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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계 고조의 북위에 대한 철권통치와 그의 죽음과 몰락
  
   작성자 : 정길선
작성일 : 2017-05-27     조회 : 309  

선무제는 외가 인척들에게 매우 극진하여 외삼촌인 고조 형제들에게 관직과 작위를 주고 외조부 고양(高陽)과 외조모에게도 작위를 추증하였다. 그리고 501년, 국정을 측근이나 외척인 고조(高肇)에게 맡겼고 선무제는 정치보다는 오히려 향락에 심취하여 지냈다. 게다가 불교에 입도하여 점차적으로 불교신앙에 빠지면서 오히려 정치는 더 멀리하게 되고 나라는 고조를 비롯한 고구려계가 장악하게 되면서 기존의 선비계 귀족들은 더욱 설 자리를 잃었다.


504년에는 고구려와 북위 간에 주고받기로 한 공물의 양이 줄어들자 사신 예실불(芮悉弗)을 보내어 고구려의 사정을 설명하고 통보했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많은 사신들이 왕래하여 북위와 고구려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 (『삼국사기(三國史記)』, 卷第 十九,「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第 七, <文咨明王> [본문] 十三年, 夏四月, 遣使入魏朝貢, 世宗引見其使芮悉弗於東堂, 悉弗進曰, 小國係誠天極 累葉純誠, 地産土毛, 無愆王貢, 但黃金出自扶餘, 珂則涉羅所産, 扶餘爲勿吉所逐, 涉羅爲百濟所幷, 二品所以不登王府, 實兩賊是爲, 世宗曰 ; 高句麗世荷上將, 專制海外, 九夷黠虜, 悉得征之, 甁罄罍耻, 誰之咎也, 昔, 方貢之愆, 責在連率, 卿宜宣朕志於卿主, 務盡威懷之略, 揃披害群, 輯寧東裔, 使二邑, 還復舊墟, 土毛無失常貢也.)


508년 고조의 진언으로 황족의 어른인 숙부 원희와 막내 동생인 팽성왕, 이복동생인 경조왕 원유등 많은 황족들을 죽였다. 그리고 왕숙에 대해서도 자살을 명령했다. 고조는 주살된 함양왕(咸陽王) 희(禧)의 재물, 노비, 땅, 집 등이 모두 발해 고씨의 소유로 삼았고 고조는 순조롭게 승진하여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란 관직에 올랐고, 발해군을 포함하여 기주(冀州)의 대중정(大中正)이 되어 중앙과 지방의 연락관인 지위까지 차지했다.


그런데 고구려를 배경으로 중앙권력에 진출하여 외척이 된 고조의 출신이 출자이토(出自異土)라 하여 기존의 관료들이 고조를 배척하였다. 이런 부분이 고조가 행한 숙청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조는 이에 좌절하지 않고 맡은 직분에 열심히 정성을 쏟아 유능한 인물이라는 평을 얻게 되자, 선무제는 고조에게 6보(六輔)의 전횡과 함양왕의 주살로 빚어진 정치적 공백을 메우는 일을 맡겼다. 이처럼 정치를 주도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된 고조는 고구려에서 돌아온 탓으로 주변에 친족 등 많은 관료를 두지 못한 허점을 보완하고자 붕당을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붕당을 중심으로 정치를 이끌어 갈 심산이었던 것이다. 이 붕당에 많은 사람들이 가담해서 고조의 세력은 막강해졌다. 그런데 붕당에 가담한 인물 대부분이 발해 고씨인 점으로 보아 이 붕당은 고씨 동족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할 수 있고 따라서 이 붕당은 고씨 동족적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고조가 조직한 붕당은 정치적 폐단을 가지고 오기도 하였다. 고쌍(高雙)이 고조에게 뇌물을 바쳐 유주자사가 된 것이 한 예로 보아야 한다. 고쌍은 이전에도 북해왕(北海王) 상(詳)에게 보물을 상납하여 양주자사가 된 적이 있는데, 북해왕은 고조에세 살해되었다. 막강한 권력자로 올라선 고조는 주도하는 정치에 제왕(諸王)이 방해가 된다 하여 선무제의 양해 하에 제왕을 감금하여, 정치에서 관여하지 못하게 하였다.


