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아카데미_삼일학 연구원
삼일학연구원 최근게시글

춘천 중도 선사유적지
[이덕일 역사TV] 세계적인 고조선 유적지에 레고…
[춘천 중도 고조선 유적지의 역사적 고찰] 3. 단…
[춘천 중도 고조선 유적지의 역사적 고찰] 2. 고…
[춘천 중도 고조선 유적지의 역사적 고찰] 1. 춘…
[반크] 레고랜드 플라스틱 장난감에 의해 어이…
정길선의 북방유라시아 유목사 산책
포르투갈의 고인돌 문화 - 카스트로 문화(Castro c…
알타이의 텡그리를 바라보며...
투르크-타타르의 Умай (우마이) 여신에 대하여
페르가나의 지형
고대 중앙아시아 유목민족들의 개념
유범식의 천지자연의 법 조선철학
3. 혁명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우리의 조선…
3. 혁명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2. 뿌리없는 사상적 흐름을 경계하며
제5장 한국 사회운동 단편 - 1. 노동자운동의 기…
존엄어린 죽음 - 인신공양 / 평화의 땅에서 살육…
팔봉산의 하나민족 이야기
한국인의 하나복본 5
한국인의 하나복본 4
한국인의 하나복본 3
한국인의 하나복본 2
한국인의 하나복본 1
한길 백공종사의 배달학당
白空 한길 종사님의 천부경 강의(73)
한길 백공종사님의 천부경 강의(72)
한길 백공종사님의 천부경 강의(71)
천부경을 빛깔로...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천일…
천부경을 빛깔로...析三極無盡本(석삼극 무진본
화니의 재미있는 桓세상이야기
[원효대사와 한桓철학 13]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원효대사와 한桓철학 12] 잘못됨을 알면서도 바…
[원효대사와 한桓철학 11] 무엇보다 홍익하는 자…
[원효대사와 한桓철학 10]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원효대사와 한桓철학 9] 애국애족은 쉽지 않다.…
김응렬의 생각없이 읽는 철학
[책속의 한 줄 - 3_4] 요가난다 자서전(기리 발라)
[책속의 한 줄 - 5_3] Conversations with God : book 3
[책속의 한 줄 - 5_2] Conversations with God : book 2
[책속의 한 줄 - 5_1] Conversations with God : book 1
[多夕日誌 공부 - 9] 張橫渠의 西銘
이강산의 통일을 위한 한민족 역사공부방
가섭원부여기 [복애거사 범장 찬] 시조 해부루
북부여기 [복애거사 범장 찬] 북부여기하 _ 5세 …
북부여기 [복애거사 범장 찬] 북부여기상 _ 3세 …
북부여기 [복애거사 범장 찬] 북부여기상 _ 시조…
단군세기(檀君世紀) 제46세 단군보을 / 제47세 단…
조홍근의 홍익인간 7만년 역사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조선(朝鮮) 제27대 두밀 …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조선(朝鮮) 제27대 두밀 …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조선(朝鮮) 제26대 추로 …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조선(朝鮮) 제25대 솔나 …
[홍익인간 7만년 역사] 조선(朝鮮) 제25대 솔나 …
박현우의 가림토한글
한울(○).가를(十)
을미일 왕께서 아뢰시니
고한글 가릶톬
動動歌(동동가)
한 얼을 찾아서. [산해경 해내북경..氷夷(빙이)…
김용성의 태극한글 "신획"
[미치다]의 어원은 [밑+치다]입니다. (2)
마츄픽츄는 원주민 언어로 오래된 이라는 뜻
치우천황은 누구인가? 치우기록들!
시애틀에 대한 어원 고찰
우리말로 읽어야 뜻을 아는 영어
천부경, 삼일신고를 논하다
[참한역사신문] 마고천부경(麻姑天符經) 해독 …
[참한역사신문] 천부경의 내력
[참한역사신문] 묘향산 석벽본 천부경(天符經) …
[참한역사신문] 부도지와 천부…
[조홍근의 천부역사태학원] 하늘, 하늘님이란 - …
치화경治化經 인간366사
인간366사 제8훈 응함 _ 제6장 「응함」은 작음으…
인간366사 제8훈 응함 _ 제5장 「응함」은 큼으로…
인간366사 제8훈 응함 _ 제4장 「응함」은 가득함…
인간366사 제8훈 응함 _ 제3장 「응함」은 맑음으…
인간366사 제8훈 응함 _ 제2장 「응함」은 중히 …
성미경의 삼일사랑방
2022 배달문화원 애국가 - 독립군가
[KBS 다큐] 대장경에 담긴 '천년의 진리' -…
[배달문화원 개천이야기9-02] 3·1독립선언서(三…
[배달문화원 개천이야기9-01] 대한독립선언서(大…
[배달문화원 개천이야기 9] 대한독립선언서와 3…

