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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나라 양견은 선비족 출신이고 수나라는 선비족 국가이다.
  
   작성자 : 정길선
작성일 : 2017-06-01     조회 : 501  

흔히 수, 당을 한족 국가라 하여 한족 국가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수, 당은 본연의 문화와 한족 문화를 입혀서 혼합문화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수, 당이 선비 본연의 색체를 점점 잃어가던 시기에 혈통적으로 선비의 혈통인 것은 수, 당의 시조들에만 해당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나라는 문제 이후, 당나라는 태종 이후, 선비족 보다는 한족의 입장에서 보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본 단락과 본 연구는 수, 당의 전체적인 역사 보다는 수나라 시조인 양견과 당나라 시조인 이연의 가계에 대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가계와 건국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도 함께 서술하고자 한다. 그것은 수, 당의 시조와 그 뿌리에 대한 이해는 본고의 선비에 대한 연구 중 최종적 부분이고 선비가 한족에 흡수되었다는 설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수나라를 건국한 양견은 수국공(隨國公) 양충(楊忠)의 아들로 태어났다. 양견에 대해서 서술하기 전에 양충이 어떠한 인물이었는지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양충의 집안은 북위-서위-북주 등 선비 정복왕조에서 6대에 걸쳐 태수와 장군을 역임한 선비에서는 명문 가문 출신이었다. 『수서(隋書)』에서는 양충의 조상이 후한의 태위 벼슬을한 양진(陽震)에서 비롯한다고 서술되어 있으나,* 양진의 8대 손으로 모용선비 전연의 북평(北平)태수를 지낸 양현(陽鉉) 이전으로 올라가면 구체적인 기록이 전혀 없다.


* 『수서(隋書)』, 卷一,「帝紀」, 第一 , <高祖>上. [본문] 高祖文皇帝, 漢太尉震八代孫鉉, 仕燕爲北平, 太守, 鉉生元壽, 後魏代爲武川鎭司馬, 元壽生太原太守惠嘏嘏染見, 烈生寧遠將軍禎, 禎生忠, 忠卽皇考也, 皇考從周太祖, 位至柱國, 隋國公.


양현의 아들이며 양견의 5대조인 양원수(陽元壽)는 무천진(武川鎭)에 자리를 잡고 탁발선비 정복왕조를 섬기기 시작했다. 4대조와 3대조는 북위의 태수였고, 아버지 양충과 양홍(陽虹)은 북위의 장군이었다. 양견의 아내인 문헌황후(文獻皇后)는 무천진(武川鎭) 독고신(獨孤信)의 딸이다.* 독고신은 무천진(武川鎭)의 우문태(宇文泰)를 섬기며, 서위를 세우고, 후에 북주를 창건하는데 큰 공을 세운 8주 국(八柱國)의 일원이었다. 독고신의 장녀는 우문태의 장자로 북주의 첫 번째 황제가 된 명제(明帝)와 결혼을 했고, 일곱 번째 딸은 양견과 결혼을 했고, 넷째 딸은 당 고조 이연의 아버지와 결혼을 하였다.*


* 『주서(周書)』, 卷 十六,「 獨孤信列傳」, 第八. [본문] 獨孤信, 其先者, 爲部落大人, 與魏俱起, 祖, 和平中. 自雲中鎭武川因家焉, 父, 爲領民酋長, 建明初, 信爲大都督, 信與太祖鄕里 少相友, 信長女周明敬后, 第四女, 元貞皇后, 第七女, 隋文獻后, 周隋及皇家, 三代皆爲外戚.


* 『구당서(舊唐書)』, 卷 一,「高祖本紀」, 第 一. [본문] 高祖, 姓李氏諱淵, 皇祖諱虎, 與周文帝及, 大司馬 獨孤信等, 稱爲八柱國家, 追封唐國公, 皇考諱昞 [北]周安州總管, 襲唐國公, 追尊元皇帝, 高祖七歲襲唐國公, 帝獨孤皇后 卽高祖從母也.


