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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량(南凉)의 멸망과 독발선비의 후예, 티베트로 이주하여 토번을 ..
  
   작성자 : 정길선
작성일 : 2017-05-20     조회 : 325  

독발이녹고 사후, 독발녹단이 즉위하여 남량을 통치했다. 아버지는 독발사복건이고 독발오고(禿髮烏孤), 독발이녹고(禿髮利鹿孤)의 동생이다. 남량은 세습 없이 형제상속으로 제위를 이어갔다. 이것은 독발사복건이 독발녹단의 재능을 높이 사서 후계자로 삼고 싶어 하였고, 독발오고와 독발이녹고는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따라 형제 상속을 하여 독발녹단에게 왕위가 돌아가게 하였다. 독발오고 치세에는 거기대장군 · 광무공(車騎大將軍·廣武公)에 임명되었고, 독발이녹고 때에는 도독중외제군사 · 양주목 · 녹상서사(都督中外諸軍事 · 凉州牧 · 録尚書事)를 역임하였으며 군사와 나라의 모든 대사를 통괄했다. 그것은 왕위에 오르기 위한 준비일 뿐 아니라 행정적인 부분에서 실적을 쌓게 하려는 독발오고와 독발이녹고의 배려이기도 했다.


독발녹단은 양왕(凉王)에 즉위하고 수도를 낙도(樂都)로 천도했다. 독발이녹고의 정책을 이어받아 후량(後凉)을 지속적으로 공격하였는데, 403년에 후량이 후진에게 나라를 넘기자 후진에 복속하여 종속국이 되었다. 후진의 요흥은 독발녹단을 광무공(廣武公)에 봉하였고 이에 독발녹단은 연호를 파기하고 공(公)작위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독발녹단은 재능이 뛰어났지만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는 재능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통 왕이 될 재능이라면 종속이 아닌 독립국가로 나아가 후진과 대립할 수 있었던 상황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노하라 히로카타(篠原啓方)는 이러한 부분에서 ‘후진에 대한 복속은 세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행위’ 로 규정했다. 시노하라는 5호 16국이라는 시대적 특성상 좀 더 세력이 강한 국가에 종속하여 세력을 성장시킨 다음 독립하는 수순이 많았다는 것을 근거했다. 그렇기 때문에 남량의 독발녹단도 위와 같은 선택을 하였다고 본 것이다.


독발녹단은 북량과 지속적으로 대립하였는데, 406년에는 북량을 공격하여 약탈한 말과 양을 후진에 바쳤다. 요흥은 이러한 독발녹단의 공물을 치하하고 그를 고장(姑臧)에 진수하도록 하였다. 고장의 영유권을 얻은 독발녹단은 고장을 강제로 점령하고 후진의 양주 경영을 종식시켰다. 그리고 뒤이어 고장으로 수도를 옮겼다.

407년에 호하(胡夏)의 혁련발발(赫連勃勃)이 독발녹단과 혼인 동맹을 청하였는데, 독발녹단은 이를 거절하였다. 이에 혁련발발(赫連勃勃)은 남량을 공격하여 동쪽 변경을 약탈하였고, 독발녹단은 호하를 보복 공격하려다 패배했다. 이 패배로 인해 독발녹단의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었고 수도인 고장 인근의 민심이 동요하였으며 반란이 잇달아 발생했다.