jgs.jpg  정길선  북방유라시아 유목사 산책
 
  전연, 부여와의 전쟁과 모용황의 죽음
  
   작성자 : 정길선
작성일 : 2017-05-23     조회 : 305  

모용황은 학문적인 부분과 인재 양성을 동시에 진행했는데 이는 초기의 과거제도를 창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모용황은 인재를 양성하는 방식으로 대신(大臣)의 자제(子弟)들 중 관학생(官學生)이 된 자에게 고문생(高門生)이라는 칭호를 하사했다. 그리고 학문의 진흥을 위해 옛 궁에 학교를 세워 활을 쏘고 수련하면서 공부 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수련에 완숙하고 공부 기간을 마친 고문생들을 매월 임관(臨觀)하여 우열을 가릴 수 있도록 고시(考試)를 보았다. 여기서 도출되는 고시(考試)는 바로 초기의 과거제도이다. 이와 같은 고시를 통하여 인재를 배출했고 문화적인 부분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모용황이 본래 문적(文籍)을 좋아하고 강학하는데 부지런하여 학생이 매우 많아 천여 명에 달했다. 친히「태상장(太上章)」을 지어『급취(急就)』*를 대신하고 또『전계(典誡)』15편을 저술하여 제후들과 귀족자제들에게 가르쳤다. 모용황 스스로 학생을 가르치는 스승이 되고 학술적으로 뛰어난 인재들을 키워내어 차후 문치국가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치적인 부분은 앞서 서술한 것과 같이 후일 북위가 화북을 통일하면서 비로소 발전하게 되었다.


* 『급취(急就)』는 학동들의 문자 교육용 자서(字書)의 하나. 전한(前漢) 원제(元帝) 때(B.C 48년~33년) 황문령(黃門令) 사유(史游) 저작. 전 4권. 책 이름은 이 책의 맨 처음에 나오는 급취(急就: 속성으로 이룸)라는 2자(字)에서 유래하는데 초서체의 일종인 장초(章初)를 가르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여『급취장(急就章)』이라고도 부른다.『창힐편(倉頡篇)』『훈찬편(訓纂篇)』『범장편(凡將篇)』『방희편(滂喜篇)』등과 함께 한(漢)나라 때의 문자 교육용 서책 가운데 현재까지 전해지는 유일한 저서인 동시에 이러한 종류로 완전하게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책이다. 당시의 상용 한자 약 1,900자를 성씨(姓氏)·의복·음식·기명(器皿)·충어·복식·음악 및 궁실·식물·동물·질병·약품·관직·법률·지리 등 물명(物名)과 인명 등을 열거하여 글자를 배우는 동시에 각각의 사물들에 관한 간략한 지식도 습득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이를 3자구(字句), 4자구, 또는 7자구로 배열한 후 각운(脚韻)을 달아 학습과 암송에 편리하도록 만들었는데 그 압운(押韻)은 음운사(音韻史)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된다. 구본은 32장으로 되어있는데 책의 말미에 후인들이 보강하거나 고쳐 놓은 부분이 덧붙여 있다. 오(吳)나라 황상(黃象)의 31장 본과, 송 태종이 쓴 34장 본이 있으며 각 사본마다 내용이 약간 다른 곳도 있다. 현존하는 판본은 원(元)나라의 서예가인 조맹부(趙孟부)/ 등문원(鄧文原)의 필사본과 명(明)나라 때 양정(楊政)의 송강학부(松江學府) 석각본이 있는데 모두 장단점이 있다고 한다. 주석서로 당나라 때 안사고(顔師古)의 주와 송나라 때 왕응린(王應麟)의 보주가 있으며, 『소학회함(小學匯函)』과 『학진토원(學津討原)』이라는 책에도 그 각본이 수록되어 있다.