독고신 휘하의 대장군 양충은 우문태에 의해 수국공(隋國公)에 봉해졌고, 양견은 부친 양충의 칭호를 물려받아 후에 자신이 세운 나라의 이름으로 삼았다. 양견의 집안은 선비 정복왕조 지배계급의 핵심 씨족에 속한 것이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양씨 집안이 한족 조상을 가졌다 해도, 모용선비 전연이 370년에 멸망하기 이전 양진의 8대손이 전연 북평 태수가 된 언제인가부터 선비어를 말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양견이 수나라를 세운 581년에는 최소한 211년간 선비어를 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 『북사(北史)』, 卷 六十,「王雄列傳」, 第 四十八. [본문] 王雄, 開國公李虎, 柱國大將軍, 開國公獨孤信, 與周文帝[宇文泰]爲八柱國, 開國公楊忠, 是爲十二大將軍.


북위 말엽에 양홍(陽虹)장군 집안에 양충이 태어났다. 양충은 18세에 태산으로 갔다가, 마침 북벌하던 양나라 군대에게 포로가 되었다. 양나라는 강남 지역에 있던 왕조로, 북위와 적대국이었다. 양충은 잡혀가서 목숨은 부지했고 5년 뒤에 양나라가 다시 한 번 북벌을 감행하자 따라서 올라갔다가 도중 진영을 탈출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북위의 독고신이라는 장수의 부하로 종군했다. 본래 북위의 여러 실력자들도 우문태와 고환, 양쪽을 두고 결정해야 했는데, 독고신은 우문태의 어렸을 때 같은 고향 출신이었기 때문에 우문태의 휘하에 들어갔다. 독고신의 부하였던 양충도 여기에 따라가면서 두 장수는 최전선으로 파견되었다.


그런데 서위는 후일 북주라는 국가로, 동위는 후일 북제라는 국가로 변환하였다. 북제는 수도가 낙양에 함곡관(咸谷關)을 경계로 평야지대를 확보했고, 바다에 면하는 황하 하류를 끼고 있었기에 농산물이 풍부하여 매우 강대했다. 상대적으로 북주는 초반에 북제에게 밀리는 형편이었고, 북주의 전신이었던 서위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동위의 공격에 서위는 시달렸고, 최전선에 있던 독고신과 양충도 이러한 공격에 시달리게 되었다.

독고신과 양충은 계속되는 동위의 공격에 패배하여 양나라로 달아났다. 그런데 양충이 이전에 양나라에 왔을 때 신망을 쌓아, 양나라는 독고신과 양충을 보호했고 후하게 대접했다. 2년 뒤 독고신과 양충은 다시 북주로 돌아왔고 독고신은 귀환 이후에 우문태의 핵심 측근이 되었다. 여기에 독고신이 양충을 천거하여 양충을 기용하게 하려 하였으나 우문태가 양충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 크게 기용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우문태는 양충을 데리고 사냥을 하면서 그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우문태를 공격하자 호랑이를 죽이고 우문태를 살려주었다.*


* 『通志』 [본문] 神擊敗, 連續票面金額的, 攻擊,逃到。然而,有關金額的, 國家,當它來到昆蟲, 先前建立起來的, 信任,在國家和的, 神保護卷染機的, 娛樂性。兩年後,重新卷染, 機返回後上帝和神的. 核心海歸助手是正確的。一千神住在這裡卷, 染機卷染試圖任命,但不知道很多關, 於玉文的, 狀態問題主要是任命。所以,有權採取卷, 染看著他打獵時,突然出現, 讓老虎攻擊, 殺吳吳還活著。


우문태를 살려준 공으로 양충을 표기대장군으로 승진시키고 측근에 두었다. 그리고 541년 장안 부근의 반야사라는 절에서 장자를 출생하니 그가 훗날 수 문제가 되는 양견이다.*


