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彭>(팽우) 한배검의 명을 받들어 산천을 다스린 신하이니, 오늘의 성황당(城隍堂, 국사당)에 대한 유래는 이팽우를 위하는 민속이라 한다.
③ <>(우) 우(虞)의 옛글자임.
④ <>(무) 무(無)의 옛글자임.
한울에 대한 말씀 풀이/ 백포 서 일 종사
한배검은 단군을 이름으로서 한얼님이 사람의 몸으로 화하여 내려오신 이요, 맏도비는 벼슬 이름으로서 한배검을 돕는 우두머리이며, 팽우는 한배검의 명령을 받들어 토지를 개척하여, 나라의 터전을 정한이다.
한 울을 설명함에 있어서 허울이니, 바탕이니, 첫끝이니 막끝이니, 위니 아래니, 사방이니, 겉이니 속이니 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가 보고 하는 말이지, 한울 자체로서 보면 아무 것도 없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크게로는 온 누리와, 작게로는 우리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지극히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나 싸고 있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우 리 인간의 육안(肉眼)으로 보이는 지구의 외기(外氣)인 저 푸른 공간과 멀리 까마득하게 쳐다보이는 광막(曠漠)한 허공이 한울의 전체가 아니며, 나의 위치[신관, 身觀]를 중심으로 하여 보면 상하·사방이 있지만 한울 자체[천체, 天體]에서 보면 처음과 끝도 없을 것이요, 동서남북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한울은 허공한 가운데에 허허한 체어천(體虛天)과 공공한 이공천(理空天)이 있다.
무엇이나 다 싸고 있음은 체허를 말함이요, 있지 않은 데가 없다 함은 이 이공을 이른 것이다.
하 나마저 없는 이공천에서 일어나는 온갖 이치(理致)를 곧 천리(天理)라 하고, 이 천리에 의하여 일정한 궤도(軌道)에서 순환(循環)함을 천운(天運)이라 하며, 이 천운에 의하여 생성변화(生成變化)하는 불멸(不滅)의 원칙을 천도(天道)라 한다.
인간이 부정모혈(夫精母血)로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 것은 천리의 작용(作用)이요, 가면 오고 오면 가게 되는 것은 천운의 효용(效用)이요, 나고 자라고 늙고 죽게 되는 것은 천도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므로 푸르고 까마득하게 보이는 저 허공한 한울에는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 추상(推想)하고 인간의 힘으로 측정(測定)할 수 없는 신비성이 내재(內在)하고 있음을 말함이다.
제2장 한얼님에 대한 말씀[신훈, 訓]
한얼님은 그 위에 더 없는 으뜸 자리에 계시사 큰 덕과 큰 슬기와 큰 힘을 가지시고 한울을 내시며 수없는 누리를 주어 헤아릴관하시고(오타인듯: 다스리시고) 만물을 창조하시되 티끌만한 것도 빠뜨리심이 없고 밝고도 신령하시여 감히 이름지 길이 없느니라.
그 음성과 모습에 접하고자 원해도 친히 나타내 보이지 않으시지만 저마다의 본성에서 한얼 씨알을 찾아 보라 너희 머리 속에 내려와 계시느니라.
한얼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 우리로서 받들어 높일 곳이 다시는 더없는 가장 으뜸자리에 계신 이다. 크신 덕으로 모든 생명을 낳고 기르고, 크신 슬기로 모든 몸뚱이를 마르재고 이루며, 크신 힘으로 모든 기틀을 돌리는 것이다.
그 러기 때문에 밝고 신령하시며, 밝고 신령하시기 때문에, 형용하여 이를 길이 없는 것이다. 한얼님은 모습도 말씀도 없으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무리 그 음성을 들으려 하고, 그 모습에 접하고자 원해도, 친히 나타내 보이시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저마다 제 본성에서 찾아보면, 그 한얼님이 이미 우리 머릿속에 내려와 계심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러므로 한얼님이 그 위에 더없는 으뜸자리에 계시다는 것은, 한얼님의 본체(本體)를 이름이요, 다시 그 한얼님이 사람의 머릿속에 내려와 계시다는 것으로써 말하면, 한얼님의 변화하심이 없는 데가 없는 것이니, 그 쓰임[用]을 이르는 것이다.