345년 모용각(慕容恪)이 고구려(高句麗)의 남소(南蘇)성을 함락하고 수비병을 둔 뒤에 돌아왔다. 이것은 고구려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으로 차후에 있을 전연에 대한 공격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리고 346년에는 대대적으로 부여에 대한 공세에 나섰다. 모용준(慕容儁)이 모용각과 함께 기병 1만 7천을 이끌고 동쪽으로 부여를 습격하여 이기고 부여의 왕과 백성 5만여 명을 포로로 잡고 돌아왔다. 이 때 부여는 전연의 공격으로 거의 멸망상태인 것으로 보이고 일부 부여인들은 좀 더 북쪽으로 도망하여 흑룡강 일대에서 부족을 이루게 되었는데 흑룡강 부여인들은 광개토태왕 때 고구려에 일시 병합되었다.


348년 모용황은 52세로 승하했다.* 모용황은 15년간 제위*하고 전연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제왕이었다. 후일 모용준이 황제로 칭한 뒤에 모용황을 문명황제(文明皇帝)로 시호를 추증하였고 종묘에 모셔 매해 제사를 지냈다. 이러한 모용황의 뒤를 이어 태자인 모용준이 연왕(燕王)으로 즉위했다.


* 『진서(晉書)』에는 모용황의 죽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래되고 있다.


모용황이 일찍이 서쪽변경에서 사냥한 일이 있었다. 이때 하수를 건너려 하다 부로(父老) 한명을 보았는데 붉은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있었다. 그가 손을 들어 모용황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은 사냥터가 아니니 왕은 돌아가시오.”


이 일을 숨긴 채 말하지 않고 마침내 하수를 건너서는 연일 사냥감을 많이 잡았다. 뒤에 흰 토끼를 보고 말달려서 활을 쏘려다 말이 쓰러져 모용황이 부상을 당하니 이에 전에 부로를 보았던 일을 얘기하였다. 연(輦)을 타고 궁으로 돌아와 모용준(慕容儁)을 불러 뒷일을 맡겼다.


영화(永和) 4년(348년)에 죽었다. 15년간 재위하고 죽을 때의 당시 나이는 52세였다. 모용준이 제호를 참칭한 뒤에 모용황을 문명황제(文明皇帝)로 추시(追諡)하였다. ;『진서(晉書)』, 卷 百九,「載記」, 第九, <慕容皝傳> [본문] 皝嘗畋于西鄙, 將濟河, 見一父老, 服朱衣, 乘白馬, 擧手麾皝曰:「此非獵所, 王其還也.」 祕之不言, 遂濟河, 連日大獲. 後見白兎, 馳射之, 馬倒被傷, 乃說所見. 輦而還宮, 引儁屬以後事. 以永和四年死, 在位十五年, 時年五十二. 儁僭號, 追諡文明皇帝.


