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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위 영태후의 섭정과 6진의 난
  
   작성자 : 정길선
작성일 : 2017-05-27     조회 : 453  

선무제의 뒤를 이어 선무제의 차남인 효명제(孝明帝)가 황제가 되었으나 6세에 불과해 영태후(靈太后)가 섭정하게 되었다. 영태후(靈太后)는 정치를 담당하면서 고조와 고조의 일족들을 일부 복권시켰고, 그들 고조의 일족들 중 고환(高歡)이 매우 영명하고 재능이 있어 발해 고씨 일족들은 다시 고환(高歡)을 중심으로 뭉치게 된다. 고환은 후일 북제(北齊)의 시조가 되었다.


북위의 정권을 쥐었던 발해 고씨의 일부는 분명 고구려인이었고, 그들이 설령 고구려인이 아니었지만 고구려의 문화적 토대에서 성장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북위를 비롯한 북조의 문화에 고구려의 영향이 미쳤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북방의 유목종족들이 본연의 문화를 지키지 못하고 대부분 소멸된 것에 반해, 자신의 문화를 가지고 있던 고구려는 북위를 세운 탁발선비족에 영향을 끼치며 권력의 일부를 가졌고, 북위에 영향을 행사하였던 것이다.남북조 시대에는 많은 고구려인들이 활약했다. 대표적으로 북연을 건국한 고운을 비롯해서, 북주(北周)에서 10주의 군사권을 지니기도 했던 고림(高琳) 등이 있었다.*


* 원래 고림은 북위 12대 효무제의 서천 시에 동행하여 추격하는 북제 신무제(紳武帝)를 막았던 공으로 300호에 봉해졌다. 535년 자작에서 후작이 된 고림은 400호를 더 받았고, 537년 북주의 태조(문제)를 따라 북제의 신무제를 격파하여 공작이 됨으로써 800호를 다시 받았다. 538년 다시 공을 세워 300호를 더 받았고, 시중이 되었다. (『북사(北史)』, 卷 六, 「高祖神武帝本紀」, 第 六 [본문] 高琳 ; 無標題, 十二生效的, 時間陪的舒, 川追的, 新命名三百號桿剛, 剛成為球。在年的, 侯爵自己的, 四百電話注意的, 問題以及新的未命名的, 第年擊敗杜, 克再次成為, 一個八百電話. 三百號建年, 進一步回球,已經成為市場.)


영태후(靈太后)는 정치를 하면서 불교에 심취해 전국에 사탑을 건립하여 재정을 어지럽혔다. 그리고 북위 국내에 도적이 봉기하고, 그 동안 누적된 한화정책에 대한 선비계 귀족들의 불만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위서(魏書)』, 卷 十三,「帝紀」, 第 一, <孝明帝> [본문] 孝明皇后胡氏......時博陵崔孝芬, 范陽盧道約、隴西李瓚等女,但為世婦.)


북위는 처음에 자신들과 같은 북방의 기마민족들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수도 평성의 가까운 거리에 북쪽 수비를 중요시하며 요새를 쌓았다. 이를 중심으로 요새 사이를 연결하는 진(鎭)이 있었다. 그곳의 진들은 북방민족의 남하를 막기 위한 중심기지 역할을 하였는데 회삭진(懷朔鎭) · 무천진(武川鎭) · 무명진(撫冥鎭) · 유현진(柔玄鎭) · 옥야진(沃野鎭) · 회황진(懷荒鎭) 총 6진이 있었다. 처음에는 선비나 흉노의 유력 호족을 선택해 6진을 대표하고 북쪽을 경비하는 영민으로 이주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당연히 영민들은 대가로 특권을 부여받았다. (『魏書』, 五八,『杨播書』, 附弟,『椿書』, 雲:“自中原稍定,八軍之兵,漸割南戍”)

『元和郡縣志』, 券一四,「雲州」, 第一:魏道武帝又於此建都, 東至上谷軍都關, 後西至河, 南至中山隘門塞, 北至五原, 地方千里, 以為甸服.


『北齊書』, 二三,『魏蘭根書』:因說崇曰:“緣邊諸鎮,控攝長遠。昔時初置,地廣人稀,或徵發中原強宗子弟,或國之肺腑,寄以爪牙。中年以來,有司乖實,號曰府戶,役同廝養,官婚班齒,致失清流。而本宗舊類,各各榮顯,顧瞻彼此,理當憤怨.”