* 『자치통감(資治通鑑)』, [본문] 昉見靜帝幼衝,以楊堅後父,有重名,遂與領內史鄭譯、禦飾大夫柳裘、內史大夫杜陵韋謩、禦正下士朝那皇甫績謀引堅輔政。堅固辭,不敢當。昉曰:「公若為,速為之;不為,昉自為也。」堅乃從之,稱受詔居中侍疾。裘,惔之孫也。是日,帝殂。秘不發喪。昉、譯矯詔以堅總知中外兵馬事。顏之儀知非帝旨,拒而不從。昉等草詔署訖,逼之儀連署,之儀厲聲曰:「主上升遐,嗣子衝幼,阿衡之任,宜在宗英。方今趙王最長,以親以德,合膺重寄。公等備受朝恩,當思盡忠報國,奈何一旦欲以神器假人!之儀有死而已,不能誣罔先帝。」昉等知不可屈。乃代之儀署而行之。諸衛既受敕,並受堅節度。堅恐​​諸王在外生變,以千金公主將適突厥為辭,徵趙、陳、越、代、滕五王入朝。堅索符璽,顏之儀正色曰:「此天子之物,自有主者,宰相何故索之!」堅大怒,命引出,將殺之;以其民望,出為西邊郡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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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최대 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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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섬서성 시안에서 있는 수 문제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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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문제 양견의 초상화

 
 