* 이를 역산하면 모용황 생몰 297년~348년이고 재위는 334년~348년이다. 이 재위년도는 유년칭원법을 전제로 계산한 것이며, 앞서 서술한 것과 같이 실제로 모용외가 죽고 모용황이 계위한 해는 333년이므로 실제 재위년도는 333년~348년 이다. 그리고 연왕(燕王)재위는 337년~348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6939309_1357047921020938_7174642481790489123_n.jpg

하북성 석가장 (전연 용성)의 선비족 수도임을 밝혀주는 마상(馬狀)



 
 
TOTAL 170
44. 동진(東晉) 조정, 모용황의 전연을 북방의 패자로 인정하다.
343년 전연은 우문귀(宇文歸)가 국상(國相) 막천혼(莫淺渾)을 보내 모용황을 공격하니 제장들이 맞서 싸울 것을 청했으나 모용황은 허락하지 않았다. 막천혼은 모용황이 자신을 두려워한다고 여겨 전혀 방비하지 않았다. 이 때 모용황은 모용한(慕容翰)과 기병들을 보내 막천혼의 군사들을 치게 하니 막천혼(莫淺渾)이 대패하여 혼자 화…
Name: 정길선  |  Date: 2017-05-22  |  Hit: 328
43. 티베트 강족 - 마우리 왕조
강족과 티베트 원주민 연합부족은 기원전 187년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브리하드라타(Vlihadrata)가 50만 대군을 거느리고 네팔 팔레우치(palleuch)로 침략해오자 이를 격퇴했고 마우리아 군을 추격하여 아삼(asam)지역까지 정벌하였다. 이 때의 마우리아의 패배는 인도 마우리아 왕조가 패망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마우리아 왕조의 왕 브…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7-11-14  |  Hit: 328
42. 춘추시대 오(吳), 월(越)이 스스로는 황제 후손을 주장
춘추시대 오(吳), 월(越)이 스스로는 황제 후손을 주장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오나라는 주나라 희성, 월나라는 하나라 사성으로 정의된다고 하였다. 사마천은 <사기-월왕구천세가>에서 월나라 국성은 사(姒)씨로서 하 왕조에서 나왔다고 한다. 실제로 그 기록은 있다. (越王句践, 其先禹之苗裔, 而夏后帝少康之庶子也.) 그리고 &l…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1-14  |  Hit: 328
41. 우문선비의 요동, 요서 지역 정착과 모용선비와의 관계
우문선비는 강력한 세력을 일으키던 부족은 아니었으나 북위가 건국되기 이전에는 주로 요동과 요서지역에서 영위하였으며 주로 목축업을 하였다. 주로 목축업을 하던 지역은 오환의 옛 영토인 적봉과 서랍목륜하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지역은 고구려, 부여와 주로 국경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었고 때로는 고구려의 보호를…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327
40. 걸복선비의 중원 진출
걸복선비는 토욕혼, 농서지역에 정착하면서 세력을 키워갔다. 해당 지역은 원래 흉노의 점령지였고 흉노의 기원지로 추정되는 기련산(祁連山)과 언지산(焉支山)이 근교에 있었던 지역이었다. 그리고 두 산 근처에 독발선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걸복선비는 선비의 역사에 단 선비, 모용선비, 탁발선비처럼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그…
Name: 정길선  |  Date: 2017-05-19  |  Hit: 325
39. 남량(南凉)의 멸망과 독발선비의 후예, 티베트로 이주하여 토번을 …
독발이녹고 사후, 독발녹단이 즉위하여 남량을 통치했다. 아버지는 독발사복건이고 독발오고(禿髮烏孤), 독발이녹고(禿髮利鹿孤)의 동생이다. 남량은 세습 없이 형제상속으로 제위를 이어갔다. 이것은 독발사복건이 독발녹단의 재능을 높이 사서 후계자로 삼고 싶어 하였고, 독발오고와 독발이녹고는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따라 형제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0  |  Hit: 325