무형(形)하고 무언(言)하고 무위(爲) 한 한얼님은 우주의 유일자요, 절대자이신 높은 자리에 계시어 대덕으로 만유를 창조하시고, 대혜로 천리를 밝히어 가르치시고, 대력으로 무수한 세계를 주관하시는 밝고 영검한 삼대권능(三大權能)을 인간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뿐만 아니라 무형한 까닭에 그 모습을 볼 수 없고, 무언한 까닭에 그 말씀을 들을 수 없으며, 무위한 까닭에 그 하시는 일을 알지 못하므로 인간은 한얼님의 모습을 보고자 하고 말씀을 들으려 하지만 볼래 무()를 본체(本體)로 하시는 지존(至尊)한 자리이기에 친히 나타내 보이시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품부(稟賦)된 자기 본성을 통하여 정성껏 찾으면 한얼님의 영검이 제 머리속에 내려 계심을 깨닫게 된다.
무소부재(所不在)하고 무소불능(所不能)하신 한얼님께 한갓 헛된 말과 지나친 욕심만으로 소원을 빌어 이루려 하지 말고 오로지 지성일념(至誠一念)으로 항상 발원하면 한얼님의 영검이 내 마음에 내리어 거룩한 그 뜻을 깨달아 행하고 신화(化)의 은총(恩寵)을 받게 된다 함이다.
제3장 한울집에 대한 말씀[천궁훈, 天宮訓]
한 울은 한얼님의 나라라 한울집이 있어 온갖 착함으로써 섬돌을 하고 온갖 덕으로써 문을 삼았느니라 한얼님이 계신 데로서 뭇 신령과 모든「밝은 이」들이 모시고 있어 지극히 복되고 가장 빛나는 곳이니 오직 참된 본성을 통달하고 모든 공적을 다 닦은이라야 나아가 길이 쾌락을 얻을지니라.
한얼님의 나라와 한얼집이 반드시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도 있고 사람의 몸에도 있다. 한밝메(백두산)의 남북 마루가 곧 한얼님의 나라요, 거기에도 사람의 몸으로 화하사 내려오신 곳이, 곧 한얼집이다.
그 리고 또 사람의 몸뚱이가 곧 한얼님의 나라요, 머리는 한얼집이니, 하늘에 있는 것, 땅 위에 있는 것, 사람의 몸에 있는 것, 이 세 한얼집들이 필경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한얼집이 본시 고정해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 따라 한얼님이 오르내리시는 곳도 마찬가지다.
다만 한얼님이 계신 곳은 지극히 복되고 가장 빛나는 곳인데, 지극히 복되다 함은 온갖 착함의 열매요, 가장 빛나다 함은 온갖 덕의 꽃이다.
본 성을 통달한다는 그 통함은 막힘이 없음을 이름이니, 온갖 덕의 지극히 큰 곳이요, 공적을 다 마친다는 그 마침은, 이지러짐이 없음을 이름이니, 온갖 착함의 원만한 곳이다. 온갖 착함의 가장 윗섬돌에까지 올랐으므로 다 마침이요, 온갖 덕의 둘 없는 곳에까지 들어갔으므로 통한다 함이다.
다 만 공적을 다 마친다는 것은, 삼백 예순 여섯 가지 착한 행실을 닦고, 삼백 예순 여섯 가지 음덕을 쌓고, 또 삼백 예순 여섯 가지 좋은 일을 이루는 것을 이름으로서, 그러한 사람이라야 한얼님께 나아갈 수 있고, 그래서 그와 함께 길이 비길 수 없는 쾌락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한울나라 안에 자리한 복락의 세계인 천궁은 한얼님의 뜨거운 사랑과 깊은 은총이 밝게 비치어 있으므로 항상 덕의 꽃이 피고 선의 열매가 맺히는 상서롭고 즐거운 곳이다.