그러나 효문제의 한화 정책에 의해 수도가 평성에서 낙양으로 천도하자 이때부터 북쪽의 영민은 서서히 냉대을 받게 되었다. 게다가 본래 명족출신이었던 그들은 부호(府戶)라는 출세를 더 이상 바라볼 수 없게 차단되는 호에 편제하게 되었고, 중앙으로부터 서임된 장관인 도대장(都大將)에게 착취당하는 상태가 되자 일거에 불만이 증대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 축적된 불만이 폭발한 것은 523년 옥야진 백성들의 거병이었다. 파육한발릉(破六韓抜陵)이 수령(首領)인 반란병들은 수비대장을 살해하였고, 이들의 움직임에 홀려 기타 여러 진들에도 전염되었다. 흔히 이것을 6진의 난(六鎭之亂)이라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이 반란은 4년간 계속되었고 북위조정이 난을 진압하지 못하고 527년 흉노 출신 장수인 이주영(爾朱榮)이 진압했으나 6진의 난이 몰고 온 파장은 북위의 급속한 쇠락으로 이어졌다.


*『魏書』, 六四,『張彝志』, 雲:“第二子仲瑀上封事,求銓別選格,排抑武人,不使預在清品。由是眾口喧喧,謗讟盈路,立榜大巷,剋期會集,屠害其家。彝殊無畏避之意,父子安然。神龜二年二月,羽林虎賁幾將千人,相率至尚書省詬罵,求其長子尚書郎始均,不獲,以瓦石擊打公門。上下畏懼,莫敢討抑。遂便持火,虜掠道中薪蒿,以杖石為兵器,直造其第,曳彝堂下,捶辱極意,唱呼嗷嗷,焚其屋宇。始均、仲瑀當時逾北垣而走。始均回救其父,拜伏群小,以請父命。羽林等就加毆擊,生投之於菸火之中。及得屍骸,不復可識,唯以髻中小釵為驗。仲瑀傷重走免。彝僅有餘命,沙門寺與其比鄰,輿致於寺。遠近聞見,莫不惋駭.”


* 『자치통감(資治通鑑)』高祖武皇帝,<普通六年> [본문] 延伯遂大敗,死傷近二萬人,蕭寶寅收眾退保安定...(중략)...深從之,拔陵果引兵邀擊乜列河,盡俘其眾;伏兵發,拔陵大敗,復得乜列河之眾而還...(중략)...二月,秦賊據魏潼關. 甲寅,寶寅自稱齊帝,改元隆緒,赦其所部,署百...(중략)...“壬子,以中護軍夏侯亶督壽陽諸軍事,馳驛代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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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드라마에 나오는 어린 황제 효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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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드라마에 나오는 영태후(靈太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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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제9대 황제 효명제(孝明帝)의 능, 정릉(定陵)

 

 
 