408년에는 양왕(凉王)을 자칭하고 연호를 다시 사용하기 시작하자, 이를 후진이 용인하지 않고 남량을 공격했다. 이 때 독발녹단은 큰 피해를 입었으나 걸복씨가 세운 서진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격퇴했다. 이런 정황에서 계속된 반란으로 국정이 혼란해졌고 결정적으로 410년에 본거지인 영남(嶺南)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고장을 포기하고 다시 낙도로 수도를 옮겼다. 그리고 남량이 떠난 고장에 후진의 군사들이 다시 들어와 지배를 강화했고 이는 후량의 큰 위협이 되었다. (『진서(晉書)』, 卷 百二十六,「載記」, 第 二十六, <禿髮傉檀> 傉檀以姚興之盛,又密圖姑臧,乃去其年號,罷尚書丞郎官,遣參軍關尚聘於興。興謂尚曰:「車騎投誠獻款,為國籓屏,擅興兵眾,輒造大城,為臣之道固若是乎?」尚曰:「王侯設險以自固,先王之制也,所以安人衛眾,預備不虞。車騎僻在遐籓,密邇勍寇,南則逆羌未賓,西則蒙遜跋扈,蓋為國家重門之防,不圖陛下忽以為嫌。」興笑曰:「卿言是也。」)


낙도 천도 이후에도 독발녹단은 북량과 계속해서 대립하였는데 매번 북량에게 패배하여 수도인 낙도까지 위협을 받았다. 410년에도 남량은 북량에 크게 패배하여 낙도를 포위당했고 독발녹단은 아들을 인질로 보내 포위를 풀었다. 그리고 독발씨 세력은 점점 축소되어 결국 북위로 이주하는 세력이 많아졌고 영토는 갈수록 줄어갔다.


그리고 같은 해 서진(西秦)의 침략도 여러 차례 받았다. 그것은 해당 지역에 대한 패권 정책의 일환으로 선비의 부족들을 통합하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414년 4월 독발녹단은 붕괴 일보 직전의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이전에 배반했던 청해호 (靑海湖)부근의 결간부(缺幹部), 을불부(乙弗部)에 대해 직접 기병 7천명을 이끌고 원정에 나섰다. 그러자 이러한 기회를 틈타 서진의 걸복직반이 낙도에 공격해 들어와 남량의 수도 낙도는 함락되었다.


남량 지배하의 3군도 모두 서진에게 항복하였고 독발녹단의 원정군은 결간부(缺幹部), 을불부(乙弗部)의 반란을 진압했으나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상태라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414년 6월에 독발녹단은 서진의 걸복치반에 항복하고 남량은 3대 18년 만에 멸망했다. 그리고 415년 독발녹단은 걸복치반에 의해 독살되고 걸복치반에 의해 경왕(景王)으로 추증되었다.


남량은 3대 18년만에 멸망한 단명한 지방정권이었지만,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거점을 청해성 지구에 두었다. 그리고 청해성 지역의 개발에 나서서 이후 청해 실크로드의 개통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그리고 청해성을 독발씨 세력이 지배하고 있으면서 선비와 기존 청해성, 남쪽의 티베트 문화를 연결하여 문화적 창조를 이루었다는 것에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것은 이러한 다문화적인 부분 수용에 있어 최초로 시도하였다는 것이고 후일 북위가 청해성을 지배하면서 이러한 문화들 적극 수용하였다.


이러한 배경에는 독발녹단의 아들 독발파강(禿髮破羌)이 북위에 항복하면서 이루어졌는데 동진(東晋)의 승려인 법현(法顯)이 청해성 지역을 이용하여 인도까지 유학을 감으로써 첫 번째 불교 유학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중국과 인도와 종교적인 연결성을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편 북위 시기에 독발씨의 경우, 탁발씨와 같은 씨족이었기에 원씨(元氏)의 성을 내려주고, 황족으로 예우하며 일족을 매우 중용하였다. 이후 수, 당 건국의 일원이 되었으며 일족들은 거의 소멸되었다.


한편 독발녹단의 동생 독발변니(禿拔辯尼)는 남량 멸망 후 티베트로 도망쳐 탕구트 족과 함께 토번을 건국했다는 학설도 존재하고 있다.중국 내에 존재하고 있는 독발선비는 소멸되었지만 일부가 티베트로 건너가 토번을 건국하고 황족이 되었다는 것은 토번과 선비와의 후기 관계에 대한 추후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다. 따라서 토번과 기타 선비와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이후 연구에서 밝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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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AL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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