그리고 이 천궁은 한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도 사람의 몸에도 있다.
백두산 남북마루가 한울나라요, 한배검께서 내리신 곳이 천궁이며, 사람의 몸뚱이가 한울나라요, 그 머리가 곧 천궁이다.
백두산상에는 신인(人) 한배검께서 내리시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교화를 펴시고 배달의 이상국(理想國)을 세우신 곳이요, 사람의 머리에는 한배검의 영검이 내리시어 만선(萬善)을 행하게 하는 곳이니 천상·지상·인신(人身)의 세 천궁이 복락의 세계로 볼 때 다를 바 없다.
그 러므로 천궁이란 본시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든지 이 세계에서 쾌락을 누릴 수는 없다. 오랫동안 수행의 고난을 겪고 본성을 통달한 이와 죄악을 범하지 않고 선행과 적덕을 널리하여 공적을 이룩한 사람이라야 천궁에 올라 영원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4장 누리에 대한 말씀[세계훈, 世界訓]
너 희들은 총총히 널린 저 별들을 바라보라. 그 수가 다함이 없으며 크고 작고 밝고 어둡고 괴롭고 즐거워 보임이 같지 않으니라. 한얼님께서 모든 누리를 창조하시고 그 중에서 해누리 맡은 사자를 시켜 칠백 누리를 거느리게 하시니 너희 땅이 스스로 큰 듯이 보이나 작은 한 알의 누리니라. 속불이 터지고 퍼져 바다로 변하고 육지가 되어 마침내 모든 형상을 이루었는데 한얼님이 기운을 불어 밑까지 싸시고 햇빛과 열을 쬐시어 다니고 날고 탈바꿈하고 헤엄질치고 심는 온갖 동식물들이 번성하게 되었느니라.
저 헤아릴 수 없는 뭇 별들은 모두 다 한얼님이 만드신 것이다. 그 무수한 누리 가운데서 해누리 맡은 사자에게 칠백 누리를 거느리게 하셨는데, 사람이 사는 지구는 실로 그 속의 한 누리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는 이 땅덩이를 크게 볼는지 모르나, 실상은 헤아릴 수 없는 저 많은 누리 가운데서 지극히 작은 한 알의 누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저 헤아릴 수 없이 한울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은 그 크고 작음과 밝고 어둠도 제가끔 다르려니와 이는 다 한얼님의 조화신공(造化功)에 의하여 이루어졌음을 생각할 때 그 신비로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중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큰 듯이 보이지만 광막한 우주에 비하면 실로 한알에 자니지 않는 것이다.
한얼님께서는 우주만유를 창조하실 제, 속불을 울려 터뜨리시고 바다와 육지를 마련하신 다음, 뜨거운 햇빛을 쪼이시어 모든 동식물과 인류를 만들어 번식시킨 창세(創世)의 과정을 말씀하신 것이다.
제5장 진리에 대한 말씀[진리훈, 眞理訓]
사 람과 만물이 다 같이 세 가지 참함을 받나니 이는 성품과 목숨과 정기라 사람은 그것을 옹글게 받으나 만물은 치우치게 받느니라. 참성품은 착함도 악함도 없으니 이는「으뜸 밝은 이」로서 두루 통하여 막힘이 없고, 참목숨은 맑음도 흐림도 없으니 이는「다음 밝은 이」로서 다 알아 미혹함이 없고, 참정기는 후함도 박함도 없으니 이는「아랫 밝은 이」로서 잘 보전하여 이지러짐이 없되 모두 참에로 돌이키면 한얼님과 하나가 되느니라.