38. 모용준, 전연의 황제로 즉위하다.
352년 단 선비의 단근(段勤)이 당초 모용준에게 귀부했었다가 그 뒤에 다시 반기를 들었다. 모용준이 모용각(慕容恪)과 상국(相國) 봉혁(封弈)을 보내 안희(安喜)에서 염민(冉閔)을 치고, 모용수(慕容垂)는 역막(繹幕)에서 단근(段勤)을 치고, 모용준은 중산(中山)으로 가서 모용각과 봉혁의 군대를 위하여 미리 주둔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
Name: 정길선  |  Date: 2017-05-23  |  Hit: 325
37. 걸복선비, 서진(西秦)의 멸망과 마무리
걸복치반의 뒤를 이은 걸복모말(乞伏暮末)은 즉위하자마자 북량의 침입을 받았다. 북량은 끊임없이 서진을 공격했으며 그것은 북쪽의 위협인 서진을 정복해야 북위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북량의 침략으로 서진 정권은 영토를 조금씩 잃어갔고 농서 지역과 산서성에 쥐었던 패권마저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
Name: 정길선  |  Date: 2017-05-19  |  Hit: 322
36. 모용외의 중원 공략과 모용황의 등장
배억(裴嶷)이 건업(建鄴)으로부터 돌아올 때 동진에서 사자를 보내 모용외를 감평주제군사(監平州諸軍事), 안북장군(安北將軍), 평주자사(平州刺史)로 임명하고 식읍을 2천 호(戶) 늘려주었다. 321년에는 동진에서 모용외에 사신을 보내 사지절(使持節), 도독유주동이제군사(都督幽州東夷諸軍事), 거기장군(車騎將軍), 평주목(平州牧…
Name: 정길선  |  Date: 2017-05-20  |  Hit: 320
35. 백제 개로왕, 북위 효문제에 표문을 올리고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472년 백제에서 사절들이 북위에 들어와 국교(國交)를 요청하고 다음과 같은 표문을 올렸다. “제가 동쪽 끝에 나라를 세웠으나, 고구려가 길을 막고 있어서, 비록 대대로 대국의 교화를 받았으나 번국 신하의 도리를 다할 수 없었습니다. 멀리 궁궐을 바라보면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은 끝이 없으나, 북쪽의 찬바람으로 말미암아 응할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318
34. 명나라의 부패한 환관정치가 불러온 북로의 화(北虜之禍)
명나라의 부패한 환관정치가 불러온 북로의 화(北虜之禍) 1. 환관 왕진의 전횡 왕진은 울주(蔚州) 사람으로 근본이 없는 집안의 천한 건달이었으나 글을 좀 읽어 여러번 과거에 응시했으나 모두 낙방했다. 그러한 현실적인 부분으로 인하여 현청의 교관(敎官)으로 재직하였는데 이 때부터 부정적인 방식으로 재산을 모았다. 이것이 감…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1-22  |  Hit: 318
33. 모용인의 반란과 모용황의 토벌
333년 5월에 모용황이 요동공의 지위를 이었고 평북장군(平北將軍) 대행이자 평주자사(平州刺史)가 되어 부(部) 내부를 장악했다. 같은 해 우문걸득귀(宇文乞得龜)가 그의 별부(別部) 일두귀(逸豆歸)에 의해 축출되어 도망치다가 객사했다. 이에 모용황은 일두귀의 행위를 용납하지 못한다고 하여 본격적으로 거병하였다. 모용황이 기병…
Name: 정길선  |  Date: 2017-05-20  |  Hit: 314
32. 모용황과 고구려의 전쟁 - 고구려의 치욕
339년, 모용황이 고구려를 공격하여 신성에 이르렀다. 전연의 군대가 막강하여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화의를 청하자 다시 회군하여 돌아왔다. 340년에는 고국원왕이 태자를 모용황에게 보내 입조하게 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卷第 十八,「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第 六, <故國原王> [본문] 九年, 燕王皝來侵, 兵及新城…
Name: 정길선  |  Date: 2017-05-22  |  Hit: 313
31. 북위 태무제의 정복 전쟁