TOTAL 170
86. 당나라 고조 이연, 태종 이세민이 선비족 출신이라는 근거
이연 집안이 한족 조상을 가졌다 해도, 탁발선비가 화북을 통일한 439년 이후부터 선비어를 말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이연이 당 나라를 세운 618년에는 이미 179년 가까이 선비어를 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북주는 고사하고 한족 국가로 간주해도 된다고 흔히 말하는 북제 조정의 언어 역시 선비어였다. 그리고 북주가 한화정책을 거부하고 …
Name: 정길선  |  Date: 2017-06-02  |  Hit: 711
85. 당나라 고조 이연은 서량 황실 후손이자 선비족의 후예이다.
당나라를 건국한 이연은 당국공(唐國公) 이병(李昞)의 자식으로 먼저 이연의 가계와 당나라를 건국한 과정, 그리고 이연의 선조들이 어떠한 인물들이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당나라가 선비족 계통의 국가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연의 7대조는 이고(李暠)*로 흉노 부족이 오늘날 감숙성 지역…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579
84. 수 문제의 탄생설화와 문제의 가계에 대하여
개국 황제의 출생에는 대부분 설화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수나라 문제 양견 역시 탄생설화가 존재했고 탄생설화는 다음과 같다. "갑자기 반야사의 정원이 양견이 출생할 무렵 보랏빛으로 밝게 빛났다. 비구니가 이르기를 "보통 아들이 아니니 소중하게 키워야 한다." 라고 말했다. 양견이 태어나게 되었는데 양견의 이마에 용의 뿔…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407
83. 수나라 양견은 선비족 출신이고 수나라는 선비족 국가이다.
흔히 수, 당을 한족 국가라 하여 한족 국가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수, 당은 본연의 문화와 한족 문화를 입혀서 혼합문화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수, 당이 선비 본연의 색체를 점점 잃어가던 시기에 혈통적으로 선비의 혈통인 것은 수, 당의 시조들에만 해당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나라는 문제 이…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502
82. 북주 무제의 북제 정복과 수국공 양견의 등장
북주를 멸망시킨 이후 무제는 북제와 동맹국인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대패하고 고구려에 대한 공격을 단념했다.* 온달 장군이 등장하여 북주를 격퇴했던 것이 바로 이 시기이다. 그리고 577년에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평원태왕을 개부의동삼사대장군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開府儀同三司大將軍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으로 임명했다.* 577…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353
81. 북주와 고구려의 외교관계
북주와 고구려간의 외교적 부분의 대외관계에서는 고구려가 먼저 서위 시절인 546년에 외교 및 교역사절을 보냈다. 그리고는 서로간의 큰 교류가 없었다. 그것은 고구려는 원래 북제와 영토와 국경을 마주했기 때문이고, 동위와 북제를 세웠다고 할 수 있는 고환이 고구려계이기 때문이다.* 북주가 세워진 이후 고구려와 북주의 관계 기…
Name: 정길선  |  Date: 2017-05-31  |  Hit: 389
80. 우문각의 북주와 우문호의 세도정치
북주는 우문각(宇文覺)에 의해 556년에 건국되었다. 북주의 건국과 우문선비에 대한 연구에 들어가기 전에 우문선비가 어떻게 서위의 영토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주목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문태의 출신지는 무천진(武川鎭)(貿泉鎭)으로 현재 내몽골자치구 지역으로 감숙성 이북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당 지역은 과거에 흉…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468
79. 북제 북주의 돌궐과의 관계를 표현한 왜곡된 서술
북주, 북제는 돌궐이 두려워 해마다 막대한 물자를 바치고 돌궐은 그들 나라를 침략하지 않는 대가로 막대한 물자를 받아 발전한 관계라는 것이다. 돌궐과 북주, 북제는 지배와 피지배자 관계인데 돌궐이 북주에 조공하였다고 『주서(周書)』에서는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명제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명제 2년(558년) 사근이 …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415
78. 강력한 돌궐에 북주와 북제가 무릎을 꿇다
유연이 중앙아시아를 지배하고 있으며 한창 전성기를 누릴 무렵, 서쪽에는 유연의 지배하에 있던 철륵계 부족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간 유연의 관심이 북위 시기 까지는 중원에 쏠려 있었고 중원에 있는 세력들은 유연에 대한 경계를 철저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연과 중원 세력들 간의 알력다툼은 매번 유연의 패배로 끝이 났다. …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434
77. 초기 거란과 고구려와의 관계
거란은 소수림왕 제위 시기인 378년에 고구려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고 8개 부락을 탈취했다.*이것 역시 거란이 생기고 나서 단독으로 이웃을 공격하여 거둔 거란사에 있어서 최초의 승리였다. 그러나 거란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광개토태왕의 공격을 받아 종속국이 되고 말았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卷第 十八,「고…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402