① <眞性>(진성) 온갖 현상에 두루 퍼져 악함이 없는 본연의 성품. ② <眞命>(진명) 온갖 경우에 순응하여 흐림이 없는 본연의 목숨. ③ <眞精>(진정) 온갖 기틀을 돌려 박함이 없는 본연의 정기. ④ <上嚞>(상철) 한얼님과 덕을 합하여 막힘이 없이 통한 자리. ⑤ <中嚞>(중철) 한얼님과 슬기를 합하여 미혹함이 없이 다 아는 자리. ⑥ <下嚞>(하철) 한얼님과 힘을 합하여 이지러짐이 없이 잘 보전하는 자리. ⑦ <返眞>(반진) 마음에 악함이 없고 기운에 흐림이 없고 몸에 박함이 없이, 착함과 맑음과 후함을 완전히 갖추어 본연의 경지로 돌아감을 말함.
진리에 대한 말씀 해설1/백포 서 일 종사
여 기서 말하는「으뜸 밝은이」와「중간 밝은이」와 「아래 밝은이」는 어떤 차등을 말함이 아니요, 각각 그 성격의 차이를 말함이다. 다시 말하면,「으뜸 밝은이」는 한얼님과 덕을 합하여 막힘이 없이 다 통하고,「다음 밝은이」는 한얼님과 슬기를 합하여 미혹함이 없이 다 알고,「아래 밝은이」는 한얼님과 힘을 합하여 이지러짐이 없이 보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참함으로 돌아가면, 한얼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통하면 온갖 현상에 두루 펴이므로 막힘이 없나니, 그것이 참 성품이요, 알면 온갖 경우에 따라 순응하므로 미혹함이 없나니, 그것이 참 목숨이며, 보전하면 온갖 기틀을 돌리므로 이지러짐이 없나니, 그것이 참 정기이다.
사람과 만물은 선천적으로 한얼님께서 성품과 목숨과 정기의 삼진(三眞)을 받되 사람은 완전하게, 만물은 불완전하게 받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상(理想)을 갖춘 만물의 영장(靈長)이 된다.
이 순선무악(純善無惡)한 참성품은 영각(靈覺)의 이치를 갖추어 만상(萬象)에 막힘이 없으므로 한얼님과 덕을 합한 상철(上嚞)로 통하고, 순청무탁(純淸無濁)한 참목숨은 생존의 이치를 갖추어 만경(萬境)에 미혹(迷惑)됨이 없으므로 한얼님과 슬기를 합한 중철(中嚞)이 알고, 순후무박(純厚無薄)한 참정기는 운동의 이치를 갖추어 만기(萬機)에 이지러짐이 없으므로 한얼님과 힘을 합한 하철(下嚞)이 보전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수행득도(修行得道)에 대한 상중하의 삼품(三品)을 말함이요, 그 공완(功完)의 경지에 이르면 다 같이 하나로 돌아가[귀일, 貴一] 한얼님 자리에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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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사람들은 아득한 땅에 태어나면서부터 세 가지 가달이 뿌리 박나니 이는 마음과 김과 몸이니라. 마음은 성품에 의지한 것으로서 착하고 악함이 있으니 착하면 복되고 악하면 화가 되며, 김은 목숨에 의지한 것으로서 맑고 흐림이 있으니 맑으면 오래 살고 흐리면 일찍 죽으며, 몸은 정기에 의지한 것으로서 후하고 박함이 있으니 후하면 귀하고 박하면 천하게 되느니라.
① <迷地>(미지) 태반(胎盤)에 배태(胚胎)될 때를 말함. ② <著>(착) 착(着)과 같음.
<众>(중) 중(衆)의 옛글자임.