고조의 세력이 강화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여동생 문소황후가 선무제(세종)와 광평왕(廣平王) 회(懷), 장락공주를 낳은 것과 더불어 고조의 배경이 당시 동북아시아의 강대국인 고구려라는 것에 중점을 둘 수 있다. 515년 선무제가 사망하자 고조의 세력들도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위서(魏書)』, 卷 十,「帝紀」, 第 八 <世宗宣武帝> [본문] 是南北朝时期北魏的皇帝。为孝文帝元宏次子,母高照容。宣武帝的統治初期,北魏對南朝發動了一系列戰爭,使北魏的疆域大大向南拓展,國勢盛極一時。因篤信佛教,宣武帝取消子貴母死制度,讓宣武靈皇后活著。他在位的後半期,外戚高肇專權,朝政一片黑暗,北魏逐漸衰弱。延昌四年正月,宣武帝崩於式乾殿。)


고양왕(高陽王)은 그 동안 억압당해 온 선비계 제왕들과 연합하여 고조를 살해하고 그의 죄악상을 세상에 폭로하였다. 고조를 제거한 제왕들은 고조의 붕당에 대해서는 특별한 보복조치는 취하지 않고 그들의 관작만 빼앗는 데 그쳤다. 이것은 고양왕의 단독 행위가 아닌 선비계의 귀족들 간의 연합과 고조와 고구려계로부터 소외되어 온 다른 북방계 민족들 간의 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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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를 철권통치한 고구려계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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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에 정사를 고조에게 맡기고 방탕한 생활을 했던 선무제 원각,

그의 방탕한 모습은 북위의 역사를 다룬 중국 드라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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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성 낙양 용문석굴에 새겨진 선무제 닮은 부처님

 

 
 