명원제(明元帝)는 남조 송(宋)나라와 자주 전쟁하여 하남성(河南省)을 함락했다. 그리고 강대국인 고구려와 국경을 마주 보게 되자 고구려와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다. 양국은 사신이 서로 왕래했고 상인들은 고구려와 북위의 영토에서 주로 교역하여 양국의 문물이 서로의 국가에 전파되었다.* * 명원제 시기에는 사신이 왕래한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6  |  Hit: 313
30. 걸복선비, 홀복씨의 기원
걸복씨의 기원은 중국 문헌사료에 의하면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단지 단석괴의 단 선비에 의해 갈려나왔다는 기록이『위략(魏略)』에 존재하고 있으나 이 역시 확실하지 않다.『흉노사』에는 당시 걸복씨가 부여와 인근에 접경하고 있던 씨족이었다는 기록만이 걸복씨에 대한 단 선비 이전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걸복씨는 흉…
Name: 정길선  |  Date: 2017-05-12  |  Hit: 312
29. 고구려계 고조의 북위에 대한 철권통치와 그의 죽음과 몰락
선무제는 외가 인척들에게 매우 극진하여 외삼촌인 고조 형제들에게 관직과 작위를 주고 외조부 고양(高陽)과 외조모에게도 작위를 추증하였다. 그리고 501년, 국정을 측근이나 외척인 고조(高肇)에게 맡겼고 선무제는 정치보다는 오히려 향락에 심취하여 지냈다. 게다가 불교에 입도하여 점차적으로 불교신앙에 빠지면서 오히려 정치…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310
28. 바이칼
바이칼의 맑은 물..  간만이다.. 아직 얼지 않은 설경이라 더 운치있는듯 하다. 바이칼이 얼려면 최소 영하 35도는 가야한다.  러시아에는 바이칼의 맑은 물, 바이칼 생수가 있다. 바이칼은 요양하기도 좋은 곳.. 그저 고향에 온것 같은 뭉클함이 있달까? 멀리 보이는 눈 쌓인 알타이-사얀 산맥.. 알흔 섬 들어갈 때 가장 가까…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9-12-09  |  Hit: 310
27. 서고트 왕조의 정치, 문화, 사회의 검토
서고트 왕조의 정치, 문화, 사회의 검토 (Visigoths dynasty of politics, culture, society of review) 오늘 탈고한 이 논문은 고트인들의 서방 진출에 더하여 스페인 지역에 정착한 서고트 인들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인 부분을 검토해보았다. 이들은 처음부터 오늘날의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이 된 것은 아니다.  나는 훈족을 연구하기 위해, …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7-11-20  |  Hit: 309
26. 전연, 부여와의 전쟁과 모용황의 죽음
모용황은 학문적인 부분과 인재 양성을 동시에 진행했는데 이는 초기의 과거제도를 창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모용황은 인재를 양성하는 방식으로 대신(大臣)의 자제(子弟)들 중 관학생(官學生)이 된 자에게 고문생(高門生)이라는 칭호를 하사했다. 그리고 학문의 진흥을 위해 옛 궁에 학교를 세워 활을 쏘고 수련하면서 공부 하는 곳으…
Name: 정길선  |  Date: 2017-05-23  |  Hit: 306
25. 비남인, 아미인들에 관한 연구서
비남인, 아미인들에 관한 연구서 태양과 달.. 三神이 하늘을 우러르고 있고 그 사이에 아미족이 태어났다. 그리고 고구려인처럼 조우관을 쓰며 하늘의 자손이라 했다. 그리고 활도 잘 쏘았다.. 이러면 대만 원주민에 대한 종합적이고 세부적인 결ㄴ도ㆍ이 곧 나올것 같다. 참 알찬 답사였다.
Name: 배달문화원  |  Date: 2018-02-03  |  Hit: 304
24. 초기 선비의 고고학적 검토
초기 선비는 대흥안령산맥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서요하(西遼河)유역, 서쪽으로는 몽골고원의 오논 강에서부터 시라무렌 강까지에 이른다. 대흥안령산맥의 북쪽 지역인 탁발씨의 기원지이고 그보다 남쪽인 선비산은 단 선비의 기원지이다. 그리고 서랍목륜하 지역은 독발씨와 걸복씨의 기원지이고 대흥안령산맥이 끝나는 지점인 서…
Name: 정길선  |  Date: 2017-05-18  |  Hit: 303
1 2 3 4 5 6 7 8 9



- 맨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