진리에 대한 말씀 해설2/ 백포 서 일 종사
마음은 길흉의 집이요, 기운은 생사의 문이요, 몸은 정욕의 그릇이다. 착함과 맑음과 후함은 한얼님 길에 순종함이라, 그러므로 복이 되며, 악함과 흐림과 박함은 한얼님 길에 거스름이라, 그러므로 앙화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성품과 목숨과 정기의 삼진(三眞)을 받은 뒤 다시 모체(母體)의 태반(胎盤)에서 마음과 김과 몸의 삼망(三妄)의 뿌리 박혀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마음은 성품에 의지되어 착하고 악한 갈래가 생기고, 김은 목숨에 의지되어 맑고 흐린 갈래가 생기고, 몸은 정기에 의지되어 후하고 박한 갈래가 생기게 되므로 이 삼망을 가달이라 한다.
마음은 길흉(吉凶)의 집[宅]이요, 김은 생사(生死)의 문(門)이며, 몸은 정욕(情慾)의 그릇[器]이다.
이 착함과 맑음과 후함은 한얼님 도[道]에 순응(順應)하는 까닭에 복이 되고, 악함과 흐림과 박함은 그 도에 거슬리기 때문에 재앙(災殃)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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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과 가달이 서로 맞서 세 길을 지으니 이는 느낌과 숨쉼과 부딪침이요 이것이 다시 열 여덟 경지를 이루나니, 느낌에는 기쁨과 두려움과 슬픔과 성냄과 탐냄과 싫어함이 있고, 숨쉼에는 맑은 김과 흐린 김과 찬 김과 더운 김과 마른 김과 젖은 김이 있으며, 부딪침에는 소리와 빛깔과 냄새와 맛과 음탕함과 살닿음이 있느니라.
느 낌은 분변하여 아는 임자요, 숨쉼은 드나드는 손님이요, 부딪침은 전갈하는 종에 비길 수 있다. 이 느낌과 숨쉼과 부딪침이 서로 반드시 같지 않으므로, 본체는 바꿀 수가 없으나, 그 쓰임은 또한 혼동할 수 없어, 서로 다른 경계를 이루는 것이다.
삼진과 삼망이 서로 대치(對峙)되는 사이에 느낌과 숨쉼과 부딪치는 세 길이 생기고 이 길은 다시 십팔경(十八境)으로 굴러 이루어진다.
이 느낌 길은 기쁨과 두려움을 함께 일으킬 수 없듯이 가 감정을 같이 하기 어렵고, 숨쉼 길은 찬김과 더운 김을 함께 호흡하기 어려우며, 부딪침 길은 냄새와 맛을 함께 하기 어렵듯이 서로 그 기관을 같이 하여 어울리지 못하고 제가끔 행로(行路)가 있으므로 길[途]이라 하며, 본체는 바꿀 수 없고 쓰임[用]은 혼동할 수 없는 까닭에 경지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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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사람들은 착하고 악함과 맑고 흐림과 후하고 박함을 서로 섞어서 가달길에서 제 맘대로 달리다가 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에 빠지고 말지마는「밝은 이」는 느낌을 그치고 숨쉼을 고루 하며 부딪침을 금하여 한 곬으로 수행하여 가달을 돌이켜 참에로 나아가 큰 조화를 부리나리 참된 본성을 통달하고 모든 공적을 다 닦음이 곧 이것이니라.
세상 사람은 삼망(三妄)에 사로잡혀 욕심물결을 따라 함부로 달아나다가 마침내 고해(苦海)에 빠지고 말지마는, 철인(嚞人) 은 느낌을 그쳐 마음이 평온[心平]하고, 숨쉼을 고루하여 김이 화평[氣和]하며, 부딪침을 금하여 몸이 편안[身康]하므로 만 가지 사특한 생각을 끊고 그 뜻을 바로하여 만 번 꺾어도 물러서지 아니하고, 만 번 흔들어도 움직이지 아니하여 마침내 신비한 기틀을 발함에 이르러 영원히 괴로움을 벗어나서 광명한 천궁(天宮)으로 나아가 무한한 즐거움을 누린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