TOTAL 170
86. 당나라 고조 이연, 태종 이세민이 선비족 출신이라는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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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577
84. 수 문제의 탄생설화와 문제의 가계에 대하여
개국 황제의 출생에는 대부분 설화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수나라 문제 양견 역시 탄생설화가 존재했고 탄생설화는 다음과 같다. "갑자기 반야사의 정원이 양견이 출생할 무렵 보랏빛으로 밝게 빛났다. 비구니가 이르기를 "보통 아들이 아니니 소중하게 키워야 한다." 라고 말했다. 양견이 태어나게 되었는데 양견의 이마에 용의 뿔…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406
83. 수나라 양견은 선비족 출신이고 수나라는 선비족 국가이다.
흔히 수, 당을 한족 국가라 하여 한족 국가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수, 당은 본연의 문화와 한족 문화를 입혀서 혼합문화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수, 당이 선비 본연의 색체를 점점 잃어가던 시기에 혈통적으로 선비의 혈통인 것은 수, 당의 시조들에만 해당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나라는 문제 이…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501
82. 북주 무제의 북제 정복과 수국공 양견의 등장
북주를 멸망시킨 이후 무제는 북제와 동맹국인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대패하고 고구려에 대한 공격을 단념했다.* 온달 장군이 등장하여 북주를 격퇴했던 것이 바로 이 시기이다. 그리고 577년에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평원태왕을 개부의동삼사대장군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開府儀同三司大將軍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으로 임명했다.* 577…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352
81. 북주와 고구려의 외교관계
북주와 고구려간의 외교적 부분의 대외관계에서는 고구려가 먼저 서위 시절인 546년에 외교 및 교역사절을 보냈다. 그리고는 서로간의 큰 교류가 없었다. 그것은 고구려는 원래 북제와 영토와 국경을 마주했기 때문이고, 동위와 북제를 세웠다고 할 수 있는 고환이 고구려계이기 때문이다.* 북주가 세워진 이후 고구려와 북주의 관계 기…
Name: 정길선  |  Date: 2017-05-31  |  Hit: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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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468
79. 북제 북주의 돌궐과의 관계를 표현한 왜곡된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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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414
78. 강력한 돌궐에 북주와 북제가 무릎을 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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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434
77. 초기 거란과 고구려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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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401
76. 우문선비와 그 갈래 민족들 (거란, 실위, 해, 습, 지두우, 고막해)와 …
우문선비는 고구려, 부여와 국경을 마주한 관계로 많은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부분에서 모용선비가 고구려, 부여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지만 비공식적인 부분에서는 우문선비와 관계가 잦았으며 필요에 따라 이동하고 정주하는 부분이 더욱 강하였다. 여기에서 공식적인 부분이라는 것은 정식국가와 같이 사신 왕래 …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608
75. 우문선비의 요동, 요서 지역 정착과 모용선비와의 관계
우문선비는 강력한 세력을 일으키던 부족은 아니었으나 북위가 건국되기 이전에는 주로 요동과 요서지역에서 영위하였으며 주로 목축업을 하였다. 주로 목축업을 하던 지역은 오환의 옛 영토인 적봉과 서랍목륜하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지역은 고구려, 부여와 주로 국경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었고 때로는 고구려의 보호를…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325
74. 탁발선비 연구에 대한 마무리와 탁발씨의 한족과 동화에 관하여
서위에 소속되어 있던 탁발선비의 일족은 북주가 건국된 이후 그대로 중원에 남았다. 우문선비가 건국한 북주는 인재 등용의 폭을 넓혀 오히려 전 왕조의 황족들인 탁발선비도 관직에 등용했다. 그리고 우문선비는 탁발선비의 과거 용맹성을 매우 높이 샀기 때문에 주로 무관직에 등용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탁발선비의 황족이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281
73. 탁발선비의 투르크계 변환과 중원 정착, 중앙아시아의 선비계 민족 …
동위와 서위가 멸망한 뒤 동위의 탁발선비 세력들은 북제의 시조 고양에 의해 북쪽 변경인 회삭진(懷朔鎭) · 무천진(武川鎭) · 무명진(撫冥鎭) · 유현진(柔玄鎭) · 옥야진(沃野鎭) · 회황진(懷荒鎭)에 강제 추방되었다. 북제의 고양은 이들 6개 진에게 탁발선비의 황족들과 남은 씨족들을 감시하게 하였는게 앞서 언급한 6개의 진들은 효…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621
72. 북제와 북주의 성립
550년, 후경(後景)이 남조 양(梁)나라에 항복해 동위를 배신하자 고양은 모용소종(慕容紹宗)에게 후경을 공격하게 하고, 동위에 남아있던 후경의 처자식을 죽였다. 또한 양나라와 수호관계를 맺고, 후경을 고립상태로 몰아넣었다. (『양서(梁書)』, 卷七十,「侯景傳」, 第七 [본문] 王僧辯遣侯瑱率軍追景。景至晉陵,劫太守徐永東奔吳郡…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382
71. 북위, 동위와 서위로 분열되고 북제의 고씨 집안은 고구려의 후예이…
6진의 유력자 중에 고조의 일족들이 있었는데 6진의 난을 거쳐 북위의 멸망과정에서 고조의 일족 중에서 다시 권력중추에 올라선 자들도 있었다. 회삭진 출신으로 동위(東魏)의 실권을 장악하여 북제의 기초를 닦았던 고환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또한 무천진(武川鎭) 출신의 유력자는 무천진(武川鎭) 군벌, 일명 관롱집단(關籠集團)으로…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486
70. 북위 영태후의 섭정과 6진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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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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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310
68. 북위, 백제와의 전쟁과 효문제, 문소황후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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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361
67. 북위 효문제, 백제와 전쟁에서 패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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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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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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