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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진(東晉) 조정, 모용황의 전연을 북방의 패자로 인정하다.
  
   작성자 : 정길선
작성일 : 2017-05-22     조회 : 328  

343년 전연은 우문귀(宇文歸)가 국상(國相) 막천혼(莫淺渾)을 보내 모용황을 공격하니 제장들이 맞서 싸울 것을 청했으나 모용황은 허락하지 않았다. 막천혼은 모용황이 자신을 두려워한다고 여겨 전혀 방비하지 않았다. 이 때 모용황은 모용한(慕容翰)과 기병들을 보내 막천혼의 군사들을 치게 하니 막천혼(莫淺渾)이 대패하여 혼자 화를 면하며 도주했고, 모용한이 막천혼의 군사들을 모두 참수했다. 그리고 모용황(慕容皝)이 몸소 군현(郡縣)들을 순행하며 농사와 양잠을 독려하고 돌아와 용성(龍城)에 궁궐을 세웠다. 그렇게 독자적인 국가로써 전연의 위치는 굳건해지게 되고 모용황의 생전에는 화북 지방에서 적수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세력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344년 모용황은 기병 2만을 이끌고 친히 우문귀(宇文歸)를 공격하였고 모용한(慕容翰)과 모용수(慕容垂)를 선봉으로 삼았다. 우문귀가 부장 섭혁우(涉奕于)를 보내 모든 군사력을 동원해 모용한(慕容翰)에게 항거했다. 모용황이 급히 사자를 보내 모용한에게 섭혁우와 정면대결 보다는 방심한 때를 노려 기습하라고 명을 내렸다. 그러나 모용한은 속전속결로 마무리해야 한다 하여 곧바로 공격했다. 그리고 섭혁우를 죽이고 우문귀의 정예병들을 모두 격파하니 우문귀는 멀리 막북(漠北)으로 달아났다.


모용황이 우문씨 영토를 차지하여 1천여 리 땅을 개척하고 우문귀의 부(部) 5만여 락(落)*을 창려(昌黎)로 옮겼다. 그러면서 섭혁우성(涉奕于城)을 위덕성(威德城)으로 이름을 고치고, 음지지례(飮至之禮)*를 행하였다. 이와 함께 각기 차이를 두어 논공행상(論功行賞)하였다.도성 개선제 이후 논공행상은 주로 북방민족의 풍속에서 많이 유래되는데 이는 각기 부족장들의 사기를 높이는 한편 왕실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는데 지대한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음지지례는 주로 승리에 대한 감사를 제례로 표현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는 천자의 봉선의식과 매우 흡사하며 이미 이 때부터 모용황에게 천자의 개념이 들어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 음지지례(飮至之禮)는 종묘에 고하는 개선의식으로 보인다. 


 * 1락(落)은 1戶와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위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천자의 개념이 들어가 있었던 것에 두 가지 기록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경제적 할당 원칙(Economic principles of allocation)*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다음과 같은 과정이 경제적 할당 원칙(Economic principles of allocation)이라 볼 수 있는데 목우(牧牛)를 가난한 집에 대어주고 원(苑)에서 농사짓게 하고는 관에서 수확량의 8할을 거두고 나머지 2할은 개인이 가지게 하였다. 개인소유의 소가 있으나 농지가 없어 또한 원(苑)에서 농사짓는 자의 경우는 공적으로 그 7할을 거두고 3할은 개인이 가지게 하였다. 이와 같은 제도는 국가의 제정을 튼실히 하는 한편 기아와 기근에 대비하기 위한 경제 정책이었다. 이렇게 효과적인 경제정책으로 전연은 멸망할 때까지 기근과 흉년으로 고생한 기록 없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전연의 경제제도는 후일 북위가 화북을 통치하였을 때 효문제(孝文帝)에 의해 받아들여져 북위의 국가적 경제제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 Economic principles of allocation 는 켈빈 테라스(Kelvin Terrace)가 고안한 경제 원리로 계산한 10에서 백분율 및 비율을 소수로 나타내었을 때, 소수 첫째 자리, 소수 둘째 자리, 소수 셋째 자리를 이르는 할푼리 원칙에서 유래되었다.


그리고 용산(龍山)에서 용에 대해 제례를 지내기도 했는데 이를 상서롭다 하여 용산에 절을 세우기도 하였다. 용에 대한 제례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당시 흑룡(黑龍)과 백룡(白龍) 각 하나씩이 용산(龍山)에서 보이니, 모용황이 친히 군료(群僚)들을 이끌고 가서 구경하고 용과 2백여 보 떨어진 곳에서 태뢰(太牢)의 제사를 지냈다. 두 마리 용이 서로 머리를 교차하며 빙빙 돌아서 날아다니며 놀다가 뿔을 풀고는 떠났다. 모용황이 크게 기뻐하며 궁으로 돌아온 뒤 그 경내(境內)의 죄인들을 사면하고, 새로 지은 궁(宮)을 화룡(和龍)이라 명명하고 산 위에 용상불사(龍翔佛寺)를 세웠다."


위 사료를 참조하면 흑룡과 백룡이 용산에서 보여 모용황이 친히 구경했다 하였다. 이것의 상징은 천자의 상징으로 흑과 백은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색으로 선비 의 대선우의 권력을 상징했다. 이를 제사 지냈다는 것은 하늘과 땅의 용신(龍神)에게 선택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머리를 교차하며 노는 것이 모용황의 전성기를 의미한다. 그리고 용황이 기뻐했다는 것은 용이 노는 모습을 보고 전연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것으로만 보았기 때문이다.*


* 아라이 히데키(新井秀樹)는 이를 선비의 샤머니즘적 관점으로 보았다. 선비의 샤머니즘은 다른 기마유목민족들의 샤머니즘과는 달리 색깔론적인 부분을 중요시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치자를 상징하는 색깔이 많았다. 예를 들어 붉은 색 => 선우 흑색과 백색 => 선우의 권위, 푸른 색 => 제사장을 상징한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의 사료를 가지고 예시를 들어 모용황이 천자와 다름없는 개념을 보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천자의 개념들이『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에 서술되었던 것은 저마다 천자를 칭한 선비의 각 부족장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진서(晉書)』에서도 서술하고 있는데 그것은 동진 황실이 모용황을 북방의 패자로써 인정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卷 三「前燕錄」第 三. [본문] 十二年四月,有黑龍一、白龍一見於龍山。皝率群寮觀之,去龍二百步,祭乙太牢二,龍交首嬉翔,解角而去。皝大悅,赦境內,號新宮曰和龍。立龍翔佛寺於山。皝雅好文籍,親造《太上章》以代《急就》又著《典誡》十五篇,並以教胄子。;『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원문은『한위총서(漢魏叢書)』에 보존된 16권본을 그대로 실었다. 북위 때 사람인 최홍(崔鴻)이 지은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는 현전하지 않으며, 『진서(晉書)』,『태평어람(太平御覽)』,『책부원귀(冊府元龜)』등에 인용된 조각들을 모아 후대인이 복원, 편집한 몇가지 집본(輯本)만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태평어람(太平御覽)』 권121에 인용된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에도 똑같은 내용의 모용황 12년 기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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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황의 전연, 우문선비를 물리치고 화북평원의 비옥한 토지를 차지했다.

사진은 모용황이 지배한 화북평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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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2-03  |  Hit: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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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5-18  |  Hit: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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