TOTAL 170
86. 당나라 고조 이연, 태종 이세민이 선비족 출신이라는 근거
이연 집안이 한족 조상을 가졌다 해도, 탁발선비가 화북을 통일한 439년 이후부터 선비어를 말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이연이 당 나라를 세운 618년에는 이미 179년 가까이 선비어를 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북주는 고사하고 한족 국가로 간주해도 된다고 흔히 말하는 북제 조정의 언어 역시 선비어였다. 그리고 북주가 한화정책을 거부하고 …
Name: 정길선  |  Date: 2017-06-02  |  Hit: 711
85. 당나라 고조 이연은 서량 황실 후손이자 선비족의 후예이다.
당나라를 건국한 이연은 당국공(唐國公) 이병(李昞)의 자식으로 먼저 이연의 가계와 당나라를 건국한 과정, 그리고 이연의 선조들이 어떠한 인물들이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당나라가 선비족 계통의 국가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연의 7대조는 이고(李暠)*로 흉노 부족이 오늘날 감숙성 지역…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579
84. 수 문제의 탄생설화와 문제의 가계에 대하여
개국 황제의 출생에는 대부분 설화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수나라 문제 양견 역시 탄생설화가 존재했고 탄생설화는 다음과 같다. "갑자기 반야사의 정원이 양견이 출생할 무렵 보랏빛으로 밝게 빛났다. 비구니가 이르기를 "보통 아들이 아니니 소중하게 키워야 한다." 라고 말했다. 양견이 태어나게 되었는데 양견의 이마에 용의 뿔…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407
83. 수나라 양견은 선비족 출신이고 수나라는 선비족 국가이다.
흔히 수, 당을 한족 국가라 하여 한족 국가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수, 당은 본연의 문화와 한족 문화를 입혀서 혼합문화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수, 당이 선비 본연의 색체를 점점 잃어가던 시기에 혈통적으로 선비의 혈통인 것은 수, 당의 시조들에만 해당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나라는 문제 이…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501
82. 북주 무제의 북제 정복과 수국공 양견의 등장
북주를 멸망시킨 이후 무제는 북제와 동맹국인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대패하고 고구려에 대한 공격을 단념했다.* 온달 장군이 등장하여 북주를 격퇴했던 것이 바로 이 시기이다. 그리고 577년에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평원태왕을 개부의동삼사대장군요동군개국공고구려왕(開府儀同三司大將軍遼東郡開國公高句麗王)으로 임명했다.* 577…
Name: 정길선  |  Date: 2017-06-01  |  Hit: 352
81. 북주와 고구려의 외교관계
북주와 고구려간의 외교적 부분의 대외관계에서는 고구려가 먼저 서위 시절인 546년에 외교 및 교역사절을 보냈다. 그리고는 서로간의 큰 교류가 없었다. 그것은 고구려는 원래 북제와 영토와 국경을 마주했기 때문이고, 동위와 북제를 세웠다고 할 수 있는 고환이 고구려계이기 때문이다.* 북주가 세워진 이후 고구려와 북주의 관계 기…
Name: 정길선  |  Date: 2017-05-31  |  Hit: 389
80. 우문각의 북주와 우문호의 세도정치
북주는 우문각(宇文覺)에 의해 556년에 건국되었다. 북주의 건국과 우문선비에 대한 연구에 들어가기 전에 우문선비가 어떻게 서위의 영토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주목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문태의 출신지는 무천진(武川鎭)(貿泉鎭)으로 현재 내몽골자치구 지역으로 감숙성 이북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당 지역은 과거에 흉…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468
79. 북제 북주의 돌궐과의 관계를 표현한 왜곡된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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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415
78. 강력한 돌궐에 북주와 북제가 무릎을 꿇다
유연이 중앙아시아를 지배하고 있으며 한창 전성기를 누릴 무렵, 서쪽에는 유연의 지배하에 있던 철륵계 부족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간 유연의 관심이 북위 시기 까지는 중원에 쏠려 있었고 중원에 있는 세력들은 유연에 대한 경계를 철저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연과 중원 세력들 간의 알력다툼은 매번 유연의 패배로 끝이 났다. …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434
77. 초기 거란과 고구려와의 관계
거란은 소수림왕 제위 시기인 378년에 고구려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고 8개 부락을 탈취했다.*이것 역시 거란이 생기고 나서 단독으로 이웃을 공격하여 거둔 거란사에 있어서 최초의 승리였다. 그러나 거란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광개토태왕의 공격을 받아 종속국이 되고 말았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卷第 十八,「고…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402
76. 우문선비와 그 갈래 민족들 (거란, 실위, 해, 습, 지두우, 고막해)와 …
