頙) 등이 반역을 꾀하다가 형벌을 순순이 받아 죽었다. 정지상을 석방하…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7-15  |  Hit: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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