76. 우문선비와 그 갈래 민족들 (거란, 실위, 해, 습, 지두우, 고막해)와 …
우문선비는 고구려, 부여와 국경을 마주한 관계로 많은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부분에서 모용선비가 고구려, 부여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지만 비공식적인 부분에서는 우문선비와 관계가 잦았으며 필요에 따라 이동하고 정주하는 부분이 더욱 강하였다. 여기에서 공식적인 부분이라는 것은 정식국가와 같이 사신 왕래 …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609
75. 우문선비의 요동, 요서 지역 정착과 모용선비와의 관계
우문선비는 강력한 세력을 일으키던 부족은 아니었으나 북위가 건국되기 이전에는 주로 요동과 요서지역에서 영위하였으며 주로 목축업을 하였다. 주로 목축업을 하던 지역은 오환의 옛 영토인 적봉과 서랍목륜하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지역은 고구려, 부여와 주로 국경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었고 때로는 고구려의 보호를…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326
74. 탁발선비 연구에 대한 마무리와 탁발씨의 한족과 동화에 관하여
서위에 소속되어 있던 탁발선비의 일족은 북주가 건국된 이후 그대로 중원에 남았다. 우문선비가 건국한 북주는 인재 등용의 폭을 넓혀 오히려 전 왕조의 황족들인 탁발선비도 관직에 등용했다. 그리고 우문선비는 탁발선비의 과거 용맹성을 매우 높이 샀기 때문에 주로 무관직에 등용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탁발선비의 황족이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281
73. 탁발선비의 투르크계 변환과 중원 정착, 중앙아시아의 선비계 민족 …
동위와 서위가 멸망한 뒤 동위의 탁발선비 세력들은 북제의 시조 고양에 의해 북쪽 변경인 회삭진(懷朔鎭) · 무천진(武川鎭) · 무명진(撫冥鎭) · 유현진(柔玄鎭) · 옥야진(沃野鎭) · 회황진(懷荒鎭)에 강제 추방되었다. 북제의 고양은 이들 6개 진에게 탁발선비의 황족들과 남은 씨족들을 감시하게 하였는게 앞서 언급한 6개의 진들은 효…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622
72. 북제와 북주의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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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383
71. 북위, 동위와 서위로 분열되고 북제의 고씨 집안은 고구려의 후예이…
6진의 유력자 중에 고조의 일족들이 있었는데 6진의 난을 거쳐 북위의 멸망과정에서 고조의 일족 중에서 다시 권력중추에 올라선 자들도 있었다. 회삭진 출신으로 동위(東魏)의 실권을 장악하여 북제의 기초를 닦았던 고환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또한 무천진(武川鎭) 출신의 유력자는 무천진(武川鎭) 군벌, 일명 관롱집단(關籠集團)으로…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486
70. 북위 영태후의 섭정과 6진의 난
선무제의 뒤를 이어 선무제의 차남인 효명제(孝明帝)가 황제가 되었으나 6세에 불과해 영태후(靈太后)가 섭정하게 되었다. 영태후(靈太后)는 정치를 담당하면서 고조와 고조의 일족들을 일부 복권시켰고, 그들 고조의 일족들 중 고환(高歡)이 매우 영명하고 재능이 있어 발해 고씨 일족들은 다시 고환(高歡)을 중심으로 뭉치게 된다. 고…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54
69. 고구려계 고조의 북위에 대한 철권통치와 그의 죽음과 몰락
선무제는 외가 인척들에게 매우 극진하여 외삼촌인 고조 형제들에게 관직과 작위를 주고 외조부 고양(高陽)과 외조모에게도 작위를 추증하였다. 그리고 501년, 국정을 측근이나 외척인 고조(高肇)에게 맡겼고 선무제는 정치보다는 오히려 향락에 심취하여 지냈다. 게다가 불교에 입도하여 점차적으로 불교신앙에 빠지면서 오히려 정치…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310
68. 북위, 백제와의 전쟁과 효문제, 문소황후의 죽음
493년 수도를 평성에서 낙양(洛陽)으로 천도하고 대대적인 한족문화를 받아들이는 작업 시행했다. 이것은 풍태후도 하지 않았던 일로도 일찍이 풍태후의 섭정시기에도 이러한 제안이 들어온 적 있었으나 풍태후는 선비족의 정체성이 사라질까 우려하여 실행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효문제는 친정을 시작하자마자 가장 위험한 일을 자행…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362
67. 북위 효문제, 백제와 전쟁에서 패배하다.
480년 고구려는 남제(南齊)의 태조(太祖) 소도성(蕭道成)과 통교하기 위하여 사신 여노(餘奴) 등을 보내 예방하게 하였는데, 북위의 광주(光州)에서 여노 등을 붙잡아 북위의 궁궐로 압송하였다. 그리고 남제와의 동맹에 대한 파기를 요구하여* 장수태왕은 북위와의 의리를 생각해서 이를 파기하고 북위와 더욱 통교하게 되었다. 이것은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370
66. 북위 황실과 조정의 권력을 장악한 고구려 인
476년 고구려의 유력인사들이 대거 북위와 통교(通交)하면서 정착하여 살게 되었는데 그 중 고조(高肇)가 이와 같은 인물이었다. 고조(高肇)일가는 발해 고씨(撥海高氏)로 대대로 중원에 정착하여 살았던 완벽한 한족일가였다. 고조의 5세조인 고고(高苦)는 4세기 초 서진이 멸망할 무렵 난리를 피해 고구려로 갔다. 고고의 가문은 고구…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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