우문선비는 고구려, 부여와 국경을 마주한 관계로 많은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부분에서 모용선비가 고구려, 부여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지만 비공식적인 부분에서는 우문선비와 관계가 잦았으며 필요에 따라 이동하고 정주하는 부분이 더욱 강하였다. 여기에서 공식적인 부분이라는 것은 정식국가와 같이 사신 왕래 …
Name: 정길선  |  Date: 2017-05-30  |  Hit: 609
75. 우문선비의 요동, 요서 지역 정착과 모용선비와의 관계
우문선비는 강력한 세력을 일으키던 부족은 아니었으나 북위가 건국되기 이전에는 주로 요동과 요서지역에서 영위하였으며 주로 목축업을 하였다. 주로 목축업을 하던 지역은 오환의 옛 영토인 적봉과 서랍목륜하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지역은 고구려, 부여와 주로 국경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었고 때로는 고구려의 보호를…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325
74. 탁발선비 연구에 대한 마무리와 탁발씨의 한족과 동화에 관하여
서위에 소속되어 있던 탁발선비의 일족은 북주가 건국된 이후 그대로 중원에 남았다. 우문선비가 건국한 북주는 인재 등용의 폭을 넓혀 오히려 전 왕조의 황족들인 탁발선비도 관직에 등용했다. 그리고 우문선비는 탁발선비의 과거 용맹성을 매우 높이 샀기 때문에 주로 무관직에 등용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탁발선비의 황족이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281
73. 탁발선비의 투르크계 변환과 중원 정착, 중앙아시아의 선비계 민족 …
동위와 서위가 멸망한 뒤 동위의 탁발선비 세력들은 북제의 시조 고양에 의해 북쪽 변경인 회삭진(懷朔鎭) · 무천진(武川鎭) · 무명진(撫冥鎭) · 유현진(柔玄鎭) · 옥야진(沃野鎭) · 회황진(懷荒鎭)에 강제 추방되었다. 북제의 고양은 이들 6개 진에게 탁발선비의 황족들과 남은 씨족들을 감시하게 하였는게 앞서 언급한 6개의 진들은 효…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622
72. 북제와 북주의 성립
550년, 후경(後景)이 남조 양(梁)나라에 항복해 동위를 배신하자 고양은 모용소종(慕容紹宗)에게 후경을 공격하게 하고, 동위에 남아있던 후경의 처자식을 죽였다. 또한 양나라와 수호관계를 맺고, 후경을 고립상태로 몰아넣었다. (『양서(梁書)』, 卷七十,「侯景傳」, 第七 [본문] 王僧辯遣侯瑱率軍追景。景至晉陵,劫太守徐永東奔吳郡…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383
71. 북위, 동위와 서위로 분열되고 북제의 고씨 집안은 고구려의 후예이…
6진의 유력자 중에 고조의 일족들이 있었는데 6진의 난을 거쳐 북위의 멸망과정에서 고조의 일족 중에서 다시 권력중추에 올라선 자들도 있었다. 회삭진 출신으로 동위(東魏)의 실권을 장악하여 북제의 기초를 닦았던 고환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또한 무천진(武川鎭) 출신의 유력자는 무천진(武川鎭) 군벌, 일명 관롱집단(關籠集團)으로…
Name: 정길선  |  Date: 2017-05-29  |  Hit: 486
70. 북위 영태후의 섭정과 6진의 난
선무제의 뒤를 이어 선무제의 차남인 효명제(孝明帝)가 황제가 되었으나 6세에 불과해 영태후(靈太后)가 섭정하게 되었다. 영태후(靈太后)는 정치를 담당하면서 고조와 고조의 일족들을 일부 복권시켰고, 그들 고조의 일족들 중 고환(高歡)이 매우 영명하고 재능이 있어 발해 고씨 일족들은 다시 고환(高歡)을 중심으로 뭉치게 된다. 고…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454
69. 고구려계 고조의 북위에 대한 철권통치와 그의 죽음과 몰락
선무제는 외가 인척들에게 매우 극진하여 외삼촌인 고조 형제들에게 관직과 작위를 주고 외조부 고양(高陽)과 외조모에게도 작위를 추증하였다. 그리고 501년, 국정을 측근이나 외척인 고조(高肇)에게 맡겼고 선무제는 정치보다는 오히려 향락에 심취하여 지냈다. 게다가 불교에 입도하여 점차적으로 불교신앙에 빠지면서 오히려 정치…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310
68. 북위, 백제와의 전쟁과 효문제, 문소황후의 죽음
493년 수도를 평성에서 낙양(洛陽)으로 천도하고 대대적인 한족문화를 받아들이는 작업 시행했다. 이것은 풍태후도 하지 않았던 일로도 일찍이 풍태후의 섭정시기에도 이러한 제안이 들어온 적 있었으나 풍태후는 선비족의 정체성이 사라질까 우려하여 실행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효문제는 친정을 시작하자마자 가장 위험한 일을 자행…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362
67. 북위 효문제, 백제와 전쟁에서 패배하다.
480년 고구려는 남제(南齊)의 태조(太祖) 소도성(蕭道成)과 통교하기 위하여 사신 여노(餘奴) 등을 보내 예방하게 하였는데, 북위의 광주(光州)에서 여노 등을 붙잡아 북위의 궁궐로 압송하였다. 그리고 남제와의 동맹에 대한 파기를 요구하여* 장수태왕은 북위와의 의리를 생각해서 이를 파기하고 북위와 더욱 통교하게 되었다. 이것은 …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370
66. 북위 황실과 조정의 권력을 장악한 고구려 인
476년 고구려의 유력인사들이 대거 북위와 통교(通交)하면서 정착하여 살게 되었는데 그 중 고조(高肇)가 이와 같은 인물이었다. 고조(高肇)일가는 발해 고씨(撥海高氏)로 대대로 중원에 정착하여 살았던 완벽한 한족일가였다. 고조의 5세조인 고고(高苦)는 4세기 초 서진이 멸망할 무렵 난리를 피해 고구려로 갔다. 고고의 가문은 고구…
Name: 정길선  |  Date: 2017-05-27  |  Hit: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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